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장례이야기] 장례를 불허하는 사회

6월 장례이야기
장례를 불허하는 사회

6월 하순부터 지루하게 이어진 장마에 맷집이 약해져 있는 사이 태풍이 장마전선을 타고 한반도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재난사고에 대비해 미리 손을 쓴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충격에도 금방 일어서겠지만, 최소한의 안전망도 없이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태풍은 삶의 전부를 잃어버리는 날벼락일 겁니다. 사는 동안 수없이 찾아올 장마와 태풍에 자칫 한 발 헛디뎌 진흙탕에 빠지면 헤어나려 해도 도무지 그 방법을 찾지 못해 고립되고, 그 끝은 허망한 상처를 남기고 아무도 모르게 세상과 이별합니다.

여인숙 골목

스스로 고립을 택하다
6월 마지막 주 최○○님의 장례일자가 확정되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마지막 주소가 경기도 가평의 한 노숙인 시설로 기재되어 있어서 계시는 동안 친하게 지낸 지인분들이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희 시설로 오기로 하셨는데, 입소하지 않으셨어요.” 기대와는 다른 대답이었지만 최○○님이 직전에 계시던 곳이 은평구의 한 시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최○○님은 작년에 이미 퇴소를 하셨고, 장례에 참석할 지인분들은 안 계신다.”는 실망스러운 대답을 듣게 되었습니다.
“10년 전부터 연락이 끊어졌고, 3년 전에 실종신고를 해서 겨우 형님을 찾았습니다.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고 있던 형님은 저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장례에 참석한 동생은 형편이 어려워 일찍 형님을 찾지 못해 이런 이별을 하게 되었다며 한스러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무관심, by Sukhwan Lee

시설에서 지내기 힘든 행려환자
성동구의 한 노숙인 시설에서 약 1년간 계셨던 ○○○님은 조현병 환자였습니다. 시설에 있는 동안 활동가들과 바둑도 즐기며 지낼 만큼 친하게 지냈습니다. 하지만 항상 앞에서 어떤 힘이 자기를 당기고 있다고 하며 등이 굽은 채 있었고, 누군가의 음성이 계속 들린다며 혼잣말을 지속적으로 했습니다. 조현병의 낙인효과로 결국 사람들과의 관계가 틀어지게 되었고, 퇴소가 결정된 후 시설 내에서 친하게 지낸 활동가분이 고시원 등 계실 곳을 알아봤지만 결국 그곳에서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님은 시설을 떠나 있었던 어느 날 서울의 한 물가에서 돌아가신 채 발견되었습니다. 가족으로 사촌이 있었지만 시신을 위임해 무연고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20180629_무연고장례 (30)

마지막을 지키는 이들 VS 오지 못하는 이들
무연고사망자 공문을 받으면 해당 구청에 장례를 함께 치를 가족이나 지인이 있는지 묻습니다. 개인정보가 중요한 만큼 연락처를 알 수는 없고 대신 나눔과나눔의 연락처를 알려드립니다. 그렇게 시립승화원에서 만난 가족이나 지인분들은 함께 운구와 장례를 치르며 마지막 이별의 시간을 갖습니다. 비록 단절 등 아픈 가족사가 있고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워 국가에 시신 위임을 했지만, 장례를 통해 제대로 된 이별을 하고 그동안 쌓였던 감정들을 해소하면서 온전히 고인을 보낼 수 있습니다. 김○○님의 아들은 주중에 잡힌 장례에 처음에는 참석하기 어렵다며 전화를 끊었지만, 1시간 후 다시 참석할 수 있다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장례에 참석한 아드님은 아버지의 다른 가족이 있어서 생전에 같이 살아보지 못했지만 항상 그리움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함께 살지 못했던 서러움을 마지막 이별의 시간을 통해 풀었던 아들은 아버지를 온전히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장례식에 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구청에서 나눔과나눔의 무연고장례를 안내를 들었지만 승화원에 오지 못하는 사연들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6월에 장례를 치른 정○○님의 부고를 듣고 아들은 처가에 자신의 과거가 알려지는 게 두려워 아버지의 시신을 위임했습니다. 지난해에는 단절이 오래되어 무연고로 돌아가신 ○○○님의 부고를 접하고, 고인의 큰아들이 결혼이 임박한 터라 나쁜 이야기가 새어나가는 것이 걱정되어 형제자매 등 모든 가족들이 시신을 위임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엔 시신을 위임한 부모와 형제자매는 장례에 참석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였지만 연락은 없었고 장례식엔 결국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20180531_무연고사망자 장례 (8)

제도의 허점이 만든 무연고사망자
나눔과나눔은 2015년 무연고사망자 장례를 처음 지원한 후 많은 가족들과 지인들을 만났습니다. 2018년 4년차에 접어들면서 그동안 몰랐던 많은 정보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내용들을 떠올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국가에 시신을 위임한 무연고사망자의 유골은 10년 동안 무연고추모의집에 안치가 되고, 가족이 찾아가지 않는 유골함은 10년 후 합동 안장이 됩니다.
·무연고사망자는 그동안 사망신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는데,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구청이나 동주민센터의 장이 사망신고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을 만들었습니다.
·수십 년을 같이 산 사실혼 관계의 부부끼리도 서류상에서는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장례를 치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새롭게 안 사실이 있습니다. 가족이지만 우선순위에 밀려 장례를 못 치르게 된 사례로 5월과 6월에 두 번의 경우가 있었습니다. 먼저 최○○님은 가까이 살며 돌아주시던 이모가 계셨는데 최○○님이 돌아가신 후 장례를 치르려 했지만 단절되어 멀리 떨어져 살던 어머니가 먼저 시신위임을 하는 바람에 장례를 치르지 못했습니다. 이○○님의 동생분도 형님이 임종하시는 순간 곁에 있었지만 단절된 조카들이 형님의 시신을 위임한 까닭에 장례를 치르지 못했습니다.
가족이 아니기에 장례를 못 치른 김○○님의 사례도 있었습니다. 김○○님의 절친한 친구 20여 분은 김○○님이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려 했지만 단절되어 살던 아들이 시신위임을 하여 장례를 못 치렀고, 화장예약날짜도 듣지 못해 무연고장례에도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자격이 가족, 특히 가까운 촌수(직계) 등에 우선순위가 있어 형제자매나 가까운 지인이 장례를 못 치르는 사례들을 보며 참 마음이 아프면서도 어이가 없었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제도적인 허점을 찾아 보완하여 제대로 된 장례, 망자의 의사가 반영된 장례가 정착할 수 있도록 관심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글은 나눔과나눔 부용구 전략사업팀장이 작성한 글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

2018년 6월 무연고사망자
김평기, 성별, 최태늠, 이순영, 최의숙, 장양순, 방승윤, 한원기, 김이용, 이세영, 원성규, 이학수, 이수복, 김용권, 강문섭, 정지남, 강효귀, 이준규, 신귀현, 정재섭, 이정숙, 심문학, 백승학, 이공임, 최병이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스물다섯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