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장례지원] 죽어야 만나는 이들

[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11월 장례이야기
죽어야 만나는 이들

프롤로그
12월을 앞두고 11월을 보냈습니다. 당연한 말 같지만, 한 달을 보내고 새롭게 맞이하는 한 달이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음을 떨어져 내리는 수은주를 통해, 아침저녁 스쳐가는 목덜미의 바람을 통해, 매번 만나는 사람들의 이름을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같은 듯 조금씩 다른 그 느낌으로 11월을 보내고 ‘또’ 12월을 맞이합니다.

민간단체에서 지자체로
공영장례의 첫걸음
서울시는 해마다 입찰을 통해 운구업체를 선정하여 무연고사망자의 시신운구와 화장 및 봉안업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나눔과나눔은 그 과정에서 장례의식이 없다는 문제를 인식하고 2015년부터 무연고사망자 장례지원을 해왔습니다. 첫해에는 무연고사망자 발생 시스템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스무 분의 장례지원에 머물렀으나 이후 2016년 183명, 2017년 288명으로 점차 그 숫자를 늘려갔습니다. 서울시는 나눔과나눔이 진행했던 장례 형태를 기초로 무연고사망자 장례의전을 수행할 업체를 선정했고, 2018년 5월 10일부터 서울시립승화원 2층에 무연고사망자 전용 빈소를 마련하여 장례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시 무연고사망자 장례는 25개 구청에서 공문을 받은 후 보통 2, 3일 내에 화장이 예약되고 그에 따라 장례의식이 치러집니다. 무연고사망자의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고 2017년의 경우 공문을 통해 장례를 치른 무연고사망자는 366명이었습니다.(무연고 기초생활수급자를 포함하면 516명) 하루 한 분꼴로 발생하니 부득이하게 두 분씩 장례를 치르고 있으며, 2018년에는 한 달 평균 16.5회의 장례가 발생했습니다. 지난 11월 한 달 동안은 20회에 걸쳐 37명의 무연고사망자 장례를 치렀고, 11월 30일 현재 서울시 무연고사망자의 수는 353명에 이르렀습니다.

‘제단 위의 인형’
딸과 함께 무연고장례에 참석한 자원봉사자
11월 초 한 아기의 무연고장례가 있었습니다. ‘김○○’, 2016년에 태어난 아기는 서울시 관악구의 한 종교단체 베이비박스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박스 안에는 엄마의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아기는 전전뇌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고, 자신이 키울 수 없어 미안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는 순간 가슴이 탁 막혔습니다. 불행히도 아기는 2018년 가을 어린이병원에서 급성호흡곤란증후군으로 사망했고 연고자를 찾을 수 없어 무연고자가 되었습니다.

나눔과나눔은 장례 때 관 위에 올려줄 아기의 옷과 모자, 양말을 샀습니다. 비록 생전에 입어보지는 못했지만 먼 곳으로 가는 아기가 더 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장례가 진행되는 도중 한 자원봉사자의 방문이 있었습니다. 이전에도 종종 야근을 끝내고 장례 중간에 나타나 고인을 위해 추모의 꽃 한 송이를 올려주셨던 분인데,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아기의 장례부고를 보고 봉사자분은 자신의 딸을 데려오셨고, 딸은 까치발을 들어 김○○ 아기의 제단에 고사리손으로 꽃과 인형을 올렸습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사연들로 인연을 맺어 깊은 관계가 되기도 합니다. 또한 여러 가지 이유로 남이 되어 헤어지면 가슴속에 상처 하나를 묻어두고 살아갑니다. 비록 김○○ 아이의 생은 짧았지만 보내주는 이들의 가슴은 꽃으로, 옷으로, 인형으로 그 아이를 오래도록 기억할 것입니다.

참으로 부모복 없는 인생입니다
11월 들어 무연고사망자의 수가 증가 추세를 보였고, 매일 화장이 예약되고 장례의식도 치러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무연고사망자 A님과 B님의 장례가 있던 날, 운구차에는 B님이 아닌 다른 한 분(C님)이 계셨습니다. 급하게 C님의 위패를 준비해서 장례의식을 진행하던 차에 문득 C님은 다음 날 화장이 예약된 분이라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C님의 장례에는 참석할 아들이 계셨습니다.

장례 사흘 전 해당 구청으로부터 C님의 장례의전 공문이 접수된 후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 주신 분은 자신이 C님의 아들이라고 밝혔고 30년 이상 단절되어 살다가 사망 소식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장례 일정을 안내해드리고 전화를 끊으려 할 즈음 “저…, 제가 어떻게 하는 게 맞을까요?”라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한 번도 받은 적도 없고, 살면서 아버지는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호적상의 아들이지만 그런 아버지의 장례에 가야 할지를 묻는 아들의 질문에 장례의 의미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을 전했습니다. 제대로 된 이별의 시간, 그 사람과의 인연을 정리하는 시간이 없다면 사는 동안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의 빚은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자 아들은 “그렇겠죠?”라며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영정으로 쓸 사진이 있는지 여쭤보니 예전 사진을 보내주시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운구업체는 가족이 시신을 인수해간 B님을 대신해 하루 앞당겨 C님의 화장을 예약했고, 의전업체와 나눔과나눔에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은 채 장례가 진행되었습니다. 장례 중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습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아들은 “그렇게 되었군요.”라며 실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미리 출력해놓은 아버지의 영정사진은 결국 쓰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장례가 끝나고 장례 사진과 함께 죄송한 마음을 담은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지나 답장을 받았습니다.
“아닙니다, 선생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어쩌면 부모님과의 인연이 거기까지인 듯합니다. 참으로 부모 복 없는 인생입니다.”
가혹한 운명은 끝끝내 아버지와 아들의 만남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국일고시원 참사……
마지막 거주지로 자리 잡고 있는 고시원
2018년 11월 9일 새벽, 서울시 종로구 국일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는 일곱 분의 안타까운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희생된 분들은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로 고된 일을 마치고 좁은 고시원 방에서 깊은 잠을 주무시다 참변을 당하셨습니다. 스프링클러도 없는 노후 건물 작은 방에서 지내시다 화마에 목숨을 잃은 소식을 접했을 때 들었던 걱정은 그분들 중 무연고사망자가 될 분이 계실지 여부였습니다.

