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공영장례제도의 티핑포인트, 서울형 추모서비스 “그리다”

무연고사망자 장례의식 서울형 추모서비스 ‘그리다’

2018년 5월 10일, 평범한 5월의 하루. 달력을 들춰 봐도 특별할 것 없는 날이다. 하지만 무연고사망자 장례에서는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만하다. 서울시가 삶의 끝에서 배웅받지 못하는 시민이 없도록 전국 광역 지자체 최초로 무연고사망자를 위해 정성 어린 장례의식 서비스를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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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서울시는 무연고사망자를 위해 시신 입관부터 운구·화장 그리고 봉안까지 과정을 위탁업체를 통해 진행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절차는 ‘장례’라기 보다는 ‘시신’을 수습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왜냐하면, 빈소가 차려지고 고인예식을 하는 등의 장례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5년부터 나눔과나눔 등 비영리민간단체가 서울시 공익활동 지원사업으로 무연고사망자 장례를 지원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장례지원에는 한계가 분명했다. 우선 4월부터 11월까지의 제한된 기간에만 진행되는 점, 그리고 여러 곳의 비영리민간단체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한 개 단체에 최장 3년 동안만 지원한다는 점, 다시 말해 정식으로 예산에 편성된 상시사업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였다.

2018년 서울시가 이와 같은 문제점을 개선했다. ‘무연고사망자 장례의식’ 지원을 년 중 상시 사업으로 예산에 편성한 것이다. 게다가 장례를 진행할 때 무연고사망자 빈소를 마련할 수 없어서 시립승화원(벽제 화장장) 2층 유족대기실을 빈소처럼 꾸며 고인예식을 진행했었는데, 서울시가 서울시립승화원 측과 협의하여 무연고사망자 전용 빈소를 마련하고 장례의식 서비스를 5월 10일부터 시작한 것이다. 2018년 무연고사망 장례의식 서비스는 공개입찰을 통해 ㈜우리의전이 위탁 수행하게 되었다(나눔과나눔은 법인이 아니기 때문에 입찰에 참여하지 못함).

 

공영장례제도의 티핑포인트(tipping point)

영국 출신으로 미국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맬컴 글래드웰는 『티핑포인트(Tipping Point)』(2000)에서 어떤 아이디어나 경향, 사회적 행동이 들불처럼 번지는 마법의 순간을 ‘티핑포인트’라고 했다. 즉, 어떤 현상이 처음에는 아주 미미하게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균형을 깨고 예기치 못한 일들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그 시점이 바로 ‘티핑포인트’라는 것이다. 서울시의 이러한 변화는 한국사회의 공영장례 역사에 있어 ‘티핑포인트’의 해로 기록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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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콤 글래드웰은 티핑 포인트의 세 가지 특징으로 ‘소수의 법칙’, ‘고착성의 법칙’, ‘상황의 힘 법칙’을 꼽고 있다. ‘소수의 법칙’은 열정적이고 영향력 있는 소수에 의해 전파가 이뤄진다는 내용이며, ‘고착성의 법칙’은 소리의 속도가 전해지는 메시지가 흡인력을 갖고 있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고착돼야 행동을 변하게 한다는 법칙이다. 또 ‘상황의 힘 법칙’은 주변의 상황이 맞아떨어져야 잘 전파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나눔과나눔은 2011년부터 지난 7년 동안 ‘위안부’ 할머니와 기초생활수급자 장례지원을, 그리고 2015년부터는 지난 3년 동안 무연고사망자 장례를 꾸준히 함께해왔다. 사실 돌아보면 “살아 있는 사람도 먹고살기 힘든데 죽은 사람까지 신경 써야 하냐?” 혹은 “가족도 포기한 무연고사망자 장례를 왜 하냐?”와 같은 힐난(詰難)을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누가 어떤 말을 하든 상관없이 현장에서 외롭게 삶을 마감한 분들과 함께하며 그분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어느새 사람들이 나눔과나눔의 메시지에 관심을 끌게 되었고 무연고사망자와 고립사가 증가하는 상황과 맞아떨어지면서 드디어 공영장례제도라는 ‘제도화’의 변곡점 ‘티핑포인트’를 만나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시점이 정확하게 ‘티핑포인트’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비영리민간단체의 활동이 최소한 공공의 예산에 편성되고 제도화의 길로 들어서는 초입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티핑포인트를 위한 비영리민간단체의 역할

무연고사망자 장례의식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첫째는 고인을 위해서, 둘째는 가족과 지인 더 나아가 사회를 위해서. 하지만 입찰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위탁업체에 어떤 업무를 하는지 알려주는 ‘과업지시서’를 확인하니 고인을 위한 부분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일반적인 장례에서는 고인예식을 하면 당연히 가족과 지인을 위한 장례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연고사망자 장례의 경우 일반장례와 다른 측면이 존재하다. 장례의식도 중요하지만, 무연고사망자 확인단계에서 장례에 참여할 친구 또는 지인은 없는지, 혹시 경제적 어려움으로 시신인수를 못했지만,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보고 싶어 하는 가족은 없는지 등을 파악하고 안내하는 역할이 장례의식 못지않게 중요하다. 또한, 장례 후에 외롭게 삶을 마감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사회에 알리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이다. 다시 말해 장례의식 전후에 사회적 맥락에서의 중요한 임무를 수행해야만 제대로 된 무연고사망자 장례의전이 완성되는 것이다.

분명 2018년은 공영장례제도 역사에 있어서 티핑포인트로 기록될만한 순간이다. 하지만 이러한 중요한 변곡점의 시기에 공영장례제도가 전국 여기저기 봄풀 돋듯 생겨나는 확장의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처음의 취지가 현장에서 제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방향키를 놓치지 않는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제도화되는 시점에 무연고사망자 장례의식을 맡은 ‘위탁업체’의 역할과 함께 이를 지원하고 모니터링하는 비영리민간단체의 역할도 함께 필요한 것이다. 그야말로 민관협력의 협치가 제대로 이뤄질 때 공영장례의 티핑포인트가 완성될 수 있다.

말콤 글래드웰은 다음과 같은 말로 ‘티핑포인트’를 끝맺고 있다. “당신 주변을 돌아보라. 움직일 수 없는 무자비한 곳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적소(適所)를 찾아 조금만 힘을 실어주면 일순간에 바뀔 수 있다.”

※ 이 글은 나눔과나눔 박진옥 사무국장이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