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장례이야기] 잔인한 4월, 절반의 삶이 끝났다

4월 장례이야기
잔인한 4월, 절반의 삶이 끝났다

20180412_무연고사망자 장례 (16)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추억과 욕정을 뒤섞고/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T.S. 엘리엇은 ‘황무지’의 4월을 잔인한 달로 묘사했습니다. 겨울 동안 따뜻했던 죽은 땅에 새 생명을 움틔우는 봄비의 마술은 잔인했고, 살을 찢고 피어나오는 계절의 변화 앞에 시인은 고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4월은 그렇듯 새롭게 다가왔지만 현실은 시인의 말대로 고독한 황무지 한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20180403_무연고사망자 장례 (2-1)

 

천명(天命)이 그쳐버린 50대, 지(止)천명

논어 위정편(爲政篇)에서 만년(晩年)의 공자는 삶을 회고하며 ‘나이 쉰에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나이 50을 흔히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합니다. 관직에서 물러나 천하를 주유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던 50대의 공자가 아니더라도, 평균연령이 80세 이상으로 늘어난 현 시대의 나이 50은 인생 이모작의 시작점으로 ‘나’를 위한 삶을 시작하는 변화의 시기입니다. 가족 혹은 자신의 일을 위해 살았던 그동안의 나를 돌아보고 이후의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인생의 전환점으로서 ‘50’은 그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나이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4월 무연고사망자 26분 중 13분이 50대였습니다. 천명을 알 나이에 삶의 끈이 끊어지고만 50대의 죽음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창 일할 나이에 가족과 단절되어 고립된 삶을 살다 세상과 떠나는 순간에도 홀로였을 그들. 65세 이상의 노인에 미치지도 못했고, 청년층 지원도 받을 수 없는 고용과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그들. IMF 외환위기로 경제력을 잃고 거리로 내몰리고, 가족과도 헤어져 산 지 20년이 넘은 그들. 그렇게 50대가 되어 버린 그들이 돌아갈 곳은 없었습니다. 50대 고립사는 점점 늘어나고 사회적인 관심은 예방차원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지만 아직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필요한 그들의 장례에 관한 논의는 정작 관심권 밖의 일입니다. 천명(天命)을 알기는 고사하고 자신의 명조차 그쳐버리는 안타까운 50대가 무연고사망자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20180412_무연고사망자 장례 (18)

 

기억, 안타까운 괴리

간혹 어떤 사람에게서 “제 아이는요. 어렸을 때부터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답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만나고 난 뒤 아이의 꿈은 로봇이 되는 거라는 걸 알게 됩니다. 부모는 아이가 선생님이 되길 바라고, 아이는 그런 부모의 바람과는 다른 꿈을 꾸며 삽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가볍게 웃으며 넘길 수 있겠죠. 같이 살지만 다른 생각을 하고 사는 건 당연한 이야기니까요.

4월의 무연고사망자 장례를 통해 서로 다른 기억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토요일 장례에 고인의 생전 지인 분들이 오셨습니다. 교회를 다니셨던 고인은 생전에 따님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셨습니다. “우리 딸이 나한테 참 잘했어요. 지금은 좀 형편이 어려워서 걱정이지만 생활이 좀 나아지면 옛날처럼 나한테 잘할 거예요.” 교회의 지인분들은 생전의 고인의 말을 인용하며 따님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전해주셨습니다.

하지만 구청으로부터 파악한 정보는 좀 달랐습니다. 고인의 시신을 포기한 사람은 다름 아닌 따님이었고, 시신 위임의사를 묻는 질문에 따님은 “나와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처리되든 관심 없습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단절된 후 가족은 서로에 대해 다른 기억을 하며 살았습니다. 한쪽은 좋은 기억을, 다른 한쪽은 나쁜 기억을. 한때는 서로에게 기쁨이었을 존재였지만, 불행한 기억은 서로를 단절시켰고, 화해할 시간을 가지지 못한 채 끝내 이별을 맞이했습니다.

20180412_무연고사망자 장례 (10-1)

 

혹시 돈이 드나요?

구청으로부터 무연고장례에 아들이 오겠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습니다.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영정사진을 준비할 수 있는지 물었지만 사진은 없다고 했습니다. 아들은 대신 유골함을 찾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무연고사망자 장례를 치르다보면 드물게 가족들을 만납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시신을 위임했지만 그래도 화장절차는 보고 싶어 찾아오는 가족들. 그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혹시 돈이 드나요?”

승화원에 도착한 아들에게 전화로 “빈소를 마련하는 중이니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라고 했더니, 어김없이 아들이 묻습니다. “빈소를 차리는데 혹시 돈이 드나요?”
아버지의 빈소를 차린다는 말에 돈부터 걱정해야하는 상황이라니……

아들은 20여 년 전 아버지와 헤어져 따로 살았습니다. 어린 시절 기억이 겨우 남아있고, 3월 초 경찰을 통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어머니와 단칸방에 살고 있다는 아들은 직업을 구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단절되어 각자도생의 삶을 살면서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다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듣고 돈이 없어 장례를 치르지 못한 아들은 시신을 위임하고도 혹시나 빈소 차리는데 돈이 드는지 묻습니다. 가족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면 평생 죄인으로 살고, 혹시 모를 돈 걱정에 안절부절 하는 현실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가난이 죄인을 만드는 세상입니다.

20170415_무연고사망자장례 (4)

 

에필로그

2018년 4월까지 나눔과나눔은 125분의 무연고사망자 장례를 치렀습니다. 중년 고독사 위험군 뉴스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50대 사망자는 올해도 30퍼센트(38명)를 넘기며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평균연령보다 20~30년이나 일찍 사망하는 현상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고 있으며 점점 그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는 데 그 문제의 심각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 버블경제 붕괴 이후 청년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의 등장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는데, 이후 그 연령이 40~50대가 되어 여전히 큰 고민거리로 자리잡고 있어 곧 그 실태조사가 이루어진다는 소식을 최근 인터넷을 통해 접할 수 있었습니다.

상황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도 50대 무연고사망자의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고립되어 살고 있는 50대의 실태를 전수조사를 통해 파악해야할 상황에 왔습니다. IMF 외환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다는 성공신화가 전 세계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경제력을 잃고 가족과 단절되어 홀로 살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연고사망자가 되어 외롭게 세상과 이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힘들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다행인 것은 서울시에서 광역단체 최초로 무연고사망자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졌습니다. 바야흐로 황무지에 봄비가 내리고 변화의 싹은 굳은 땅을 뚫고 나오는 시점이 오고 있습니다. 부디 힘든 삶 속에서 더 이상 가족이 가족의 장례를 책임지지 못할 때 사회가 대신 치를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갖춰질 수 있도록 함께 관심을 가져야할 것입니다.

이 글은 나눔과나눔 부용구 전략사업팀장이 작성한 글입니다.

20180412_무연고사망자 장례 (20)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이름들

2018년 4월 무연고사망자

전을철, 김인옥, 장종문, 한익만, 김약진, 박정무, 김종완, 조정천, 이우창, 고삼수, 김춘란, 오영길, 이재성, 주양일, 이복종, 김심환, 남성수, 김만근, 정수남, 맹덕천, 이영기, 최용남, 김성환, 조종환, 조선행, 조길수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스물여섯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