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사회보장으로서의 공영장례, 궁금한 점 세 가지”[1] 공영장례 누구를 위한 것일까

모든 사람은 언젠가 세상을 떠난다. 그래서 죽음은 모두에게 공평하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에 올 때 모두 똑같은 모습으로 왔다고 해서 세상을 떠날 때도 모두 같은 모습으로 떠나는 건 아니다. 죽음의 의식인 장례를 진행하기 위해 수많은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죽음의 의식마저 상업화된 현실 때문에 고인에게 예의를 갖춰야 하는 산 자들의 부담은 커져만 간다. 이렇게 경제적 이유 등으로 부모와 자녀가 그들의 가족의 시신인수를 포기하는 나라! 부모가 돌아가셨는데 장례식장 빈소도 마련하지 못해 못내 미안한 자녀들! 요람에서 무덤까지 존엄한 삶을 살고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꿈꾸며 ‘사회보장으로서의 공영장례에 대한 궁금한 점 세 가지’ 글을 연재한다.

‘가난한 죽음’ 그리고 부담스러운 장례비

흔히 사람들은 말한다. “살 때 제대로 살았으면 주위에서 알아서 장례를 해 준다”라고, 그리고 “어딘가 친척도 있을 것이고 조문객의 조의금으로 어느 정도는 장례비를 충당할 수 있지 않냐”며 “어떻게 가족이 장례를 치르지 못할 수 있냐”라고 남겨진 가족이 돌아가신 망자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것 자체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가족이 죽으면 남겨진 가족이 망자의 장례를 치르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가난한 죽음’ 앞에서 장례는 말처럼 당연하거나 쉽지만은 않다. 또한 가족의 죽음은 삶의 과정에서 큰 상실이자 슬픔이다. 하지만 ‘가난한 죽음’은 슬퍼할 겨를도 허락하지 않는다. 당장 장례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부터 앞서기 때문이다. 수중에 현금은 장례를 치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친척과 지인이라도 많으면 조의금으로 어떻게 장례를 치러볼 용기를 내보겠지만 친척과는 연락이 끊어진지도 이미 오래다. 친구들도 사정은 비슷하고 그나마 몇 명 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남겨진 가족은 ‘가난한 죽음’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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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하나, ‘장례비’가 없어서 어머니 시신을 차에 싣고 다닌 60대 아들”

2016년 4월, 장례비가 없어 두 달 동안 어머니의 시신을 차에 싣고 다닌 60대 아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아들의 기구한 상황은 생활고에서 비롯됐다. 아들은 부동산 경매 등으로 사업에 실패하면서 아내와도 이혼했고 아들은 홀어머니와 단 둘이 살았다. 마땅한 수입이 없었던 그는, 살던 집마저 경매로 잃었다. 그러던 중 2016년 2월 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들은 장례식장 등에 장례 절차와 비용을 문의했지만 장례비는 너무 비쌌다. 아들은 “장례비를 마련할 때까지 일을 해 비용을 마련하려 했다”라고 경찰에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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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둘, ‘장례비’가 없어서 안타까운 선택을 한 아내”

2013년 5월, 경북 경산시에서는 남편 발인을 2시간가량 앞두고 장례비를 마련하겠다며 장례식장을 나선 아내가 자신이 살던 아파트 13층에서 뛰어내리는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 남편도 생활고를 버티지 못하고 같은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지 3일 만에 부인도 같은 장소에서 숨진 것이다. 이들 부부는 IMF 이후 기초생활수급자로 생활했다고 한다. 아내는 지인들에게 줄곧 “장례비 500만 원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부부 모두 무연고 사망자가 됐다.

 

