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사회보장으로서 공영장례를 상상하라

구사회위험(old social risks)과 신사회위험(new social risks)

질병·실업·산업재해 등은 전통적으로 구사회위험(old social risks)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인구고령화와 가족 구조가 변화되면서 구사회위험과 구분되는 신사회위험(new social risks)이 제기되고 있다. 신사회위험이란 “탈산업사회로의 이행에 따른 경제·사회적 변화의 결과로 사람들이 생애 경로에서 새롭게 직면하게 되는 사회적 위험들”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인구·가족 구조·성역할 등의 변화로 인해 여성의 경제활동이 증가하면서 전통적으로 여성이 담당하던 가족 내의 돌봄 기능이 약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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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어린이·노인·장애인 등에 대한 돌봄을 더 이상 가족이 해결할 수 없게 되었고, 이제는 이러한 돌봄 기능을 점차 사회보장의 형태로 해결해야 할 필요성이 증대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빈곤층 가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산층 가구를 포함한 사회 전 계층에서 돌봄 서비스에 대한 수요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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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났을 때는 누군가에게 사랑받았을 생명인데도 마지막을 지켜봐주는 사람 하나 없이 그냥 처리될 뿐

전통적으로 관혼상제는 개인과 가족 공동체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특히 장례 절차와 같이 죽음과 관련된 문제는 가족 공동체가 해결해야 할 돌봄 서비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1인가구가 증가하고 가족이 해체되면서 이제는 장례 절차와 같이 죽음과 관련된 문제를 가족 공동체가 책임지고 해결하기에는 점차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고립사(孤立死)’와 ‘무연고사망자’의 증가다. 죽어도 연락할 가족이 없거나 연고자가 있더라도 오랜 교류 단절, 경제적 어려움 등의 이유로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포기한다. 특히 무연고사망자의 대부분은 가족이 있다. 하지만 가족이 또 다른 가족의 시신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부모가 자식의 시신을 포기하고, 자식이 부모의 시신을 포기한다. 이와 같은 경우 무연고사망자는 ‘직장(直葬)처리’ 된다. 최소한의 빈소도 마련되지 않고 전통 장례 절차도 없다. 가족이나 지인들이 참여하기도 어렵다. 시신만 화장된다. 무연고사망자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존엄성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태어났을 때는 누군가에게 사랑받았을 생명인데도 마지막을 지켜봐주는 사람 하나 없이 그냥 처리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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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수급가정의 경우 75만 원의 장제급여가 지원되고 있으나 이는 장례 비용이라기보다는 시신수습 비용 정도로 봐야 할 금액 수준이다. 이 지원 금액은 서울시가 적극 권장하고 있는 착한장례 비용 600여 만 원 수준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기초생활수급가정의 경우도 무연고사망자와 유사하게 직장(直葬)으로 장례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와 같이 이제는 죽음마저도 점점 개인과 가족 공동체가 대응하지 못하고,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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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장례 절차와 같이 죽음과 관련된 사안을 가족 공동체가 대응하거나 해결할 수 없다면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냥 개인과 가족의 문제이니 국가는 지켜봐야 하는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보자. ‘건강’은 개인과 가족공동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질병’으로 가족공동체가 위험에 빠져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때 국가는 ‘건강보험’으로 질병이라는 사회적 위험에 대응한다. ‘실업’ 역시 어쩌면 개인과 가족공동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업에 따른 소득 감소로 가족공동체가 위험에 빠질 때 국가는 ‘고용보험’으로 실업이라는 사회적 위험에 개입한다. 이러한 사회보험 방식 외에도 소득이 없는 사람을 위해서는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공공부조 방식으로 사회적 위험을 제거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인구·가족 구조·성역할 등의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가족의 돌봄 문제, 즉 ‘신사회위험’ 역시 이제는 ‘사회 서비스’ 측면에서 새롭게 대응 방안을 마련하여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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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서비스의 탈상품화(decommodification)가 절실히 필요

복지국가의 발전 수준은 국민들의 삶에 있어서 시장 의존성을 얼마나 줄이느냐, 즉 탈상품화(decommodification)의 수준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한다. 탈상품화란 “탈시장화라고도 하며 상품이나 서비스의 거래, 이용, 소비 등에 있어서 시장원리의 배제 정도. 즉 돈이 없는 사람에게도 소비의 기회를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복지국가에서는 이미 시장화되어 있는 부분을 공공의 영역으로 이전시켜 복지 서비스와 관련하여 국가의 책임과 역할을 강화시키기도 한다. 시장을 통해서 복지 서비스가 이루어지는 경우 지불 능력이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간의 격차가 발생하고, 그것을 통해서 삶의 질에 격차가 발생한다. 그런 점에서 복지가 사회구성원들 사이의 연대를 강화시키고 집단적으로 사회적 위험에 대처하는 제도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사회 서비스의 탈시장화와 탈상품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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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서비스가 복지 서비스로 탈상품화된다면 어떨까? 공영장례제도가 마련되어 재정적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도 직장(直葬) 방식의 장례가 아닌 최소한 가족과 제대로 이별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사회보장으로서 공영장례제도가 마련된 사회를 상상해본다. 장례는 죽은 사람의 존엄한 삶의 마무리에 그 기본적 의미가 있다. 또한 장례는 다른 가족과 지인들에게 돌아가신 분과의 감정을 정리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함께 살아가며 사랑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던 희로애락의 그 숱한 시간들을 회상하며 한편으로는 이해하고 또 다른 편에서는 화해하는 시간이자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재정적 이유로 장례가 생략된다면 살아 있는 가족에게는 평생 풀지 못하는 숙제가 남을지도 모른다. 결국 이것이 사회적 불안이 되고 사회적 비용이 될 수도 있다.

 

국가가 이를 선택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을 뿐

장례와 같이 죽음과 관련된 문제를 이제는 ‘신사회위험’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 이제는 가족공동체가 이에 제대로 대응하거나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문제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 고립사와 무연고사망자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점점 심각해지는 현상을 당장 막거나 줄일 수 없다면 외롭게 돌아가는 이들을 국가가 어떻게 잘 보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미 정답은 나와 있다. 사회보장으로서 공영장례제도를 도입해 장례 서비스가 복지 서비스로 탈상품화하는 것. 국가가 이를 선택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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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나눔과나눔 박진옥 사무국장이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