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그 슬픔을 부탁해!

슬픔의 유효기간

2014년 8월, 청와대 부근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이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김제동 씨 발언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이 기억된다.

씽크카페컨퍼런스@대화 2012 (CBS세바시 제공)

김제동 씨가 어릴 적에 삼촌이 집에서 키우던 새끼 송아지를 팔았다고 한다. 그러자 새끼소가 그리워서인지 어미 소와 아빠소가 밤새 울었는데, 그냥 하루만 우는 것이 아니고, 일주일 열흘을 끊이지 않고 막 끊어질 듯이 울었다고 한다. 그 상황에서 어떤 이웃도, 어떤 사람도 저 소 새끼 왜 우냐고 시끄럽다고 말하지 않았고, 소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김제동 씨는 하물며 소에게도 슬픔을 참으라, 끝내라 하지 않는데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슬픔의 기간은 유가족이 슬픔을 멈추는 그 날이 바로 끝나는 날이라며 이야기를 마쳤다.

 

슬픔을 참으라고? 참으면 참아지나?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슬픔의 유효기간이 없는 이유는 슬픔이 단지 시간이 지나간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 혹은 자식, 그리고 아내 또는 남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삶의 큰 충격이다. 어떤 경우에는 삶을 뿌리째 흔들어 놓기도 한다. 특히 심리적 충격에 따른 슬픔은 단순하지 않다. 언제까지나 함께 할 것 같았던 사람과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이별이 주는 안타까움. 더는 함께 할 수 없다는 상실감. 또는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분노, 절망감 등 뭐라고 한 가지로 정의하기 어려운 다양한 감정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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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감정은 그냥 참아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흔히 사람들은 바쁜 일상 가운데서 더 열심히 일하면서 슬픔을 잊으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일부러 쾌활하게 웃으면서 슬픔을 느끼지 않으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적절하게 표현되지 않으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도 문득문득 주체할 수 없는 슬픔으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되기도 한다.

슬픔은 누구에게든 적절한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는 슬픔을 억제한다. 슬픔을 대놓고 표현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슬픔을 사람들과 제대로 나누지 못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울면 “울지 말라”고. “이만하면 됐다”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한다. 슬픔을 참으라고 한다. 슬픔을 참으면 참아지는 것일까?

 

슬퍼해도 괜찮아

나눔과나눔이 진행하는 무연고사망자 장례에 자원활동 오시는 분 중에 50대 초반의 남성분이 있다. 이 분은 장례가 끝나면 꼭 걸으면서 버스를 타고 간다. 함께 차를 타고 가자고 권해도, 버스 타면 ‘여행’ 떠나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1년 가까이 활동을 했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무연고사망자 화장이 끝나고 수골을 기다릴 때, 남편을 먼저 보낸 아내의 통곡 소리가 화장장을 가득 메웠다. 그때 이 분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5년 전에 아내를 먼저 보냈어요.”라며 아내를 갑작스럽게 보낸 슬픈 이야기를 꺼내 놓으셨다. “그때 장례를 어떻게 치렀는지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요.”라고 말씀하시면 장례 후에 아이들과 살아가야 하니 계속 직장을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았고, 1년 가까이 되었을 때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어떻게 이렇게 하고 사셨어요?”라며 상태가 심각하다고 진단했다고 한다. 이 분은 5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아내를 먼저 보낸 깊은 슬픔을 간직하고 계셨다. 그래도 다행이다. 무연고사망자 장례에 참여하면서 본인의 슬픔과 마주하고, 누군가에게 본인의 슬픔도 꺼내 놓을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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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말경에 나눔과나눔 사무실을 임대하시는 건물주와 업무상으로 만날 일이 있었다. 업무를 마치고 나니, 건물 주인이 “2월 설날 즈음에 남편이 죽었어요.”라고 남편과 사별한 이야기를 꺼내놓으셨다. 암투병하는 것은 알았지만 치료를 잘 받는 것으로 알았는데, 갑자기 들은 사망 소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주인분은 차분히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말씀하셨다. “남편이 죽고 처음엔 미움과 분노가 올라왔어요. 하지만 이제는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약 1시간가량 본인의 슬픔 감정을 털어놓았다. 정말이지 슬픈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기도 하고 참 복합적이다. 자리에서 일어나시면서 “어디서 이런 이야기 못 해요.”라는 말로 인사말을 대신했다. 그렇다. 남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누군가와 이야기 하고 싶어도 돌아보면 편하게 대화할 곳이 없다. 어쩌면 가족에게는 더 꺼내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5월 중순경, 나눔과나눔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처음에는 장례지원 상담인 줄 알았는데, 전화하신 여성분은 오빠의 사망으로 슬픔과 답답함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나눔과나눔에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사연은 알코올중독으로 가족들을 힘들게 하던 오빠가 죽었는데, 빈소도 없이 직장(直葬)으로 내일 화장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본인은 여동생으로 오빠가 죽어서 많이 슬픈데, 사람들은 뭐가 슬프냐고 타박하면서 ‘잘 죽었다’고 말한다고 했다. 그래서 누군가랑 이야기 하고 싶었는데 신문에서 장례지원하는 나눔과나눔이 있다는 걸 보고 연락했다고 한다. 여성분과 30분가량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하고 함께 눈물 흘렸다. 여성분은 전화를 끊으며 “정말, 고맙다”며 몇 번이고 인사를 했다. 통화하고 나서 사람들이 돌아가신 분을 향해서 던졌던 ‘잘 죽었다’라는 말이 계속 마음속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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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이제는 서로가 가슴을 맞대고 이야기할 때

나눔과나눔이 2018년 6월 20이면 창립 7주년을 맞이한다. 2011년 ‘위안부’ 할머니 장례지원을 시작으로 기초생활수급자 장례지원 그리고 2015년부터는 서울시 무연고사망자 장례지원을 꾸준히 해왔다. 지난 7년 동안 장례지원을 하면서 많은 분의 슬픔에 함께 공감하면서 많이 울었다.

사람들은 자주 묻는다. 어떻게 장례라는 버거운 활동을 계속할 수 있냐고. 그러면 항상 대답은 같다. 함께 하는 사람들과 슬픔을 이야기하고 나눈다고. 장례 후에 각자가 장례현장에서 느꼈던 감정을 이야기하며 때로는 울기도 한다. 함께 하는 사람들은 그 눈물과 슬픔에 진심으로 공감해준다. 그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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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앞에서 언급했던 세 분의 사연처럼 ‘나눔과나눔’에 자신들의 슬픔을 꺼내 놓는 분들을 만나며 한국 사회가 나눔과나눔에 요구하는 또 하나의 역할을 생각해 본다. 언제든 편하게 와서 자신의 슬픔을 꺼내 놓을 수 있는 곳, 슬픔을 함께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곳으로서의 ‘나눔과나눔’. 언제쯤  누구나 편하게 와서 자신의 슬픔을 꺼내 놓을 수 있는 그런 작은 찻집 하나 운영하는 상상이 너무 무리일까?

슬픔이야말로 사회구성원들이 가슴을 맞대고 계속 얘기해야 할 주제다. 하지만 아직 한국 사회는 슬픔을 표현하는데 서툴다. 특히 남자는 태어나서 딱 3번만 울어야 한다는 말로 슬픔을 참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이제는 슬픔을 자연스럽게 꺼내놓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할 때이다. 슬픔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곧 그 사회의 건강상태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나눔과나눔 박진옥 사무국장이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