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립사, 한국 사회에 길을 묻다①” 아흔 두 개의 ‘고독사 예방 조례’가 답할 수 있을까

‘고독사 예방 조례’ 제정율 37.9%

2017년 9월 현재, 대한민국에는 서울특별시를 포함해서 17곳의 광역지방자치단체가 있고, 시와 군 및 자치구 등의 기초자치단체 226곳이 있다. 이 중에서 ‘고독사 예방 조례’가 제정되어 있는 곳은 92곳. ‘고독사 예방 조례’는 2014년 성남시와 서울시 종로구 등이 조례를 제정한 이후 2015년까지 22개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지난 한 해 동안 35개, 그리고 올해 9월 말 현재까지 무려 35개의 조례가 새롭게 제정되었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지방자치단체 5곳 중 2곳 정도에만 관련 조례가 제정되어 있는 셈이다. 특히 지난 6월부터 4개월간 30여명의 고독사가 발생한 부산의 경우 고독사 예방 조례를 제정한 기초단체는 16개 중에서 6곳(중구, 영도구, 금정구, 사하구, 서구, 북구)뿐이다. 서울의 경우도 기초단체 25개 중에서 16곳 정도이다.

고독사예방조례들

조례의 주요 골자는 예방계획 수립․시행

아흔 두 개의 ‘고독사 예방 조례’의 주요 골자는 매년 자치단체장이 민․관 협력으로 ‘고독사 예방체계’를 구축하고, 고독사 위험군 현황조사 및 서비스 제공 등의 ‘고독사 예방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있다. 예방계획에는 공통적으로 홀로 사는 노인 또는 고독사 위험 노인에 대한 다음 여섯 가지 계획을 포함하고 있다.
고독사예방조례_예방계획

그리고 ‘고독사 위험자’ 등에 대한 지원은 대체로 다음 다섯 가지 지원 사항을 포함하고 있다.
고독사예방조례_지원

조례는 고립사 예방을 위한 뾰족한 묘수일까?

‘고독사 예방 조례’가 2016년과 2017년 9월까지 무려 70개가 제정된 현실은 지방자치단체의 고독사 예방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그리고 한국사회의 고립사의 심각성을 사회가 인식하고 반응하기 시작했다는 방증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아흔 두 개의 조례는 고립사 예방의 뾰족한 묘수라고 보기에는 몇 가지 아쉬운 한계 지점들이 있다.

고립

    우선 논란의 소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조례 명칭이 ‘고독사’ 예방 조례라는 지점이다. 국내에서 ‘고독사(孤獨死)’라 부르는 죽음을 일본에서는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죽음이라는 의미로 ‘고립사(孤立死)’라고 부르고 있다. 나눔과나눔 역시 고독이라는 단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의미를 고려할 때 ‘혼자 생활하다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개인적 측면이 아닌 ‘사회적인 단절과 고립된 상태’라는 사회적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고독사’ 대신 ‘고립사’를 사용하고 있다.

현재 고립사는 1인가구로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상태에서 생활하다가 혼자 죽고, 죽은 이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 발견되지 않는 무연사의 형태를 띠고 있다. 고립사(孤立死)에는 반드시 고립생(孤立生)이 앞서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적 고립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조례를 고민했다면 ‘고독사’ 예방 조례보다는 ‘고립사’ 예방 조례라고 하는 것이 사회적 의미에서 더 타당하지 않았을까.

노인

   두 번째는 지원대상이다. 아흔 두 개의 조례 가운데 올해 8월에 제정된 서울시 강동구의 조례를 제외하고 다른 모든 조례는 지원대상을 “만65세 이상 홀로 사는 노인”으로 한정하고 있다. 사실 국가적 차원에서 고립사 통계를 작성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느 연령대의 고립사가 높은지, 비율은 어떠한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래서 자주 인용되는 바와 같이 무연고사망자 통계를 바탕으로 고립사 현황을 유추해 볼 수밖에 없다. 매년 발표되는 무연고사망자 통계를 보면, 무연고사망자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연령대는 50대에서 60대 초반이다. 그렇다면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고립사 위험군 역시 50대까지 그 대상을 확대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어째서 이렇게 중요한 현실을 ‘고독사 예방’ 조례는 반영하고 있지 않았을까? 게다가 조례의 대부분은 최근에 2년 사이에 사회문제를 반영해서 제정된 것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고독사 예방 조례’의 한계가 명확해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실제 고립사는 중장년층에서 더 많이 발생하는데도 조례는 65세 이상 노인층에 집중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다른 조례들도 강동구 조례 지원대상과 같이 “50세 이상의 1인 가구”까지 그 지원대상을 확대하게 된다면 현재 제정된 조례들이 고독사 예방을 위해 조금 더 뾰족한 묘수가 되지 않을까.

