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장례이야기] 그가 떠나는 날, 누군가는 세상에 남겨졌다

그가 떠나는 날, 누군가는 세상에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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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후 남은 사람들

무연고사망자 장례를 치르다 보면 유가족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만을 알게 됩니다. 고인에게 가족이 있었고, 그 가족 중에 누군가가 시신인수를 포기해서 무연고자가 되었다는 행정적인 정보밖에 없기에, 장례에서는 남아있는 가족들의 심정을 헤아리기 보다는 고인께 더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드문 경우지만 승화원에 운구를 진행하는 시간에 처음 보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이 유가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장례의 초점이 고인에게서 그들에게로 옮겨지게 됩니다. 그리고 장례에 참석하지는 못하지만 유가족의 안타까운 상황들을 알게 되는 경우 역시 장례보다는 사연에 더욱 무게가 실리기도 합니다. 떠나는 사람 뒤엔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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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주검과 며칠을 함께 보낸 노모

12월 초 무연고장례를 치른 한 고인은 서울 북부의 한 아파트에서 돌아가신 채 발견되었습니다. 공문을 받고 구청에 연락했더니 고인의 사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고인에겐 이복형제들이 있었지만 관계가 단절된 지 오래였습니다. 그리고 고인은 중증 치매를 앓고 계신 친모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지난 11월 초 고인을 발견한 건 어머니의 요양보호사로 이미 고인은 사망한 지 며칠이 지난 후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을 알지 못한 채 요양보호사가 방문하기까지 며칠을 싸늘히 식은 아들의 주검 옆에 함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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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자식은 사고로 보내고, 의붓자식들은 자신을 버리고

고 정○○의 장례에 어릴 적 친구 분들이 찾아오셨습니다. 고인은 위암2기 판정을 받고 치료에 전념했지만 홀로 지내며 제대로 된 요양을 받지 못해 끝내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평소 술도 드시지 않고 등산과 축구를 열심히 하는 등 고인은 성실한 생활을 했고, 친구 분들과도 어릴 적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합니다. 고인이 돌아가신 후 장례를 치르기 위해 방법을 알아보았지만 친구 분들은 가족이 아니면 치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
고인은 어릴 적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고아원에서 생활하다 친척에 의해 강제노역까지 하시는 등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고, 성인이 된 후 결혼하고 배우자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낳았으나 이혼하는 과정에서 의문의 사고로 자식을 잃었습니다. 이후 자녀가 셋 딸린 아내분과 사실혼 관계로 사셨고, 사업을 열심히 하여 세 자녀를 대학에 보내고 잘 돌보았습니다. 하지만 아내분이 돌아가신 후 자녀들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모두 고인과의 연락을 끊었고, 고인은 홀로 지내시다가 결국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서류상 가족이 아니었기에 고인의 부음마저 전하지 못했습니다. 친구 분들은 마지막까지 고인과 자녀들의 관계를 회복시키려 애쓰셨지만 고인은 자녀들이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끝내 홀로 지내길 고집했다고 합니다. 장례에 오신 친구 분들은 파란만장한 고인의 삶을 기억하며 안타까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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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가족은 없지만, 마지막을 지켜준 새로운 가족들…

2017년 12월 7일 서울시 종로구 노인복지관으로부터 장례지원 신청이 들어왔습니다. 복지관에서 돌보고 계셨던 분인데, 가족이 아무도 안 계셔서 무연고자 처리가 될 것 같다는 내용이었고, 나눔과나눔이 장례를 할 때 참석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지난 2017년 5월에도 같은 복지관으로부터 같은 내용의 신청(고 조형수 님)을 받은 적이 있는 터라 장례일이 확정되자마자 연락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12월 26일 종교 자원활동가분들과 복지관 식구들, 그리고 나눔과나눔이 함께 고 이준식 님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새로운 가족들이 함께한 따뜻한 장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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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엔 30만 원,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가려 했습니다.

2017년 12월 중순 기초생활수급자 장례지원 신청을 받았습니다. 5년 전부터 병상에 누워계신 아버지(김종운 님)께서 위독한 상황이라 장례를 치르고 싶은데, 수중엔 30만 원밖에 없고, 가족은 아들인 본인밖에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아드님은 디스크로 몸이 불편하고, 고시원에 살고 있으며 일용직으로 직업도 불안정한 상황이었습니다. 젊었을 때 사업에 실패하여 신용불량자가 되어 장례는커녕 병원비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님도 4년 전 대장암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마저 돌아가시면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해 하셨습니다.
“아버님이 중환자실에 계시는 동안 의식이 없었어요. 그러다 지난 토요일에 잠깐 정신이 드셔서 30분 동안 이야기를 했어요. 아버님이 저한테 ‘죽지 말고 살라’고 하셨어요. 사실 죽으려고 몇 번 했었거든요. 그런데 노인네 때문에 못 죽었어요. 제가 죽으면 하다못해 아버님 장례도 못 치르잖아요. 그러면 무연고자가 되는 거잖아요.”
아드님은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사방으로 알아보던 중 병원으로부터 아버지께서 위독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안타깝게도 이미 사망한 후였습니다.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는 아버지의 얼굴을 만지며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아들은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병원비는 동사무소에서 긴급지원을 받았는데, 장례가 걱정이었습니다. 얼마 전 TV에서 가족이 포기하면 무연고자가 되는 사연을 본 적이 있는 아드님은 자신이 그런 상황에 놓인 것이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포기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니 그 이후에 제가 어떻게 살 수가 있을까 상상만 해도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도 마지막으로 무슨 수라도 써야지 하며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나눔과나눔을 발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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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가 절실한 사람들

아버지의 장례가 끝난 후 아드님은 앞으로 열심히 살겠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아픈 몸도 꾸준히 치료하고 일도 열심히 해서 아버지의 유언처럼 죽지 않고 살아 좋은 일도 많이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돈 없는 사람들은 장례를 치르지 못하면 무연고로 보낼 수밖에 없어요. 만약에 제가 그랬다면 저는 어떻게 살겠어요? 아버지 장례를 치를 수 있어서 진짜 다행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장례가 흔히 죽은 사람들을 잘 보내는 의식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나눔과나눔에서 장례를 지원하면서 장례는 살아있는 사람들, 세상에 남겨진 사람을 위해 꼭 필요한 절차라는 걸 확인하게 됩니다. 빈소를 마련하고 고인과 마지막 이별하는 시간, 그 과정을 보내면서 남아있는 사람들은 고인에 대해 추억하고, 감정을 정리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새롭게 재정비합니다.
장례는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의식임을 고 김종운 님의 장례를 통해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장례지원신청서(수정)

이 글은 나눔과나눔 부용구 전략사업팀장이 작성한 글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이름들

기초생활수급자
김종운

12월 무연고사망자
강종만, 최천규, 정강현, 지미소, 조경, 이순식, 김연광, 이승근, 유하늘, 오광돈, 손철수, 이홍제, 김창기, 윤대형, 백승호, 김무식, 불상, 박희범, 김상호, 인고간터, 전일수, 김영미, 김성은, 박지돈, 박덕순, 조순곤, 황대연, 김학철, 이준식, 성상경, 정금훈, 윤철희, 전정근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서른세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