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장례지원] 故 김문수 님, 고이잠드소서

우리는 사랑을 나눴고 김문수 삼촌은 우리에게 가능성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그렇게 하늘로 가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곁에 와 주셔서 (삼일교회 사랑나눔부 노숙인 구제사역팀이 해주신 이야기입니다)

1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만남. 그 만남 가운데 소중한 인연들과 함께했던 많은 추억. 김문수 님과의 이별의 시간은 그래서 더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정말 다행입니다. 외롭게 혼자 보내지 않기 위해 단절되었던 가족을 찾고, 어떻게든 최소한의 장례라도 하기 위해 장례식장과, 나눔과나눔에 연락하며 동분서주했던 지인들 덕분에 장례를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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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초반의 김문수 님은,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 때 혼자 독립해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공장에서, 중국음식점에서, 원양어선 등에서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셨던 것 같습니다. 김문수 님의 오른쪽 손가락 두 개는 공장에서 일할 때 먼저 하늘로 보내야 했습니다. 그래도 8개의 손가락으로 만드는 짜장면과 중국요리 맛은 일품이었다고 합니다. 교회행사가 있을 때는 실력을 발휘해 몇 백 명이 먹을 수 있는 짜장면을 만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일을 시작해서였을까요. 너무 이른 50대 초반에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아무도 김문수 님이 이렇게 빨리 떠나실 걸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고인은 최근 서울역 노숙인 ‘다시서기지원센터’에서 자활근로에 참여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지난 7월 3일 출근을 하지 않아 센터분들이 고인이 살고 있던 고시원을 찾았고, 고시원 이웃분의 안내로 방문을 열자 한쪽 가슴에 손을 얹은 상태로 숨을 쉬지 않고 계신 고인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순간 이웃분은 언제부터 숨이 멈췄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119에 신고하고 바로 심폐소생술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숨을 거둔지 열두 시간이 훨씬 지난 후였습니다.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이 출동하는 과정에서 삼일교회 분들도 고시원으로 오셔서 상황을 알아보고, 나눔과나눔에 장례지원을 위해 전화를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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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6시경에 걸려온 삼일교회 분과의 전화는 잊을 수 없습니다. 받자마자 목소리만으로도 상황이 다급한 걸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최대한 신속한 장례지원을 위해 우선 전화통화로 장례를 위한 기본적인 사항을 확인했습니다. 현재 시신 위치는 어디인지, 기초생활수급자인지, 서울 주민이셨는지. 하지만 고시원에 혼자 살고 계셨기 때문에 혹시 가족과 연락이 되는지를 확인하는 순간, 앞에서 확인했던 모든 질문듣이 무색해졌습니다. “가족이 있는지 현재는 알 수 없는데, 가족의 연락처도 없고”라는 말에 긴 한숨을 내쉬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가족을 지금 확인할 수 없으면 장례지원이 어렵습니다.”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마지막 삶의 과정을 함께했던 삼일교회 분들과 고시원 이웃들이 가족이었는데, 이분들이 안타깝게도 장례를 못 치르는 이유는 ‘법’ 때문이었습니다. 돌아가신 고인을 발견 하고 한 시간가량 긴급히 진행된 전화통화는 “가족을 찾아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로 마무리됐습니다. 진정 가족이 누구일까 다시 한 번 고민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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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을 떠나보내는 삼일교회 분들 그리고 지인 한 분 한 분은 고인의 진정한 가족이었습니다. 다행히 고인과 8년간 연락이 닿지 않았던 동생을 어렵게 찾아 함께 장례를 했지만 2017년 10월경부터 고인의 곁에는 형님도 있었고 동생도, 친구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새롭게 탄생한 가족들로 인해 고인은 존중받고 대접받는 기분을 느겼다고 합니다. 꿈을 꾸듯 행복했던 시간이 고인에게 조금 더 길게 주어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야속하게도 긴 시간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시간은 1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가을에 만나 겨울을 지나 봄이 왔을 때, 고인은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 14기에 입학했습니다. 입학할 때 교회 동생과 꼭 졸업하자고 약속했는데, 한 학기가 갓 지났을 무렵 고인은 그렇게 새로운 가족의 곁을 훌쩍 떠나버렸습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봄꽃이 피었던 4월에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마지막 생일잔치라고 할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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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삼일교회 모임에서 기도제목으로 이렇게 적으셨다고 합니다.

“남을 용서할 수 있는 넓은 마음 가지게 해주세요! 항상 주님을 바라보며 사랑으로 살게 해주세요”

어떤 미움과 분노가 있어서 누군가를 용서하고 싶었을까요? 고인이 가장 아끼던 동생분은 “어느 정도 안정된 뒤에는 아버지를 찾아가고 싶어 했던 것 같다.”는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고인은 아버지와 화해를 하고 싶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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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마다의 마음 깊은 곳에 한 가지 정도의 상처를 갖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꺼내 놓기 쉽지 않은 상처를 말이지요. 이번 장례를 통해 사람들의 공감과 연대는 때로 이 상처를 치유하고 이러한 관계는 혈육의 정보다 강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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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교회 사랑나눔부 노숙인 구제사역팀, 신화병원장례식장, 대명아임레디에서 김문수 님 마지막 가시는 길 동행해주셨습니다. 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