공영장례, 이런 사람에게 필요하다

앞에서 언급한 ‘가난한 죽음’과 부담스러운 장례비 이야기를 어떻게 보편화시킬 수 있겠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든 어려운 상황이지만 자기 힘으로 장례를 치르고 싶었던 아들의 마음을 누가 말도 안 된다고 재단할 수 있을까? 그리고 안타깝게 삶을 마감한 아내에게 여유 돈이 없는 기초생활수급자라면 ‘직장(直葬)’ 방식으로 빈소도 마련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타박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가 평생을 함께 살아온 남편을 빈소도 마련하지 않고 보내고 싶겠는가. 모든 삶이 경제논리로만 판단되고 결정될 수 있는 것일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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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공영장례, 어떻게든 장례를 치르고 싶지만 어디에 어떻게 물어볼지 모르는 사람에게 필요하다. 사실 재정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은 장례식장 또는 상조회사를 통해 상담받고 장례를 진행하면 된다. 하지만 돈이 없는 사람들은 누구에게 어떠한 상담을 받을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나눔과나눔에 기초생활수급자 장례지원 상담전화가 많이 온다. 솔직히 보편적 서비스로 장례를 지원하고 싶지만 아직까지 재정적으로 한계가 있는 비영리민간단체에게 모든 기초생활수급자를 위한 장례서비스는 요원하기만 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가족관계가를 묻고 재정적 상황을 묻는다. 마치 빈곤을 스스로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것 같아 내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현실적 여건 때문에 질문한다. 이럴 때 상당수 사람들은 어떻게든 최소한의 장례비는 마련해 장례는 치러보려고 노력 중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 전화했다고 한다. 상담은 이내 30분을 넘기고 1시간 가까이 진행된다. 사망진단서 발급부터 화장 후 산골 등의 방법까지 어려운 장례절차를 하나하나 설명한다. 그리고 나눔과나눔이 갖고 있는 네트워크를 통해 운구차 등을 저렴한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까지 안내하고 나면 “너무나 감사합니다. 상담받으니 일의 진행이 우왕좌왕 없이 잘 풀리네요.”라며 감사인사를 받으며 상담을 마무리한다. 상담 후 “혹시 진행하면서 어려움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라고 문자를 보낸다. 하지만 대부분 다시 연락은 오지 않는다. 무소식이 희소식인 상황이다. 아마도 장례를 어떻게든 잘 마무리했을 것이다. 다행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어디서 30분 내지 1시간을 천천히 장례에 대해 궁금한 사항을 설명받을 수 있을까? 실제로 장례 용어는 한자어로 일상생활과는 동떨어져 있다. 그렇다 보니 장례를 치러본 사람들조차도 장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이제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 장례를 진행한다는 건 쉽지 않다. 이럴 때 공영장례 제도에 따라 마련된 기관에서 친절한 장례 상담을 해준다면 어떨까? 저렴한 수의를 사용해도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고 위로해주고, 유언이 있었다면 평상복을 입고 가셔도 괜찮다며 형편껏 장례를 할 수 있도록 방법을 안내하는 것 말이다. 장례는 어렵다 하지만 천천히 안내를 받으면 누구나 할 수도 있는 것이 장례다. 그래서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어떻게든 스스로 장례를 치르고 싶어 장례상담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공영장례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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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공영장례, 장례를 치르고 싶은데 재정적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위해 필요하다. 지난 12월 12일 이른 아침 새벽, 장례지원을 신청하는 전화가 왔다. 아버님은 기초생활수급자이시고 아들은 본인 한 명뿐인데, 본인이 사업에 실패하며 빚을 많이 지고 있어 신용불량상태로 고시원에 거주하며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형편이기 때문에 장례비를 치를 돈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나눔과나눔을 알게 되어 연락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공설 병원 장례식장을 찾아가서 알아봤더니 빈소를 차리지 않아도 200만 원 정도 장례비용이 필요하다고 들었다고 한다. 장례 후에 아들은 “자식으로 태어나가지고 마지막을 지킬 수 있어서… 부모 장례도 못 치르면 진짜 무연고 처리했으면, 어떻게 살아요. 어떻게 버텨내겠어요.”라며 장례지원에 감사 인사를 했다. 장례지원을 받은 아들은 50대 초반의 나이로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근로능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근로능력은 있지만 간병과 본인의 질병 등의 이유로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근로능력이 있다고 지금 당장 돌아가신 가족의 장례를 치를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마도 나눔과나눔의 장례지원이 아니었다면 안타깝게도 아들은 아버지의 시신을 무연고사망자로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장례는 망자와 살아 있는 사람의 마지막 인사하는 이별의 시간이다. 경제논리의 관점으로 이별의 시간이 무엇이 중요하냐고 할 수 있겠지만 현장에서 많은 장례를 지원하면서 망자를 잘 보내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평생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장례를 치르고 싶은데 재정적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위해 공영장례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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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공영장례, 장례를 치를 연고자가 없는 무연고사망자를 위해 필요하다.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사회적 고립이 증가하면서 가족이 사망해도 오랜 단절과 경제적 어려움 등을 이유로 시신인수를 포기해서 무연고사망자가 증가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가족이 어떻게든 장례를 치르고 싶다면 사회는 상담과 장례지원으로 가족이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가족이 어떤 이유에서든 장례를 치르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사회는 가족을 대신해서 장례를 치러야 한다.
일본에는 가족 대신에 죽은 뒤의 장례 등의 일처리를 맡아해주는 NPO가 있다. 이러한 NPO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취재한 KBS 한 PD에 따르면 이 분들은 이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가 대단히 높다고 한다. 이것은 일본만이 아니다. 나눔과나눔이 장례를 약속드린 결연장례어르신 역시 “나 죽으면, 내 영정사진 봐줄 아들 같다”며 인사드리러 갈 때마다 정말 반가워하신다. 또한 공공역사에 있던 한 홈리스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죽는 거? 죽는 건 안 무서워. 진짜 무서운 게 뭔지 알아? 내가 죽어서 어떤 식으로 발견될지 모른다는 거야. 그럼 뒤치다꺼리는 누가 할 거야?” 그렇다. 확실히 내가 죽은 이후에 존엄한 삶의 마무리에 대한 사회보장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위로가 된다. 그래서 누가 어디서, 어떻게 죽든, 연고자가 없더라도 사회가 모든 사람의 존엄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보장으로서의 공영장례는 무연고사망자에게 필요하다.

 

‘가난한 죽음’ 그리고 부담스러운 장례비로 가족이 죽으면 남겨진 가족이 망자의 장례를 치르는 것이 옛말처럼 당연하거나 쉽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 되고 있다. 한국사회가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면 이제 가족들에게 알아서 하라는 ‘가족책임’의 원칙에서 ‘공공책임’의 원칙으로, 그리고 능력에 따라 내고 필요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사회적 원칙에 따른 사회보장이 ‘가난한 죽음’과 부담스러운 장례비에도 차별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 ‘사회보장으로서의 공영장례, 궁금한 점 세 가지’ 중에서 ‘공영장례 누구를 위한 것일까’를 생각하며 공공에서 지원하는 장례 상담 및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하게 제공되는 2018년 문명사회를 기대해본다.

※ 이 글은 나눔과나눔 박진옥 사무국장이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