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장례이야기] 봄을 기다리다, 봄을 만나다

2018년 3월 장례이야기
봄을 기다리다, 봄을 만나다

20180326_무연고장례 (30)

봄처녀 제 오시네/새 풀 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쓰고/진주 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뉘를 찾아오시는고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 새 옷을 차려 입고 가슴 한가득 꽃내음을 안고 오시는 봄을 기다리며 누군가는 스멀스멀 간지럽히는 설렘으로 잠을 설칩니다. 봄은 그렇게 마중을 나가듯 기다리어 만나게 되는 손님처럼 반갑고 애틋한 계절인가 봅니다.

20180310_무연고사망자장례 (6)

그들이 기다리는 봄, 가족
“부모님 이혼 후 18년 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랜 단절 끝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딸은 장례를 치를 형편이 안 되어 시신인수를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화장일에 꼭 참석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빈소를 차린 승화원 가족대기실 15번방으로 박○○ 님의 딸과 사위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이혼으로 헤어진 후 박○○ 님은 딸과도 형제들과도 연락을 끊고 사셨습니다.
운구가 시작되고, 사위는 뵌 적도 없는 장인어른의 위패를 들었고 딸은 그 뒤를 따랐습니다. 염불봉사단의 나무아미타불 소리는 아련하게 이어졌습니다. 고인예식이 끝나고 염불을 듣는 동안 딸은 한참 동안 아버지의 이름에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염불이 끝나고 한 보살님께서 딸에게 “잘 왔다”는 말씀을 전했고, 딸은 고맙다는 인사를 나눴습니다.
수골 과정을 지켜보고 유골함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딸에게 아버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저한테는 좋은 분이셨어요.”
장례가 끝나고 한 통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오늘 장례 치른 박○○ 씨 딸입니다. 오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기도해주시는 것을 보고 크게 감명받았습니다. 진심이 느껴졌어요. 마지막 가시는 길 외롭지 않으셨을 것 같고, 기도를 해주신 덕분에 좋은 곳에 가셨을 것 같아요. (후략)”
가족이지만 단절 후 오랫동안 헤어져 사는 경우를 무연고사망자 장례를 통해 많이 접합니다. 비록 시신을 위임했지만 마지막 가시는 날 장례를 치르게 된 것은 이후의 그들의 삶에 큰 영향을 줄 것입니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맺혀 있던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은 꼭 필요합니다.

g_b5fUd018svcacexjtyz9r7x_cst737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입니다
황학구 님, 최만 님, ○○ 님 장례. 장례가 있기 사흘 전부터 공문을 보내온 해당 구청들로부터 세 분 고인의 지인들이 장례에 참여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전화를 걸어 장례 안내를 드렸고, 영정사진 부탁을 드렸습니다. 손수 준비하신 분도 계셨고, 나눔과나눔에 생전 주민등록 사진을 찍어 보내주신 분도 계셨습니다.
최만 님은 황학동 풍물시장의 미싱사이셨습니다. 나눔과나눔에 장례 안내를 부탁하셨던 지인분은 “어릴 때부터 가족들끼리 함께 좋은 관계로 지내셨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혼자 사시게 되었다.”며 최만 님과 가족이나 다름없는 각별한 사이였다고 하셨습니다. 최만 님은 황학동 풍물시장에서 20~30년 가까이 일하시며 많은 분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았고, 장례에 오신 20여 분의 지인분들은 고인이 혼자 지내며 몸을 제대로 못 챙겼다며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지인분들은 장례를 치르려 했지만 가족이 아니라서 할 수 없었다고, 다행히 이렇게 장례를 치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며 한 분 한 분 감사의 인사를 전하셨습니다.
함께 장례를 치른 황학구 님은 자활센터에서 재활을 하셨다고 합니다. 센터의 활동가분과 황학구 님과 함께 생활하셨던 분들은 생전의 고인에 대해 점잖은 성격이셨고, 성실하게 재활을 하셨다고 전했습니다. 비록 가족들과 함께 살지는 않았지만 돌아가시기 전까지 함께 생활하셨던 분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사셨던 분이셨습니다.
지인분들과 한 분씩 예식을 진행했고, 종교행사 때는 앉은 자리가 모자라 바깥 의자와 옆 가족대기실에 앉아서 고인 분들을 함께 추모했습니다. 이날 장례는 비록 가족이 없거나 시신을 위임하여 무연고자가 되었지만 마지막을 함께하는 분들이 계셔서 참 따뜻했던 자리였습니다. 무연고사망자 장례를 진행한 이래 40여 분의 지인들이 참석한 장례는 처음이었고, 고인분들의 영정사진이 모두 있었던 것도 또한 처음이었습니다. 모든 의식이 끝나고 우렁차게 울렸던 ‘고맙습니다’ 한마디만으로도 그야말로 기억에 남을 장례였습니다.

