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장례지원] 내 친구의 장례를 왜 치를 수 없습니까?

2018년 1월 장례 이야기
내 친구의 장례를 왜 치를 수 없습니까?

20180130_무연고사망자장례 (2)

프롤로그
2018년 새로운 태양이 떠올랐고, 나눔과나눔은 장례가 없는 열흘을 보냈습니다. 서울시와 계약한 새로운 업체가 무연고사망자 업무 시스템을 갖추기까지 그만큼의 시간이 들었고 그 기간 동안 구청들로부터 온 무연고사망자 공문이 쌓여갔습니다. 1월 11일 금천구 선종호 님의 장례를 시작으로 1월 31일까지 나눔과나눔은 총 17회에 걸쳐 서른네 분의 마지막을 함께했습니다. 올해 1월은 다른 때에 비해 많은 분들과 만남이 있었고 가슴 아픈 사연들도 많았습니다.

20180121_무연고사망자 장례 (7-1)

3, 40년 지기(知己)를 보내는 일이 이렇게도 힘듭니까?
1월 21일 오전 운구가 시작되고 관이 트레일러로 옮겨지는 순간 처음 뵙는 분들이 관 주위에 모여들었습니다. 고 황중훈 님의 화장을 보기 위해 승화원을 찾은 친구분들이었습니다. 병원 장례식장에 여러 번 문의한 끝에 화장일시만 알고 오셨습니다. 친구분들은 “고생만 하다가 갔다”며 고인의 슬픈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구청에 문의해본 바로는 고인에게 부모님이 계셨는데, 서울에서 태어나 30~40년 된 친구분들은 어머니를 뵌 적도 없고 부모님 모두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계셨습니다. 고인은 어린 시절 친척 집에서 살다가 스무 살 때 독립했고 형제도 없고 결혼도 하지 않아서 주위에는 오직 친구들뿐이었다고 했습니다. “키도 크고 체격도 좋고 인물도 좋았어요. 가족만 있었어도 사는 게 달랐을 건데……” 한 친구분은 고인과의 추억을 떠올리시며 끝내 말끝을 흐렸습니다.
고인은 약 3개월가량 병원에서 투병하셨고, 한 친구분이 3개월 동안 계속 곁을 지키셨다고 합니다. 고인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심장판막 수술할 돈이 없다며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친구분은 일단 사는 게 먼저이니 병원비는 차후 문제라며 건강하게 퇴원하고 병원비를 해결하자고 했지만 결국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등 어려움을 겪었고, 입원도 하지 못할 상황에서 약으로만 연명하다 병이 더 악화되었습니다. 수술을 예약하고 친구들의 도움으로 다시 입원을 하고 기다리던 고인은 결국 수술 이틀 전에 돌아가셨고, 친구분들은 수술하는 날 병원을 찾았다가 청천벽력 같은 황망한 소식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80127_무연고사망자장례 (19)

“평생을 혼자 살다 죽을 때까지 혼자 죽었어요. 왜 친구 장례도 못 치르나요?”
고 황중훈 님의 장례가 있은 지 사나흘 뒤 나눔과나눔으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고 고남준 님의 친구분인데 화장하는 날 장례를 꼭 같이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친구분들은 1월 3일 고인이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려 하다가 황당한 상황을 맞았습니다. 평생 고아로 살아 가족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친구분들은 “십시일반을 해서라도 친구들끼리 장례를 치러주고 싶으니 시신을 인수하게 해달라”고 구청에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권한이 없다”, “대답해드릴 수가 없다”라는 말뿐이었다고 합니다.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시신을 인도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고인의 유해는 불가피하게 장례절차 없이 무연고사망자 처리절차를 거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차선책으로 친구분들은 화장할 때 친구들이 직접 운구라도 할 수 있도록 토요일에 화장을 예약해달라고 구청에 강력히 요청했는데, 다행히 화장일정이 마침 토요일로 확정되어 승화원으로 오실 수 있었습니다.
친구분들은 “나눔과나눔과 함께 장례를 치를 수 있어 정말 다행이고, 너무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습니다.

