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어린이 무연고사망자, 가족이 또 다른 가족을 버리게 하는 사회

어린이가 무연고사망자로 삶을 마감한다. 어떻게 100여 일 산 아기가, 아니면 20여 개월 산 아기가 무연고사망자로 세상을 떠날 수 있을까. 부모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아기는 없다. 따라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모가 누구인지 혹은 부모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아기가 죽었을 때 ‘어린이 무연고사망자’가 된다.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갈 날이 많은 아기. 그래서 아기의 장례는 그 누구의 어떤 장례보다 버겁다. 물론 죽음은 나이와 무관하기 때문에 아기든 노인이든 상관없는 것이라고 이성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기의 장례를 치르는 날은 무엇이라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몰려와 감정을 주체하기 어렵게 만들곤 한다.

 

가장 버거운,  세 번의 어린이 무연고사망자 장례지원

지난해 2016년 3월 31일은 나눔과나눔 장례지원 중 가장 버거운 장례가 있었던 날로 기억한다. 장례를 위해 여느 때와 같이 구청으로부터 무연고사망자 관련 공문을 받았다. 그런데 생년월일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사랑(여) 2015년 12월 15일 생.” 어떻게 100여 일의 짧은 삶을 살다간 아기가 무연고사망자 일 수 있을까. 나사랑 아기는 태어나고 20일이 지난 2016년 1월 5일 서울시 관악구에 있는 베이비박스에서 놓였다. 그러고는 같은 해 2월 15일 선천성 심장병으로 서초구 어린이병원에 입원했다가 3월28일 이 세상에서 104일을 살고는 하늘나라로 갔다. 아이가 죽고 아이 부모를 찾을 수 없어 ‘어린이 무연고사망자’로 나눔과나눔이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올해 2017년 2월 6일에는 유하은 아기 장례가 있었다. 여자 아기인 하은이는 2014년 9월 11일생으로 서울시 관악구 베이비박스에서 발견된 이름도 알 수 없는 아기였다. 안타깝게도 2017년 1월 31일 서울시 서초구 어린이병원에서 폐렴으로 28개월의 삶을 마감했다. 하은이도 부모가 누구인지 알 수 없어 ‘어린이 무연고사망자’가 되어 나눔과나눔에서 장례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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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한창 벚꽃이 피었다 지고 있을 무렵인 2017년 4월 23일, 한별 아기의 장례가 있었다. 남자 아기인 한별이는 2016년 10월 26일 태어나, 태어난 지 보름 만에 서울시 관악구 베이비박스에서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입으로 수유를 못하고 코에 호스를 끼워야 하는 상태였다. 그러고는 지난 4월 15일 폐렴으로 어린이병원에서 171일의 짧은 삶을 마감했다. 한별이도, 사랑이와 하은이처럼 결국은 부모를 확인할 수 없어 ‘어린이 무연고사망자’로 나눔과나눔이 장례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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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무연고사망자 장례는 참, 슬프고, 눈물이 나서 장례를 진행하기 어려울 정도다. 어느 장례나 숙연해지고, 안타까운 마음은 똑같다. 보통의 장례는 살아온 인생의 무게로 느껴지는 감정이 버거운데, 어린이 무연고사망자 장례는 살아온 날이 아니라 살아갈 날을 마저 하지 못한 아기의 주검 앞에서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몰려온다. 베이비박스에 놓여진 아기들은 꽃 피는 봄도 제대로 맞지 못하고, 허망하게 하늘로 갔다.

 

베이비박스와 어린이 무연고사망자

현재까지 나눔과나눔이 진행한 ‘어린이 무연고사망자’ 장례는 모두 베이비박스에 놓인 아기들이었다. 베이비박스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아기를 키울 수 없는 사람이 남몰래 아기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만든 장치다. 그렇다 보니 “베이비박스가 아기를 쉽게 버릴 수 있는 영유아 유기를 돕는 통로로 악용되고 있다”, “아니다. 길바닥에 버려진 아기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을 보고만 있으라는 소리냐, 어린 생명이 혹시라도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등 베이비박스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베이비박스에 대한 찬반논쟁은 사람의 생명, 특히 아기의 생명과 관련되다 보니 그 누구도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주제다.

하지만 이 문제와 관련해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지점은 우리 사회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사회적 현상이다. 경제적 형편 때문이든, 원치 않는 임신이었든, 어떤 이유에서든 2017년 문명사회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가족(부모)이 또 다른 가족(아기)을 포기하게 만들고 있다. 이것은 비단 ‘어린이 무연고사망자’에서만 발견되는 현상은 아니다. 사실 혼자 태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연고자는 어딘가에 있다. 찾지 못할 뿐이다. 무엇보다 무연고사망자 장례를 진행하면서 현장에서 알게 된 것은 연고자에게 가족의 사망 소식이 전달되었지만 경제적 이유, 단절 등의 이유로 가족이 또 다른 가족을 포기하는 비율이 80% 이상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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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현상은 결국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가족이 가족을 버리게끔 만들고, 그렇지 않으면 살 수 없게 만들고 있는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참, 비정한 사회다. 우리 사회에서는 베이비박스가 아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미담으로 통용되고 있다. 어쩌다 우리 아이들에게 ‘베이비박스’가 유일한 생명의 구원줄로 여겨지게 되었을까. 그리고 가족의 시신을 포기해야만 그나마 또 다른 가족의 부담을 없앨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어쩌다 우리들에게는 ‘시신위임서’가 그나마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되었을까.

 

죽음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책무’는

정말 어느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싶을까? 또 어느 자식이 부모의 시신을 포기하고 싶을까? 아마도 이것은 살아남은 가족에게는 평생의 부채가 될 것이다. 하지만  가족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그들만의 가족사가 있고, 그 이면에는 여러 속내가 있기 때문에 과연 누가 아기를 버린 부모를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그리고 자식의 시신을 혹은 부모의 시신을 인수하지 않은 또 다른 가족을 그 어느 누가 욕할 수 있을까.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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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또 다른 가족을 버리게 하는 사회. 그래서 아기든, 청년이든, 중장년이든, 노인이든 모두가 홀로 외롭게 살다, 외롭게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사회. 이제는 가족만을 탓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은 누구나, 특히 아이들은 어떠한 경우든 한 사람으로 존엄하게 성장하고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한 경우라면 국가가 돌봐야 하는 것은 책무에 다름 아니다. 태어남에 있어 어느 아기는 축복받고 또 어느 아기는 저주받고 태어나지 않는다. 죽음에 있어서도 어느 시신은 장례식을 반드시 치러야 하고 또 다른 시신은 장례식을 치를 수 없는 죽음은 없다. 이렇듯 태어남과 죽음은 똑같이 평등해야 한다. 5월5일은 어린이날이었고, 5월8일은 어버이날이었다. 그래서인지 가족을 위한 다양한 행사들이 있었다. 이러한 행사들을 보며 2017년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의미는 무엇일지 그리고 ‘어린이 무연고사망자’ 죽음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책무’는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더 깊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이제는 아기부터 노인까지 진지하게 사회보장으로서의 존엄한 삶의 마무리, 죽음을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 이 글은 나눔과나눔 박진옥 사무국장이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