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탐방, 일본 사회와의 첫번째 마주이야기] 일상에서 죽음을 마주하다

그 어떤 여름보다 무더웠고 폭염일수가 길었던 2018년 8월, 일본행 비행기를 탔다. 한국만큼, 아니 그 이상 덥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무더위 속에서 일주일이 넘는 긴 일정을 어떻게 소화할까 염려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히 8월 말을 향해 가는 일본의 늦여름은 생각보다는 덥지 않았다. 버거운 일정으로 몸은 지쳐갔지만, 함께 했던, 새롭게 만났던 사람들로 머리는 오히려 맑아져 갔다.

생각해보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이렇게 실제로 일본을 가게 될 줄이야. 내 기억의 범위에서는 2016년 초반 정도인 것 같다. ‘무연사회’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된 ‘가족대신’ 장례 하는 NPO. 그 뒤로 일본에 이런 NPO가 있고 한국에도 필요하다고 떠들고 다녔다. 책의 쪽수를 외울 정도였다. 157쪽. 뜻이 있으면 길이 생긴다고 했던가. 화우공익재단의 연구 지원 사업으로 일본 현지를 탐방하고 일본 사회는 어떻게 가족대신 장례를 할 수 있는지, 제도적인 근거는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그곳을 탐방하며 만났던 사람들과 경험했던 일본 사회와의 마주이야기를 하나씩 풀어 보려고 한다.


[일본 토비타신치(飛田新地) 거리]

유곽(遊廓)을 걷다

오사카시 니시나리구(西成区)의 북부에 위치한 가마가사키(Kamagasaki, 釜ヶ崎), 행정용어로는 아이린지구(愛隣地区/あいりん地区)라고 불리는 지역 일대를 오사카 대학 미야모토 교수의 소개를 받으며 둘러봤다. 가마가사키는 오사카 시민들도 잘 가지 않는 지역이라고 한다. 흔히 ‘일본 최대 슬럼가’, ‘일용직 노동자와 노숙자의 집합처’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일본 여행안내를 보면 우범지역이니 가지 말 것을 권유하기도 한다. 사실은 그래서 일본현장 탐방에 있어서 이곳을 빼놓을 수 없었다. 무연고사망자와 빈곤은 서로 떼어 놓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토비타신치(飛田新地) 유곽 입구]

그런데, 지역을 소개해 주던 미야모토 교수가 ‘어신등(御神燈)’이 걸려 있고 ‘토비타(Tobita)’라는 글씨가 붙어있는 기둥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는 “지금 이곳부터는 사진을 촬영하시면 안 됩니다.”라며 카메라를 가방에 넣으라고 부탁했다. 그곳은 토비타신치(飛田新地)의 성매매 집결지가 있는 곳이었다. 예전에는 공인을 받아 성매매가 이뤄지기도 했던 곳, 하지만 1958년 매춘방지법이 시행되면서 지금은 요리조합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입구에서부터 전체를 둘러보는 데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천천히 그곳의 분위기를 살피며 걸었다. 사실 흔히 ‘홍등가’라고 하면 붉은색 불빛이 즐비한 거리가 떠오른다. 하지만 방문한 시간이 저녁 6시가 안된 아직은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마가사키의 다른 상점가, 음식점이 있는 거리와 크게 다르지는 않은 느낌이었다. 물론 몇몇 여성이 유리창 너머로 다소곳이 앉아 있는 모습, 그리고 남성들이 군데군데 모여 있는 모습에서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었다.


[유곽 위령비 전경]

유곽 위령비를 마주하다

설명을 들으며 마지막으로 간 곳은 유곽 위령비가 있는 곳이었다. 무연고사망자 장례를 지원하기 때문일까? 누군가를 추모하는 공간을 보게 되면 눈길이 머물게 된다. 제일 먼저 「자비공생(慈悲共生)」이라고 글자가 있는 사람 키 만한 비석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앞에 놓여 있는 생화는 약간 시들기는 했지만 최근까지 누군가 이곳을 방문했다는 걸 알려 주고  있었다. 누굴까? 이곳에 꽃을 들고 와서 추모하는 사람은? 그리고 유곽에 위령비가 세워진 까닭은 무엇일까?

위령비 앞에는 유래에 대한 안내석이 있었다. 안내석은 “여러 사정으로 토비타 유곽에서 일하고, 거주해 온 다수의 남·녀(유녀)들이 여러 사정과 세간의 악평으로 유곽 밖으로 이주하는 것도 여의치 않아 사망한 영혼의 안녕을 빌며 세워졌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유곽이라고 하니 그곳에서 버거운 삶을 살았던 여성만을 떠올렸다. 그런데 이 위령비는 유곽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이곳에서 사망한 다수의 남·녀를 기록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유곽에서의 생활이라는 것이 여성만 버거운 삶을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곳에도 사람 사는 세상이니 남성의 역할도 필요했을 것이고 이곳에서의 남성의 삶 역시 버거웠을 것이다.

안내판은 이렇게 이어진다. “자모관음은 지역에 공헌해 왔음에도 가족에게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사망한 많은 유녀들의 영혼을 공양하고, 그녀들의 노력을 결코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지역이 하나가 되어 모시고 싶다는 생각으로, 동시에 생활 근거지(地元)인 니시나리구 산노산쵸메(山王三丁目)에 마련한 것입니다.”라고. 그리고 말미에 “여기에서 평안히 잠들기를 마음으로부터 바랍니다”라고 마무리한다. 이 위령비는 토비타 사회복지협의회가 2008년 8월에 세웠다고 한다.

 

일상에서 죽음을 마주하다

이 위령비를 마주하며 한 단면일 수도 있지만, 위령비를 일상 삶의 터전 한 가운데 두고 꽃을 올리며, 일상에서 죽음을 마주하는 이곳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상에서 죽음을 마주한다는 것, 한국 사회는 아직 익숙하지 않다. 올해 초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과 교사를 기릴 세월호 추모공원이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조성되는 사안에 대해 반대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추모공원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화장유원지는 안산의 심장인데, 그곳에 납골당이 웬 말이냐며 안산을 죽음의 도시로 만든다고 ‘화랑유원지를 시민 품으로 돌려달라’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하기도 했다. 사실 봉안시설은 유원지 면적 0.1%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출처: 트위터 갈무리]

가마가사키 거리를 걸으며 일본 사회가 생명과 죽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었다. 골목 모퉁이 한적한 곳에 ‘고양이 신사’가 있었다. 일본에서는 생활 곳곳에 작은 신사가 있다. 공식적으로 집계된 일본 내 신사는 약 8만여 곳에 이르지만, 알려지지 않은 작은 신사들까지 포함하면 30만여 곳이 족히 넘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고양이 신사는 샤미센(三味線, しゃみせん)이라는 일본의 악기를 만들기 위해 죽어간 많은 고양이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샤미센은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현악기다. 전통적으로 샤미센 몸통 양면에는 동물의 가죽을 붙이는데, 가죽은 본래 고양이의 뱃가죽을 사용했다고 한다. 아마도 근처 유곽에서 노래하기 위해 필요한 샤미센을 만들기 위해 이곳 부근에서 많은 고양이를 잡아야 했던 것은 아닐까.

이러한 문화를 통해 일본인은 한국인들 보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살 기회가 많을 것 같다. 죽음은 삶과 결코 구분된 별개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마치 죽지 않을 것처럼 살고 있다. 일본 가마가사키의 유곽 위령비와 고양이 신사를 마주하며 죽음을 터부시하는 한국 사회도 언젠가는 일상에서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