[나눔장례지원] 위안부 공점엽할머니 고이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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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해남에서 ‘위안부’ 공점엽 할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 인사드렸습니다.
나눔과나눔이 이렇게라도 마지막 가시는 길 함께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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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위안부’할머니 장례를 후원하고 있는 태양상조, 그리고 해남지역에 있는 시민분들과 함께 장례준비를 했습니다. 역시 장례준비에 함께 하시는 분들이 많으니 할머니 가시는 길도 외롭지 않은 듯 합니다. 스님들도 오셔서 염불해주시고, 천주교 신부님과 성도분들도 기도해 주시네요. 오늘 저녁에는 시민분들이 함께 행사도 하고, 발인할 때는 상여매고 노제도 진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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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가시는 걸음 걸음 이 세상의 아픔 모두 내려놓고 편안하게 가시면 좋겠습니다. 할머니, 고이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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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할머니 소개글은 정대협 페이스북에 있는 내용입니다.

할머니는 1920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셨고, 16세 되던 1935년에 직업을 소개해 준다는 말에 속아서 끌려가 해성-상해-하얼빈 등지에서 24세가 되던 1943년 무렵까지 일본군‘위안부’로 모질고 고통스러운 삶을 사셨습니다. 1945년 해남으로 귀국하여 47년, 결혼을 하였지만 남편은 결혼 8년 만에 사망하고,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홀로 키우며 살아오셨습니다.

할머니는 2002년부터 정대협 활동에 참여하시기 시작하여 금강산 인권캠프와 제주도 인권캠프 등에 함께 참석하여 “이런 세상도 있었소.” 하시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셨습니다. 기나긴 농사 일로 인해 허리가 거의 90도로 굽어 잘 펴지지도 않는 몸으로 금강산을 오르던 할머니 모습, 제주 4.3항쟁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숨짓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2년 동안 병상생활을 하시면서도 늘 희망을 잃지 않고 해남지역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공점엽 할머니와 함께하는 해남나비] 회원들이 찾아가면 구수한 말씀으로 “보고 또 봐도 그립고 보고잪소” 하시며 회원들의 발길을 붙잡기도 하셨습니다. 그렇게 할머니는 사람들의 마음에 애잔한 정을 나눠 주셨습니다.

그런데 두 달 전부터 병환이 악화되셨고, 긴 투병생활 끝에 할머니는 결국 오늘 97세의 연세로 우리와 긴 이별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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