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장례이야기] 세상 끝에서 다시 만난 이들

7월 장례이야기
세상 끝에서 다시 만난 이들

20180729_기초생활수급자_김응길 장례지원 (4)

“잊었단 말인가 나를, 타오르던 눈동자를/잊었단 말인가 그때 일을, 아름다운 기억을/
사랑을 하면서도 우린 만나지도 못하고/서로 헤어진 채로 우린 이렇게 살아왔건만 (중략)
보고파 지샌 밤이 나 얼마나 많았는데……/
헤어져야 하는가 다시/아픔을 접어둔 채로/떠나가야 하는가 다시/나만 홀로 남겨두고.”

80년대 중반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왔던 노래. ‘재회’의 순간 그동안 만나지 못한 그리움을 모두 다 꺼내놓지도 못했는데 또다시 헤어져야 하는 아쉬운 마음을 담은 그 노래를 떠올렸던 7월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만들어준 하루, 그리움은 헤어진 시간만큼 눈물로 흘렀고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음에 가슴은 아프지만 영원한 이별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20180729_기초생활수급자_김응길 장례지원 (53)

늘어난 장례문의
나눔과나눔의 활동이 각종 매체들을 통해 소개가 되면서 여러 가지 이유, 특히나 경제적인 이유로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분들이 장례지원을 의뢰하는 연락이 자주 오고 있습니다. 2018년 들어 기초생활수급자 장례지원문의가 늘었지만, 서울 이외의 지역에 사시는 분들이 많았고, 수도권에 사시는 분들의 경우 나눔과나눔과 협약된 장례식장까지 시신운구를 하셔야 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장례지원보다는 장례 상담이 주를 이뤘습니다. 가족이나 지인들의 사망이 임박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빈소나 운구차량, 염습, 관, 수의 등에 대한 정보를 알려드렸을 때 자신감을 얻고 장례를 스스로 진행해보겠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한 분들은 예상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그만큼 장례 부담은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큰 것임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일곱 분의 기초생활수급자 장례를 지원했습니다. 무연고사망자 장례가 일주일에 평균 3회 이상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시간과 품이 더 드는 기초생활수급자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기도 했고, 그러기에 홍보를 확대하는 것도 부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의회에서 공영장례조례가 통과된 후 5월 10일부터 무연고사망자 장례 의전업체가 선정됨으로써 나눔과나눔의 활동에도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마침 종교단체에서 거리 노숙인을 대상으로 지원을 하다 돌아가시는 분들의 장례에 대한 고민을 나눔과나눔에 이야기했고, 나눔과나눔에서 장례지원을 할 수 있다는 답변을 드렸습니다. 그 결과 7월 한 달 동안 다섯 번의 기초생활수급자 장례지원이 있었습니다.

죽어서야 만난 가족
7월 초 장례를 치른 홈리스 김문수 님은 사춘기 시절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살며 공장, 중국음식점, 원양어선 등 다양한 직업을 거치면서 많은 고생을 하시다 심장질환으로 병원치료를 받은 후 거리 노숙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종교단체의 도움으로 거주지를 지원받고 다시서기센터 자활근로, 인문학 강좌 등에 참여하는 등 힘든 시기를 극복하려 열정적으로 생활을 해오셨습니다. 하지만 고시원에 홀로 계시다 심장쇼크로 갑자기 돌아가셨고, 장례를 치르려니 가족을 찾아야 했습니다. 다행히 8년 동안 단절되어 있었던 동생분을 찾았고 함께 장례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단절이 오래되어 형님의 삶에 대해 잘 몰랐던 동생분은 형님의 생전 활동 모습을 확인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http://goodnanum.or.kr/?p=3210

2주 후 박재수 님의 장례엔 오랫동안 단절되어 살았던 따님과 전처분이 오셨습니다. 노숙을 하시다 식도암(후두암)으로 호스피스병원에 계시다 돌아가신 후 나흘이 지나 어렵게 가족을 찾았고, 다행히 따님과 아내분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박재수 님의 영상 속 마지막 남긴 말은 기억에 남았습니다. “내가 너무 철이 없었지. 가족에게 너무 못해서 차마 볼 면목이 없어. 꼭 암을 이겨내서 딸을 찾아가야지.” 어릴 적 헤어진 아버지에 대해 애틋한 감정이 남아 있었던 따님은 영상을 보고 난 후 아버지에 대한 그리운 마음에 오열을 터뜨려 주위를 안타깝게 했습니다. http://goodnanum.or.kr/?p=3226

7월 마지막 주 장례를 치른 김응길 님은 노숙을 하시다 거리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평소 하나밖에 없는 누나를 만나고 싶어 하셨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았고, 두 사람의 만남은 죽어서야 이루어졌습니다. 광주에서 동생의 사망 소식에 떨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밤늦게 서울에 도착한 누님은 25년 넘게 헤어졌던 동생과 마지막 밤을 보냈고, 추모공원에서 동생을 보내며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http://goodnanum.or.kr/?p=3271

20180729_기초생활수급자_김응길 장례지원 (71)

