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장례지원] 故 김응길 님, 고이 잠드소서

누님 찾고 싶다고, 보고 싶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런데 죽어서야 연락이 되다니 안타깝네요. 살아생전에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삼일교회 사랑나눔부 노숙인 구제사역팀이 해주신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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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런 무더위는 처음입니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비 오듯 하네요. 그래도 사무실이나 실내에 들어가면, 또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다행히 피난처를 만난 듯 숨을 돌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차원이 다른 버거운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이 계십니다. 쪽방과 고시원 등에서 생활하시는 홈리스분들! 이분들은 이런 무더위를 어떻게 견디실지 마음만 안타깝습니다. 거리에서, 쪽방과 고시원에서 더운 바람 나오는 선풍기만으로 이 버거운 시간을 버티고 있으니 말입니다. 예전에는 겨울보다는 여름이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래도 위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겨울은 몸서리치게 춥고 여름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더우니, 가진 것 하나 없는 사람들에게는 의지할 것 하나가 또 사라진 듯합니다.

고 김응길 님은 이렇게 폭염이 한창인 7월 말 거리에서 돌아가셨습니다. 7월 24일 화요일 저녁 무렵, 삼일교회 노숙인 구제사역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임시 주거 지원사업으로 관계를 맺게된 분이 고대 안암병원 응급실에 계신데 매우 위독한 상황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혹시 돌아가시면 장례지원이 가능한지 문의하셨습니다. “가족이 제일 중요합니다.” 어쨌든 혈연의 가족이 있어야 장례절차가 진행될 수 있으니 최우선은 가족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 지난 저녁 7시 30분에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다시 왔습니다.  어렵게 누님 한 분이 계신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연락할 방법은 없으니 경찰이 가족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야겠다는 안타까운 말씀도 함께 전해주셨습니다. 육신은 눈을 감았지만 이 세상과 이별하는 건 이렇듯 참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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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교회 분들 중에 김응길 님을 자주 찾아뵙던 분에 따르면 고인이 생전에 누님을 찾고 싶고, 보고 싶어 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누님에게 연락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25년 이상 연락이 끊어진 상태이다 보니, ‘어디에 살고 있는지’, ‘전화번호는 무엇인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동주민센터에 알아봐도, 경찰에 하소연해 봐도 ‘개인정보보호’라는 이유로 알려주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가족이라고 무조건 전화번호를 알려줘야 할지 고민스럽기는 합니다. 워낙 다양한 가정사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오랫동안 헤어져 지내던 하나밖에 없는 누님을 찾고 싶다고 해도 찾을 방법이 없는 건 법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현실이기 때문은 아닐까요? 가족관계증명서를 한두 장 더 발급해보면 형제나 단절된 가족이 살아 있는 걸 알 수 있는데, 공식적인 방법으로는 가족과 재회할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아이러니한 건, 죽은 다음에는 가족에게 연락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살아서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가족을 죽으면 만날 수 있도록 제도가 운용되고 있는 겁니다.

고인이 살아생전 그렇게 보고 싶었던 누님은 사흘이 지나서 연락이 닿았습니다. 7월 28일 오전 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누님은 떨려서 어떤 일도 할 수 없어 곧 바로 전라도 광주에서 서울로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누님은 “사는 게 바빠 챙기지 못한 동생이 어디선가에서 잘 살고 있겠거니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죽어서야 연락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 못 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돌이켜보니 어느새 동생과 25년 정도 헤어져 살았다고 합니다. 25년이 긴 세월 같은데, 하루 벌어 근근이 살다 보니 그 세월이 금방 가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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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과 함께 7월 28일 토요일 밤늦은 시각에 빈소를 차렸습니다. 다행히 다음 날 화장장 딱 한 곳이 남아 있어서 화장예약도 잡았습니다. 감사하게도 대명아엠레디에서 밤늦은 시각이었지만 화장장까지 타고 갈 장의차량도 배차해 주셨습니다. 보통 하루 전에 다음 날의 화장을 예약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예약이 가능했던 건 아마도 고인의 힘들었던 삶을 안타까워했던 마지막 인연들의 마음이 전해진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어서도 쉽게 세상을 떠나지 못하고 누군가를 기다려야했던 시간, 누님을 보고 싶어하셨던 고인의 소망은 세상을 떠나서야 이루어졌나 봅니다. 누님은 동생이 머문 세상에서 마지막 하룻밤을 함께 보냈습니다.

고인은 1963년생으로 50대 중반의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습니다. 직업은 보일러, 설비 기술자였고, 노숙하셨지만 다시 일하기 위해서 안전관리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려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장례가 진행되는 동안 고인의 유일한 혈육이었던 누님은 “정말 감사하네요.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돈이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갔을 텐데… 도와주셔서… 전라도 광주에 살다 보니 서울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마도 장례지원이 없었다면 장례치르기 어려웠을 거예요. 고맙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입관할 때는 25년 만에 만난 동생이 죽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는지 “눈물도 잘 나지 않는다”고 하시다, 화장한 후에 산골할 때는 그제야 동생을 떠나보내는 마음이 드셨는지 너무나 서글프게 울음을 터뜨리셨습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어디선가 잘살고 있겠거니 생각했던 동생
그 동생이 그렇게 살아생전 만나고 싶었던 누나
25년 만에 죽고 나서야 재회할 수 있었던 짧은 이틀의 장례식
처음에는 동생의 죽음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도 되지 않아 실감 나지도 않는 상황
한 줌의 재로 변한 동생을 산골하는 순간
아~ 정말 동생이 죽었다는 것을 실감하며 통곡하는 누나

장례를 마치고 고인의 영정과 위패를 가슴에 안고 돌아가는 가족들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동생을 잘 보낼 수 있었다.”라고 마지막 감사 인사를 전하며 마지막까지 손을 흔들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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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교회 사랑나눔부 노숙인 구제사역팀, 신화병원장례식장, 대명아임레디에서 김응길 님 마지막 가시는 길 동행해주셨습니다. 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