20180114_무연고사망자장례 (22-1)

타국에서 숨진 가족의 시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월 14일 다른 때보다 이른 오전 9시 장례. 승화원의 직원으로부터 고 문세봉 님의 가족이 참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족분들은 고인의 화장이 전날 4시로 알고 오셨다가 다음 날 오전이라는 어이없는 일을 당하신 터였습니다.
빈소 준비를 마치고 운구가 시작되는 장소에서 10여 명의 가족과 지인분들을 만났습니다. 이내 통곡이 터져나왔고 그 울음은 화로에 관이 들어가는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눈물을 흘리신 분은 고인의 여동생이었습니다. 고 문세봉 님은 중국분으로 한국에서 여러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평상시 술을 좋아하셨고 갑자기 건강 상태가 안 좋아져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3시에 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는데, 3시간 만에 병원비가 500만 원이 발생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고인은 돌아가셨고, 슬픔을 가눌 수 없는 와중에 총 병원비가 800만 원 가까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유가족은 무슨 조치를 해서 병원비가 그렇게 많이 나왔냐고 물었지만 사실 확인만 할 뿐 어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중국에 있는 어머니와 딸은 고인의 사망 소식에 놀랐지만 병원비를 내지 않으면 시신을 내줄 수 없다는 이야기에 어쩔 수 없이 시신인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80118_무연고자장례 (22)

고인의 마지막을 외롭지 않게 지켜준 사람들
1월 19일 고 박기리 님의 장례에 서울시 은평주거복지센터 활동가들이 참석했습니다. 고인이 생전에 LH공사의 임대주택에 살 수 있게 지원해준 분들로, 고인은 센터에서 처음으로 지원을 했던 분이었습니다. 고아 출신인 고인은 가족처럼 항상 혼자셨고 생활을 유지하기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 달에 두 번 반찬 나눔을 제외하고는 고인을 찾는 분이 거의 없었는데 돌아가신 지 보름이 되어서야 발견되었습니다. 활동가분들은 고인이 생전에 스스로 재활에 힘쓰셨고 집도 정돈이 잘 되어 오래 사시기를 바랐는데, 사망 소식을 듣고 매우 안타까워 하면서 장례에 꼭 참석하고 싶었다고 하셨습니다.
1월엔 다른 달보다 무연고장례에 참석하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방학을 맞이해 중고등학생들의 참여가 많았는데, 1365자원봉사센터를 통해 나눔과나눔의 무연고사망자 장례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이 함께 장례를 치렀습니다. 생전에 만나본 적도 없고 어떤 분인지도 모르는 무연고자의 장례를 치르며 학생들은 약간은 멍하고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나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같다는 소감을 전하고는 또다시 오겠다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염불봉사단, 서울교회 배안용 목사님, 성문밖교회 김희룡 목사님, 천주교 예수회의 수사님들은 올해에도 고인을 위한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바쁜 시간 쪼개어 장례를 도와주신 자원활동가분들은 많은 장례에도 지치지 않는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20180122_무연고사망자 장례 (12)

에필로그
나눔과나눔은 2017년 한 해 동안 무려 288명의 무연고사망자 장례를 치렀습니다. 2016년 183명에 비하면 57%(105명)의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서울시 25개 구청, 운구업체와 긴밀한 관계를 구축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2016년에 비해 무연고사망자의 수가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정확한 통계는 이후에 발표가 되겠지만 전년대비 약 20%의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1인가구의 비율이 가장 높은 2018년. 경제적인 어려움 등으로 가족이 가족의 장례를 치를 수 없는 현실에 직면했고, 가족이 아니기에 사랑하는 사람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례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작년 하반기 청와대 게시판에 ‘동반자등록법’ 청원의 글이 올라온 일이 있었습니다. 죽음은 이제 개인의 문제를 떠나 사회가 책임져야 할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20180114_무연고사망자장례 (5)

이 글은 나눔과나눔 부용구 전략사업팀장이 작성한 글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이름들

2018년 1월 무연고사망자
선종호, 이한주, 홍철원, 강지애, 고재선, 문세봉, KIM ELZA, 조양식, 김동흥, 부기현, 김현준, 유석환, 서재만, 박기리, 김천혁, 박성호, 김용선, 황중훈, 문보현, 최인준, 박영숙, 김영자, 임병영, 고남준, 김경용, 박상철, 이호성, 김화영, 안희철, 한제구, 이혜빈, 이성열, 서명서, 김유경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서른네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