하마터면 못 치를 뻔했던 장례
7월 중순 장례를 치른 김정순 님은 기초생활수급자로 2011년부터 요양원에 계셨고, 다리 골절 등으로 휠체어에 의지해 지내시다 올 여름 돌아가셨습니다. 자녀 두 분이 계셨지만 모두 기초생활수급자였고, 넉넉지 않은 형편에 오랜 병간호로 병원비를 내기에도 힘들었던 상황이라 장례를 치를 형편이 못 되었습니다. 절망이 빠져 있을 때 장례식장에서 시립승화원에 연락해 도움을 청해보라고 조언을 했고, 마침 무연고사망자 장례를 위해 승화원에 참석한 나눔과나눔 활동가에게 이 소식이 전해져 장례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http://goodnanum.or.kr/?p=3229

김정순 님 장례 다음 날 장례를 치른 박일영 님은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국가유공자로 위암으로 요양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계시다 돌아가셨습니다. 자녀가 한 분 계셨지만 넉넉지 않은 생활이어서 시신 인수를 포기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마침 종로구의 한 주민센터에서 나눔과나눔을 소개했고, 영등포 신화병원에 빈소를 마련하여 다행히 장례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http://goodnanum.or.kr/?p=3285

20180721_박일영 수급자 장례지원 (15)

애증의 재회
7월 초 무연고사망자 김○○ 님의 장례엔 한 남성분이 참석하셨습니다. 한강에서 돌아가신 채 발견된 고인의 시신을 위임한 사람은 따님이었습니다. 장례 안내를 드리려 연락했을 때 따님은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다시 연락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연락을 주신 분은 고인의 전처였습니다. 고인과는 따님이 고등학생일 때 이혼했고, 도박으로 살던 집까지 날렸고, 이혼 후에도 금전적으로 힘든 상황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따님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 아내분은 공장에서 미싱일을 하고 있어 장례를 위해 시간을 내기가 힘들다며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장례 당일 고인의 전 처남이 참석하셨습니다. 조카와 누나의 이야기를 듣고, 생전에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한때 가족이었기에 오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장례를 함께 치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는 처남분은 꼭 조카에게 아버지와 이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장례를 치른 후 몇 주가 지난 어느 저녁, 따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아버지의 사망신고를 하려면 어떤 절차가 필요한지, 유골함을 찾을 수 있는지 문의하셨습니다. 애증의 시간을 정리하고 아버지와 제대로 된 이별을 하려는 따님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처남

장례유감
7월 막바지에 치른 무연고사망자 장례는 참 안타까운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주말을 앞두고 장례 공문을 받았고, 지인분들이 참석하고 싶다는 구청담당자의 말에 나눔과나눔의 장례안내를 할 수 있도록 연락처를 남겼습니다. 하지만 주말 내내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고, 장례 당일 승화원에 도착했습니다. 운구가 시작되기 전 지인분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구청 담당자로부터 아침에 전화를 받았고, 11시 화장 시간에 맞게 도착하지는 못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늦게나마 출발을 하니 장례식과 운구를 조금 늦춰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곧 운구가 시작되었고 조문례, 수골 과정이 이어졌습니다. 고인의 유골함을 제단에 올리고 견전례를 지내는 동안 전화가 왔습니다. 늦게 참석한 분은 다름 아닌 손자분이었고, 고인분은 할아버지와 7년간 함께 지내셨던 분이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에도 30년이 넘도록 인사를 드리며 할머니로 모셨던 분이 돌아가셨는데 서류상의 가족이 아니었기 때문에 장례를 치를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무연고자가 되어 장례를 치르게 되었지만 그 시간도 하마터면 맞추지 못할 뻔했습니다. 급하게 오셨기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고, 고인께 술 한 잔 올릴 시간도 없이 유골함을 운구차로 모셔야 했습니다. 손자분은 고인의 유골함을 안고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헤어질 뻔했다며 억울한 심정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유가족1

사회적 관계망으로 치른 장례, 무연고사망자를 줄였습니다
7월 한 달 동안 다섯 번의 기초생활수급자 장례(가족장례)가 가능했던 건 나눔과나눔의 활동에 공감하고 후원해주셨던 후원자들과 업무협약을 맺은 신화병원장례식장(빈소 지원), 대명 아임레디(운구차 지원) 그리고 노숙인 자활 등에 관심을 갖고 사회공헌 활동을 진행했던 종교단체(삼일교회)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금전적인 여유가 없거나 단절 등으로 장례를 치를 수 없었다면 무연고사망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회적 관계망으로 가족과 지인들이 장례를 치르게 되어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장례의 의미를 다시금 확인하는 7월이었습니다.

이 글은 나눔과나눔 부용구 전략사업팀장이 작성한 글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

2018년 7월 기초생활수급자
김문수, 박재수, 김정순, 박일영, 김응길

2018년 7월 무연고사망자

김성일, 이종대, 이상용, 이춘우, 불상아기, 김준근, 마윤분, 김종철, 권옥자, 이일온, 양진민, 박정식, 이연화, 김종복, 김창수, 유창호, 한인섭, 조무종, 유명렬, 윤정용, 홍춘옥, 이영석, 김영길, 전태화, 백세준, 서정복, 박봉화, 조정권, 최성철, 박영수, 강선배, 이상균, 전월선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서른여덟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