고독사예방조례

   세 번째는 대부분의 조례가 지역별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다. 물론 조례는 최소한 혹은 가장 핵심적인 사항만을 규정하고 세부적인 사항은 예방계획 등 시행 시점에서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도시 서울부터 전라남도 해남군, 경상북도 봉화군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례가 8조 내지 10조로 거의 동일한 구성과 동일한 조문으로 A4용지 1페이지 분량이라는 점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어느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원내용에 호스피스 서비스 등을 색다른 사항을 포함한 곳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거의 유사하다고 봐야할 것이다. ‘고독사 예방’ 조례 제정은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시기적절하고 그 의미도 크다. 하지만 실효성 있게 지방자치단체 별로 지역특성과 상황을 충분히 반영해서 고독사의 원인과 처방을 적확하게 하려는 노력이 제정단계에서부터 고려될 수는 없었을까.

20170923_이시원&김상진님_무연고사망자장례 (3)

   네 번째는 사후관리 서비스와 장례서비스 제공의 한계이다. 조례에는 “장례식장, 응급의료기관, 소방서 및 경찰서 등 관련 기관과 연계하여 고독사 노인에 대한 사후관리 서비스 등을”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 대상을 무연고자가 사망한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예상컨대 예산 등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사실 무연고사망자 시신의 화장은 기초단체의 몫이다. 따라서 이러한 조례가 아니어도 기본적으로 무연고사망자 시신은 기초단체가 그 행정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다행인 지점은 단순 화장절차가 아닌 장례서비스라고 규정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진일보 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강제규정이 아닌 임의규정으로 “장례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고립사 예방 예산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는다면 장례서비스는 불가능할 것이고 현재와 다를 바 없는 무용지물의 규정이 될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일수록 고립사의 공포가 크다. 그래서인지 이분들은 오히려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그래서 어려운 형편에도 어떻게든 본인의 장례비 정도는 마련하고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연이 종종 뉴스에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고립사한 분들의 많은 경우는 무연고사망자로 시신이 화장된다. 가족이 있지만 단절과 경제적 이유 등으로 가족이 시신을 인수하지 않는다. 본인들도 이러한 현실을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고독생을 살고 있는 분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사회가 사망 후에 책임지고 장례를 치러드리겠다는 ‘결연장례’와 같이 미리 장례를 약속하면 어떨까. 이렇게 할 때 고립생을 살다 고립사하는 분들의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지원하는 실효성 있는 조례가 되지 않을까.

말벗

   마지막 다섯 번째로 조례 규정에 따라 노인생활관리사가 말벗이 되고 개인적 심리적 영향을 최소화 하는 심리상담 및 치료를 지원한다고 해서 고립생의 문제가 해결될지, 그리고 돌아가시고 최단 시간에 발견하는 것이 고독사를 진정 예방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해 여전히 의문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어쩌면 고립사의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A4 1페이지의 조례가 아니라 온 지역사회가 함께 서로에게 인기척을 내야하는 것은 아닐까. 즉, 조례와 같은 시스템도 필요하다. 하지만 사회적 문화와 인식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시스템의 작동에는 한계가 분명할 수밖에 없다. 조례가 만들어진 지역에서는 지역사회가 함께 어떻게 하면 실질적으로 고립사를 예방할지 공동체안에서 여러 방안들을 검증해 나가야 할 것이다.

고립사가 한국 사회에 길을 묻고 있다. 한국 사회는 이제 대답해야 한다. 아흔 두 개의 ‘고독사 예방 조례’가 답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래도 아흔 두 개의 조례가 만들어졌고, 이제 사람들이 혼자 외롭게 살다 아무도 곁에 없이 쓸쓸하게 삶을 마감하는 이웃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변화의 흐름은 시작되었다.

 

※ 이 글은 나눔과나눔 박진옥 사무국장이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