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장례이야기] 에는 바람은 아물지 않을 상처를 남기고 겨울이 지나갑니다

2018년 2월 장례이야기
에는 바람은 아물지 않을 상처를 남기고 겨울이 지나갑니다

20180223_무연고장례 (4)

눈꽃이 아름다웠던 2월의 승화원을 걸어 내려오며 가슴 아픈 이별을 한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슬픈 사연 속에 장례를 마치고 돌아가는 내내 눈시울이 붉어졌던 가여운 계절이 지나가고, 매섭고 추웠던 겨울바람은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지만 슬픈 이별에 사람들의 마음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래도 모르는 사이 느리게 다가오는 봄소식에 움츠러든 어깨를 펼 날이 머지 않았음을 느낍니다.
일주일에 4~5회의 장례를 치르다 보면 정말 많은 고인 분들을 만납니다. 얼굴 한 번 뵌 적 없는 분의 흔적을 더듬어 생전의 삶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생의 마지막 순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을 고인을 생각하면 마음이 저절로 아파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장례가 반복되면 어느 순간 비슷한 감정이 들면서 상대적으로 무감한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좀 더 고인에 대해 집중하고, 마음을 다하여 장례에 임하려고 합니다.

슬픔

웨딩드레스를 입고 웃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진
가족이나 지인이 참석한 장례는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사연을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고, 감정적으로도 동화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2월초 서른여덟 짧은 생을 마치고 돌아가신 분의 장례에 두 명의 지인이 참석했습니다. 한 분은 고인의 사망현장을 확인하신 분이고, 또 한 분은 고인과 결혼을 하려했던 분이었습니다. 고인은 고아로 가족이 아무도 안 계셨습니다. 혼자 힘들게 살아왔고, 최근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준비했습니다. 4년 동안 교제를 하고 집안에 인사까지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연유에서인지 모르지만 두 분은 헤어지게 되었고,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스스로 안타까운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언장엔 남자친구에게 자신의 마지막을 부탁하는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남자친구는 경찰, 변호사를 찾아가 어떻게든 유언을 지켜주려 노력했지만 아무런 방법이 없었습니다. 가족이 아니면 장례를 치를 수가 없다는 현실. 남자친구 분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아 심리치료를 받는 중이었습니다.
장례의 막바지에 수골과정을 지켜보고 유골함을 받아 든 남자친구는 슬픔 속에 고개만 숙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작은 사진을 꺼내어 유골함에 붙였습니다. 사진 속 고인은 웨딩드레스를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누구보다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20180207_무연고사망자장례  (10)

쓰레기 더미 속에서 발견된 아기
작은 관 위에 올린 양말과 털장갑, 천기저귀
지자체로부터 무연고사망자 공문을 받으면 생년월일과 주소, 사망장소와 사망원인 등을 확인합니다. 통계적으로 연령대나 주거환경, 사망원인이 비슷한 경우가 많지만 가끔 흔치 않은 숫자들을 접하고 눈을 의심하게 되는 때도 있습니다. 불행히도 무연고사망자 중 대상이 아기인 경우가 그렇습니다.
2월 초 받은 공문엔 이름도 주소도, 주민등록번호도 사인도 ‘미상’으로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시체검안서에 쓰여 있던 “주거지 앞 쓰레기 모아놓는 장소에서 발견”이라는 글씨를 보는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혔습니다. 최근 언론에서 비슷한 사연들이 들은 후라 그런 사연을 직접적으로 맞이하게 되니 충격은 말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수사과정에서 친모를 찾아냈고, 가족들은 아기의 시신을 포기해 무연고자가 되었습니다.
장례일 운구차에 실린 작은 관 위엔 종교집례를 위해 찾아주신 조계종 포교사단에서 준비해온 양말과 털장갑, 천기저귀가 올려져 있었습니다. 입관할 때 배냇저고리를 입혔다는 이야기도 전해들었습니다. 장례식에서는 술 대신 바나나우유를 올렸습니다. 장례에 참석한 모두가 한 마음으로 아기의 명복을 빌었고,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20180224_무연고장례 (20)

