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모든 무연고사망자는 고립사했을까?

모든 무연고사망자는 고립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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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개 고립사한 이들이 무연고, 즉 가족도 친구도 아는 이도 하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고독하게 홀로 삶을 마감했다고 해서, 모두가 무연고 사망자인 것은 아닙니다. 물론 무연고 사망자들이 고독하게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모든 무연고 사망자가 고립사를 하는 것도, 모든 고립사 사망자가 무연고 사망자인 것도 아닙니다.

  고립사가 사회와 격리돼 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말한다면, 무연고 사망자는 사망 이후 가족, 친척, 친구 등이 없거나 다양한 이유로 주변인들에게 시신이 인계되지 않은 이들을 말합니다. 살아있는 동안 주변인과 완전히 단절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직접적으로 장례를 책임져줄 연고가 없다면 무연고 사망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연고라고 말하는 부모, 자녀, 형제가 있어도 부득이한 이유로 사후를 책임져줄 수 없다면 그것 또한 무연고 사망자가 되는 이유입니다. 또, 경제적 어려움으로 사망 이후 가족 등이 시신을 인계하지 않게 되더라도 무연고 사망자가 될 수 있습니다. 수의부터 운구, 안치하는 것까지.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에게는 이러한 모든 과정과정이 감당하기 힘든 버거움입니다. 때문에 경제적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시신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관계 때문에 또는 경제적 이유 때문에, 무연고 사망자는 사후 자신의 죽음을 돌보아줄 이가 없게 됩니다.

모두가 포기해버린 시신, 정부는 이러한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하게 되면 우선은 장례식장 영안실에 안치 후 사망자의 인적사항 등으로 가족을 찾습니다. 하지만 가족을 찾을 수 없거나 또는 시신인수를 포기하면 화장 후 유골을 “무연고추모의 집”에  10년 동안 봉안하게 되고 그 기간 동안에도 찾아가는 이가 없으면 다른 유골들과 함께 합동으로 매장합니다. 무연고 사망자들은 삶이 탄생했던 환희의 순간과는 너무도 대조되는, 장례식 조차 없는 쓸쓸한 죽음으로 세상과 이별하게 되는 겁니다.

고독사2

 

무연고의 고립사 그리고 고립사의 무연고 

단어의 정의를 놓고 본다면 무연고 사망자와 고립사는 분명히 다른 이름입니다. 그러나 무연고 사망자들의 죽음이 외롭고 쓸쓸했다는 점에서 고립사의 고립과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어느 하나를 다른 것의 이름으로 불러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 만큼 고립사와 무연고사망자는 참 닮아 있습니다. 사회적 요인이든 또는 개인의 문제든, 그 고립이 기원한 지점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두 죽음 모두다 외롭고 쓸쓸하다는 데 공통점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사회가 각박하고 차가워지는 만큼 이러한 죽음들은 날로 늘어가고 있습니다. 2016년 발표된 통계 자료에 따르면  ([통계]2015년 무연고 사망자 통계) , 지난 2015년 무연고 사망자는 총 1,245명으로, 2014년에 비해 23.5% 증가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의 숫자는 통계로는 제대로 파악조차 힘든 고립사의 숫자만큼 매년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고독사3

하지만 정부와 사회의 노력은 노인의 고립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고립사 그리고 무연고 사망자는 그러나 비단 노인의 문제만이 아닙니다(노인의 고립사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 또한 여전히 더디고 모자라게 진행되어 안타깝습니다).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어린 아이부터 홀로 삶을 살아낸 청년, 세상과 단절된 중장년까지 나이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는 것이 무연고 사망자의 현실입니다. 때문에 보다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고립사와 무연고 사망자를 이해하는 것은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데 있어 중요합니다.

무연고 사망자들의 연고자가 장례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비싼 장례 비용과 복잡한 절차들을 해결하고 저소득층들의 장례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고립사와는 그 발생 원인의 결이 다릅니다. 이렇듯 보다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보다 주의깊게 무연고 사망자의 발생 이유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출발은 고립사와 무연고 사망자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있겠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고립사와 무연고 사망자, 그 분간하기 힘든 그러나 너무도 닮은 두 외로운 죽음을 더 이상 고민할 필요도 없을 만큼 건강하고 따뜻한 사회가 얼른 도래하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최지은 /  쓸모있게 살고자 공부하고 노력하는 사람

※ 이 글은 나눔과나눔에서 자원활동하고 계신 최지은님이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