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장례지원] 故 김정순 님, 고이 잠드소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렇게 엄마를 잘 보내드릴 수 있어서.

20180720_기초생활수급자 장례지원 (1)

시립승화원 안내데스크에 “형편이 어려워서 그런데, 장례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라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때 무연고사망자 운구를 담당하는 분이 앞에 계셨고, 또 그 옆에는 나눔과나눔 활동가가 있었습니다. 고 김정순 님 장례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고 김정순 님은 1945년생으로 2011년부터 요양원에서 생활하셨다고 합니다. 오른쪽 다리 골절로 거동도 많이 불편해서 휠체어를 타셔야 했습니다. 요양원에 계셨지만 지병으로 자주 병원에 입원하시다 보니 따님은 항상 병원비가 걱정이었다고 합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의료급여가 나와도 본인부담금 등이 있기 때문에 어려운 형편에 병원비 마련이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장례를 위해서도 마지막 병원비가 문제였습니다. 병원비가 지급되지 않으면 시신을 다른 곳으로 운구할 수도, 화장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됩니다. 다행히 긴급의료비 지원이 빨리 결정되면서 장례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장례지원은 관련된 모든 지원이 신속하게 결정되지 않으면 참 어렵습니다. 예고되는 게 아니기도 하고요.

20180721_기초생활수급자장례지원 (6)

고인은 일산에 있는 한 병원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신 후 따님은 병원 장례식장과 상담을 했습니다. 그런데 장례비용만 500만 원, 게다가 음식값 등을 포함하면 700만 원이 넘게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금액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저렴한 장례식을 찾아봤지만 100만 원 정도 차이가 날 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없는 형편에 빚을 내야 할지, 아니면 빈소를 마련하지 않고 그냥 화장장으로 가야 할지 걱정하는 중에 요양원에서 승화원에 전화해보라는 조언을 했고, 그러면서 나눔과나눔에 장례지원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눔과나눔이 지원하는 장례를 위해서는 고인을 영등포 신화병원까지 모시고 와야 하는데, 이 또한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하루의 안치료 등 초기 수습비용을 어떻게 요구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터무니없이 많은 초기 수습비용을 요구하기도 해서 어쩔 수 없이 그 장례식장에 빈소도 못 차리고 장례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최소한의 비용을 요구해서 신화병원 장례식장까지 운구할 수 있었습니다.

20180721_기초생활수급자장례지원 (16)

참 다행입니다. 버겁게 살아온 엄마를 잘 보내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면 얼마나 안타까웠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습니다. 고인은 30대에 남편이 돌아가신 후 혼자 두 자녀를 키우셨습니다. 1970년대에 여성이 혼자 자녀를 키우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따님은 당시 이런 엄마의 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따뜻하게 대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친척 집에서 지내기도 했다니 얼마나 형편이 어려웠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따님은 장례 중에 계속 감사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도 기초생활수급자였는데 자녀들도 복지 혜택을 받고 있어 나눔과나눔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장례를 하지 못했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따님은 현재 4년 정도 일을 쉬고 있고, 모야모야병 진단을 받은 상태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따님의 남편도 간경화 2기로 오랫동안 약을 먹고 있어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20180721_기초생활수급자장례지원 (18)

김정순 님 장례를 지원하면서 나눔과나눔이 지원할 수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장례가 필요한 사람에게 공공에서 최소한의 장례를 지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다시 생각해봅니다. 누군가에게 미안해하고, 또 감사해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공영장례제도가 정착되기를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신화병원장례식장, 대명아임레디에서 김정순 님 마지막 가시는 길 동행해주셨습니다. 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