40년 만에 떼어낸 인공호흡기
뇌성마비로 등이 굽은 채 평생을 살다
2월의 마지막 주말 장례. 전날 내린 눈이 길 양 옆으로 쌓인 승화원을 올라와 익숙한 차 앞에 섰습니다. 리무진 행렬 끝에 주차한 무연고사망자를 운구해 오는 승합차. 그 운구차를 열었을 때 기 막힌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관의 뚜껑이 닫히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전날 운구하시는 분으로부터 미리 전해들었던 터라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그 사연을 알게 되고 나서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린이병원에 입원하고 40년을 살다 돌아가신 고인은 뇌성마비로 평생을 등이 굽은 채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지냈습니다. 병원에 문의한 결과 고인과 유사한 환자들이 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낳은 지 얼마가 지나지 않아 버려져 병원에 입원한 채 평생을 지내고 무연고사망자가 되어 굽은 몸때문에 뚜껑이 닫히지 않은 채 관에 놓이고 마지막 이별을 해야 하는 비정한 현실 앞에 그저 답답한 한숨만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20180226_무연고사망장 장례 (4)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장례
2월의 마지막 장례엔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참석했습니다. 작년 말 노들섬 헬기장 근처에서 돌아가신 채 발견된 고인은 가족이 시신을 위임하여 무연고자가 되었습니다. 장례에 참여한 두 분은 고인의 딸과 아들이었습니다. 장례 안내 차 전화를 걸어 영정사진을 부탁했을 때 오래 전에 이혼한 배우자는 사진이 한 장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혼한 시점에 자녀의 나이는 5살, 3살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지방에서 어머니와 함께 어렵게 살았고, 아버지의 소식은 돌아가신 후에야 들었습니다.
운구가 시작되고 동행하던 딸은 화로에 들어가기 직전,
“관이 왜 이렇게 작아요?”
기억하려 해도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그 아버지가 들어있는 관을 본 딸은 떨리는 음성으로 그렇게 물었습니다. 두 분은 이미 붉어져 있었습니다.

20180223_무연고장례 (23)

에필로그….. 힘든 겨울을 보내며
다른 계절보다 겨울엔 무연고사망자가 더 많이 발생합니다. 삶이 버거운 계절엔 돌아가시는 분도 많고, 시신을 위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시신 위임의 이유로 경제적인 원인이 많은 건 삶이 그만큼 팍팍하기 때문일 겁니다. 주말 장례에 가족이나 지인의 참석이 많은 현상은 간접적으로 그것을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평일엔 장례에 참석하지 못하니 주말에 하게 해달라고 운구업체로 부탁하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장례를 위한 시간도 돈도 낼 수 없어서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무연고사망자 장례에 참여하는 자원봉사자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묻혀있었던 고독사, 무연사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어떻게 보면 긍정적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그런 일이 많아졌다는 반증이라 씁쓸하기도 합니다.
2018년 새해도 벌써 두 달이 지나갑니다. 무연고사망자의 수가 줄어들기를 바라지만 오히려 장례가 더 늘어나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최근 공영장례 조례가 서울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장례를 치를 수 없는 이들도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민간에서 공공으로 그 역할이 확대되고 있는 중요한 시점에 와 있습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 모두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존엄한 마지막인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제도가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글은 나눔과나눔 부용구 전략사업팀장이 작성한 글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이름들

2018년 2월 무연고사망자

이안섭, 강창근, 김승호, 유명생, 장종선, 이정권, 천승현, 김준석, 불상, 김성희, 불상, 김규진, 홍순기, 권혁성, 김봉훈, 모종문, 홍명진, 김종근, 강수남, 김관영, 정이만, 이안례, 신현식, 김란숙, 이기철, 윤길임, 신권영, 송인숙, 이현호, 칸발레리, 오광택, 정영술, 원완희, 정은순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서른네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