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샐러리맨이 쓴 고립사 기사들

 

2016년 1월부터 2017년 8월까지 네이버 트렌드에서 ‘고독사’를 검색한 결과. 고독사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언론은 흔히 ‘사회의 공기’라고 일컬어진다. 누가 언제부터 이런 말을 만들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말을 가장 많이 쓰며, 언론의 중요성에 대해 가장 많이 언급한 사람들은 언론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언론이 자기 PR을 한다고 고깝게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의도가 무엇이건 간에 언론의 정보 생산 활동은 개인을 사회의 한 구성원인 시민으로 만드는 공기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자연에서 인간이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며 사는 것처럼, 시민은 언론이 만든 정보를 받아들이며 사회와 연결돼 살아간다. 언론에 의해 선택되지 않은 정보는 사회에 없는 정보가 되며, 언론이 보도했을 때 비로소 사회에 존재하는 정보가 된다. 언론은 정보 소비자인 시민들에게 사회 내에서 판단의 참고가 되는 상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사회의 공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언론이 똑똑한 것도, 시민이 무지한 것도 아닌 단순 정보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인과관계다.

하지만 언론이 정말 사회에서 순기능을 하는 공기인지에 대해선 고립사와 무연고 사망자의 영역을 계속해서 지켜봐온 활동가로서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구글, 네이버, 다음과 같은 대형 포털사이트에 고립사나 무연고 사망자를 검색해 보면 A4용지 1/2나 1/4분량 정도의 기사들이 수도 없이 뜬다. 흔히 중앙지라고 불리는 곳에 종사하는 기자들이 쓴 기사를 보면 대개 고립사 사례를 적고, 관련 통계를 인용한 뒤, 전문가나 관련자의 코멘트로 끝내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진다. 대다수의 기사가 얕은 수준의 ‘주제 중심 프레임’과 얕은 수준의 ‘일화 중심 프레임’이 혼합된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다. 지방지에서 만들어낸 기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역에서 고립사가 발생했다는 짧은 기사, 지방정부에서 시작한 고립사 예방 캠페인과 관련된 기사 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방송사의 리포트도 별반 다르지 않다). 방송이든 지방신문이든 중앙지든 고립사나 무연고 사망자 문제에 대해 ’깨끗한 사회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 정도로 보도하고 있고, 그 수준도 얕은 게 언론 보도의 실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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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단편적인 뉴스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종종 눈에 띄는 기획기사도 있다. 기획기사는 앞에서 언급한 짧은 기사보다 몇 발자국 더 들어간 것들이다. 한마디로 기자의 땀 냄새가 조금은 묻어나오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동안 수많은 무연고 사망자 사례를 접해본 활동가 입장에선 이들의 작업에 대해 만족하기 힘들다. 고립사나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현장 취재보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자료나 코멘트를 딴 기사가 많고, 옳지 못한 방향을 제시해 사회적 갈등을 낳는 기사도 더러 있다. 이러한 기사가 과연 우리 사회에 어떠한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고 사회 구성원 간에 오해와 갈등을 만들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지난 8월 무연고 사망자에 대해 실린 한 일간지의 기사에서는 앞에서 이야기한 걱정이 현실이 된 적이 있다. 모든 사람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보내줘야 할 사회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중심이 아닌, 장례비용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기사였다. 기사는 조회수가 높아 포털사이트 메인에 떴고 기사의 방향대로 네티즌의 댓글도 많이 달렸다. 댓글의 내용은 대부분 사회 한 구성원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이었다. 기사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언론사 내부의 일이겠지만, 그것이 다른 사회 구성원을 가해자로 만들고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언론이 공익에 기여 한다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물론, 기자들의 업무에 대해 모르는 바는 아니다. 기자라면 누구나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나 사건으로 들어가 메시지가 들어간 기사라는 상품을 마감 시간에 맞춰 째깍째깍 제출해야하는 고된 노동을 해야 한다. 이 거친 노동을 잠까지 덜 자고, 바깥바람을 매 맞듯 맞으며 반복해야 하는 게 기자들이다. 하지만 기자의 고된 노동 환경과 기사의 생산 구조가 기사로 인한 피해자의 상처와 사회적 갈등 유발을 낳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변명이 되지 못한다. 이는 정보를 다루는 기자 개인들이 더 잘 알지 않을까 싶다. 정보를 생산하는 어떤 영리기업의 샐러리맨이 쓴 기사가 아닌,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사회 현상의 맥을 짚는 기사를 써주기 바란다. 언론이 사회의 공기로 남아야지 사회의 공해가 돼서야 쓰겠는가.

사족을 하나 달자면, 나눔과나눔은 2017년 10월 26일 조그마한 북콘서트 하나 열 예정이다. 샐러리맨 기자여서 못하거나, 하지 않았던 취재를 지난날의 취준생이었던 기자 지망생들이 제 돈을 써가며 고립사와 무연고 사망자에 대해 심층 취재한 것이다. 샐러리맨 기자보다 나은 취재와 나은 결과물을 내놓았던 (전)취준생들의 이야기를 북콘서트 형식을 빌려 할 예정이니 많은 참여 바란다.

 

※ 이 글은 나눔과나눔 강일구 활동가가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