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장례지원] 지독했던 여름의 상처

8월 장례이야기
지독했던 여름의 상처

없는 사람에게 여름이 겨울보다 낫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가난한 이들에겐 추운 겨울이 먹는 것도 자는 것도 마땅치 않아 견디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름은 그나마 겨울보다는 수월하게 느껴졌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환경 파괴 등의 이유로 지구온난화가 가속되며 이제 여름은 해가 갈수록 기록적인 수치를 경신하고 있고, 올해 폭염 일수는 평균 31.2일로 역대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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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무연고사망자 수 가장 많아
올 여름 폭염으로 온열환자의 수가 4천 3백여 명으로 지난해보다 1.8배 증가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기상 관측 이래 가장 길었던 열대야는 한낮의 폭염으로 지친 몸을 식힐 시간도 허락하지 않았고, 더위를 견디지 못해 사망한 분들의 수도 증가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현상과 관련된 무연고사망자의 수도 많았습니다.
나눔과나눔은 8월 한 달 동안 40명의 무연고사망자 분들을 모셨습니다. 장례 횟수도 21회로 평균 15회, 30명의 수치를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이 중 병원이 아닌 곳에서 돌아가신 분은 26명으로 65%를 차지했습니다.

집에서 혹은 고시원, 쪽방, 거리에서…
8월 무연고사망자의 사망 장소는 살던 집 혹은 고시원, 쪽방, 거리 그리고 한강 등이었습니다. 돌아가신 후 많은 시일이 지나서야 발견된 분들이 유독 많았는데, 시신 입관을 진행한 운구업체 담당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전했습니다. 공문과 함께 받은 시체검안서에는 ‘전신부패 심함’이란 기록이 있었고 사인은 대부분 ‘미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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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의 흔적, 사인 ‘미상’
시체검안서에서 자주 확인할 수 있었던 사인 ‘미상’에 대해 무연고장례에 참석하셨던 한 자원활동가는 의구심을 드러냈습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사인이 ‘미상’일 수 있느냐?”며 부검을 했더라면 사인이 ‘미상’일 리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원활동가의 말대로 만약 고인의 곁에 가족이 있었다면 부검을 요청해 사인을 밝힐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무연고사망자의 85% 이상이 가족이 있고, 장례를 치르지 못해 시신을 국가에 위임하면 무연고자가 되는 현실에서 사인 ‘미상’이란 단어는 고립된 상황에서 홀로 살다 혼자 죽고, 죽은 후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무시당한 채 세상과 이별하는 서러운 세태를 반영합니다. 8월 무연고사망자 중 14명의 사인은 ‘미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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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은 지켰지만 장례를 ‘못’ 치렀습니다
무연고사망자 ○○○ 님 장례 며칠 전부터 참석하겠다는 가족들의 전화가 왔습니다. 구청 담당자로부터 연락처를 받았다며 한 남성분은 장례에 어떻게 참석해야 하는지 물어오셨습니다.
○○○ 님은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 살다가 이혼을 한 후 오랜 시간 동안 혼자 지냈습니다. 가죽공예로 가방 등을 만드는 기술이 있어 생활은 어렵지 않았지만 술을 좋아해 아내와 자주 충돌했고, 그 때문에 이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형님들과 누님이 때마다 ○○○ 님을 챙겨가며 관계를 유지했고, 최근까지도 왕래가 있었던 터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 님이 택시에서 내린 후 그대로 땅에 쓰러져 응급실로 이송됐다는 소식을 듣고 형제분들은 놀란 가슴으로 찾아갔지만 막내는 끝내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슬픔을 견디지 못해 오열하던 형제분들은 시간이 지난 후 더욱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시신을 찾아갈 수 없고,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 님 사망 이후 가족을 찾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배우자와 직계가족(자녀)에게 먼저 연락해 시신 인수포기 의사를 확인했고, 이를 전달받은 장례식장은 시신인도를 거부했습니다. 형님들과 누님은 조카와 상의하겠다며 연락처를 부탁했지만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신 위임에 우선순위가 있고, 먼저 연락을 받은 가족이 포기할 경우 남아 있는 다른 가족이 장례를 치를 수 없는 현실을 또다시 확인하는 장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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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사망 후 형제 관계 단절 늘어나
8월에 장례를 치른 무연고사망자 ●●● 님은 오랜 시간 홀로 지내다 거주하던 곳에서 돌아가셨고, 시일이 꽤 오래 지난 후 발견되었습니다. 형님과 동생들이 계셨지만 시신을 위임해 무연고로 장례를 치르게 되었는데, 무연고자로 확정되기 전 가족을 찾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 님의 남동생분은 치매(인지)가 있으셨고, 길을 자주 잃어버려 가족들이 평소 찾느라 애를 먹는 일이 많았습니다. 8월 초에도 남동생분은 저녁이 다 되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가족들은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 님의 사망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인이 돌아가신 지 얼마나 지났는지 가족들은 알지 못했지만 운구업체 담당자는 적어도 6개월에서 1년은 지난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 님은 어머님이 생존해 계실 때는 형제분들과 1년에 몇 차례는 만났지만, 돌아가신 후에는 관계가 단절된 채 몇 년을 홀로 사셨습니다. 직계가족이 없이 혼자 사는 분들이 부모 사망 후 형제들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장례까지도 치르지 못하는 씁쓸한 현실을 또 한 번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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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고장례에 올 수밖에 없었던 친구들
김○○ 님 장례엔 지인분들이 참석하여 마지막을 동행했습니다. 30년 넘게 친하게 지낸 친구는 홀로 살던 집 화장실 문턱에서 구토를 한 채 쓰러져 있었습니다.
김○○ 님은 중학교 1학년 때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사셨고, 가족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가족관계증명서에도 부모님 성명이 미상으로, 고아로 자라셨습니다. 왕만두를 빚는 주방장이셨다는 김○○ 님은 결혼하지 않고 홀로 평생을 지냈지만 주위엔 20대부터 함께 지낸 친구들이 계셨습니다. 친구분들은 장례를 치르고 싶었지만 혈연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럴 수 없었습니다. 장례에 참석한 친구분들은 술 한 잔 올리고 마지막 보내는 자리에서 “고생했다. 하늘나라 가서 부모님 찾아 인사해라.” 하시며 울먹이셨습니다.

제도가 바뀌어야 장례 가능
‘연고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의 ‘무연고자’에게는 가족과 지인분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여론 형성이 먼저일 것입니다. 제도가 무연고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바꿔나가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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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나눔과나눔 부용구 전략사업팀장이 작성한 글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이름들

2018년 8월 기초생활수급자
양영희

2018년 8월 무연고사망자
정기영, 권태응, 김하일, 주세웅, 김한식, 김석경, 불상, 홍명표, 박상순, 김덕희, 정영호, 조중연, 이한섭, 안인성, 현영식, 강길수, 조윤환, 최경선, 임영호, 신상익, 서정길, 이형자, 임경택, 권성옥, 김영생, 장명석, 신금화, 백정기, 김충심, 주재중, 황승일, 이재호, 김종길, 전복도, 김명재, 박재화, 윤창식, 불상, 박삼태, 정창희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마흔한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