20180316_무연고사망자장례 (10)

아들은 아무 말도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최○○ 님의 장례. 운구가 진행되기 직전 고인의 변사사건 수사를 맡았던 형사분으로부터 아들이 승화원에 간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들의 얼굴도 연락처도 몰랐기에 운구가 진행되기까지 접수실 주변을 살펴야 했습니다. 고인께서 1976년생이니, 우리나라 나이로 43세. 아들이 있다면 어릴 것으로 추정이 되었고, 접수실 주변에 아이들에게 물었지만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운구가 시작되었고, 고인의 시신이 화로에 들어갈 때까지도 아들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빈소를 차린 가족대기실로 올라갔습니다. 순간 전화가 왔고, 나이 지긋한 목소리의 남자분(고인의 부친)께서 아들이 접수실에 있다는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접수실엔 단아한 체격의 젊은이가 서 있었습니다. 가족대기실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아들은 “혹시 화장이 시작되었나요?”라고 물었고, 그렇다는 말에 아들의 얼굴이 순간 굳었습니다.
아들은 현재 일본 유학 중인 20대 청년으로 잠시 한국에 다니러 왔다가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화를 개통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장례일정을 알았지만 안타깝게도 운구 시간에 오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부모는 이혼을 했고, 어머니의 존재도 모른 채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아 따로 살았고, 아들은 여섯 살 때부터 할아버지 손에 커야만 했습니다. 아버지와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만났고, 만날 때는 같이 밥도 먹고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만난 건 2015년으로 당시엔 같이 술도 마셨습니다. 아버지는 우울증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었고, 약에 의존에 살고 있었습니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얼마 안 남은 것 같다. 자신이 없다.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고, 아들은 곧 유학을 가야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단절되었던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시신을 위임했습니다. 아버지의 위패를 바라보다 아들은 “그때 유학을 가지 않았으면 아버지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부재로 아버지가 더 이상 견디지 못했을 거란 자책을 하는 듯했습니다.
장례의식이 끝나고 수골을 하는 동안 아들은 조금의 미동도 없이 관망실 창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습니다. 수골이 끝나고 유골함에 나올 때까지도.
아직은 세상을 떠나기엔 너무나 젊은 아버지의 죽음 앞에 아들은 무거운 침묵으로 서 있었습니다. 아련한 그 눈빛이 무얼 말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단지 지금의 상황이 아들이 견디기엔 너무나 가혹하다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깊이를 알 수 없는 한숨만이 나왔을 뿐.

20180320_무연고사망자장례 (27)

에필로그
올해 들어 무연고장례식에 지인들이 참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3월 20일 100세의 박점례 님 장례에는 함께 남쪽으로 내려와 수양아들로 살았던 남자분과 상담요양사, 그리고 오랜 세월 고인과 함께 지냈던 지인분들이 오셨습니다. 고인께는 가족이 없었기에 무연고자가 되었습니다. 지인분들은 장례를 치르려 이런저런 방법을 찾아봤지만 가족이 아니면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2년 가까이 나눔과나눔의 무연고장례에서 종교의식을 도와주시는 김진영 다니엘 님은 3월 26일 무연고장례 부고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33년 전부터 성당에서 인연을 맺었던 지인의 부고였기 때문입니다. 장례일에 다니엘 님을 비롯해 함께 인연을 맺었던 분도 승화원으로 오셨습니다. 지인들은 고인의 생을 기억하며 마지막을 함께 동행했습니다.

가족이 아니면 장례를 치를 수 없어 무연고자가 되고 있습니다. 나눔과나눔은 비슷한 처지의 분들로부터 여러 차례 상담전화를 받았습니다. 자신에겐 가족이 없고, 결국엔 무연고자가 될 것이 뻔하니 나눔과나눔이 장례를 치러주면 좋겠다는 내용의 사연들. 나눔과나눔은 이러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져 해결 방안이 마련되어야 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가족이 아니더라도 지인들이 파트너(동반자)가 되어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제도적인 근거를 마련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이 글은 나눔과나눔 부용구 전략사업팀장이 작성한 글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이름들

2018년 3월 무연고사망자

김정자, 정진구, 한근동, 서경준, 김창헌, 박용우, 김종수, 박규남, 김상년, 윤영석, 박광옥, 황학구, 윤범훈, 최만, 최성용, 김경식, 정인표, 주봉순, 박점례, 원의식, 유진수, 양건웅, 천덕재, 노승명, 지만돌, 이유림, 김정대, 박숙자, 심국섭, 신영성, 남순길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서른한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