무연고사망자 중 마지막 주소지 혹은 사망 장소가 고시원, 쪽방, 시설 등인 분들이 많습니다. 올해 11월까지 서울시 25개 구청의 ‘무연고사망자 장례의뢰’ 공문을 통해 무연고장례를 치른 분은 모두 353명(2017년 총 366명)이고, 그중 마지막 주소지가 비주택인 경우는 171명(48.4%)으로 고시원 65명(18.4%), 쪽방 39명(여관 포함 11.4%), 병원 27명(7.6%), 주소지불명 21명(5.9%), 시설 19명(5.4%) 순이었습니다. 사망 장소가 고시원이었던 경우는 22명으로 전체 무연고사망자의 6.2%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제대로 된 주거지가 아닌 곳에서 지내는 경우 무연고사망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는 지표로, 결국 빈곤의 문제가 무연고사망자 발생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난은 이제 대물림을 넘어 가족의 장례를 포기하는 상황까지 낳고 있습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장례에 참석한 쪽방민의 의리
11월 초 무연고사망자 설○○ 님의 장례가 있었습니다. 설○○ 님은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쪽방에 살다 지난여름 한강에서 안타까운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공문을 받고 동자동사랑방에 연락을 드려 주소지와 고인 확인을 부탁드렸는데, 불행히도 고인을 아는 분이 계시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동네에서 몇 분이 장례에 참석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장례 당일, 운구가 시작되었고 동자동에서 오신 분들이 설○○ 님 외에도 같이 장례를 치르는 분까지 운구를 도와주셨습니다. 언젠가 이분들이 장례에 참석해서 본인들의 미래도 무연고가 될 수 있다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매년 동짓날 서울역에서 홈리스추모제가 있을 때 먼저 떠난 이들을 향해 “잘 가라. 곧 따라가겠다.”며 눈물을 흘리실 때 그 절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가슴이 아팠던 기억도 났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남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 그분들의 마음이 그랬습니다.

빈소에서 장례의식이 끝나고 설○○ 님의 유골을 시립승화원 유택동산에 뿌렸습니다. 동자동에서 오신 분들은 모두 스스럼없이 고인의 유골을 뿌렸고 이내 장례가 끝이 났습니다. 비록 얼굴은 모르지만 같은 공간에 살았다는 사실 하나로도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 그분들의 마음이 참으로 따뜻했습니다. 공동체는 사람들 간의 관계가 아직도 긴밀하게 연결된 곳이란 생각이 듭니다. 도시 속 섬처럼 높은 건물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그 속엔 사람이 있고, 관계가 살아 있는 살 만한 세상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에필로그
‘죽어야 만나는 이들’
일반적인 장례에서 가족이 오열하는 모습을 무연고장례에서는 사실 자주 보기 힘듭니다. 가족이 있지만 시신을 위임하여 무연고자가 되어 의전업체와 민간단체 활동가, 종교의례자가 마지막을 함께하는 장례, 그것이 보통의 무연고장례입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가족과 지인들이 참석하고 싶어도 언제 화장하는지 몰라서, 혹은 시신 위임을 했기에 면목이 없어서 장례에 못 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시신을 인수할 경우 가족을 찾는 동안 늘어난 안치료, 병원에 입원했을 경우 갚지 못한 병원비를 내야 합니다. 거기에 장례비를 더한다면 금액은 감당할 수 없는 정도까지 불어납니다.

금액 외적인 면에서는 무연고자의 경우 가족 간의 오랜 단절로 애증의 감정을 풀지 못해 분노하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어린 날 자신을 버린 아버지의 시신을 포기하고, 재가한 어머니는 두고 간 아들의 사망 소식을 새로운 가족에게 숨기고 살아갑니다. IMF 외환위기로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노숙자가 되어 이젠 가족들에게 돌아갈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각자 살기도 힘들어 떨어져 살던 형제는 형제의 죽음에 오열하면서도 장례를 치를 능력이 없어 시신을 포기하고, 일자리가 끊길까봐 장례에도 참석하지 못합니다. 그나마 무연고장례에 올 수 있는 가족들은 마음이라도 풀고 가는데 말입니다.

가족이 가족의 장례를 치를 수 없는 시절에 살고 있습니다. 무연고사망자가 해마다 늘고 있다는 게 이를 증명합니다. 서울시의 경우처럼 지자체에서, 결국에는 사회가 대신 장례를 치러주는 시스템이 갖춰지기를, 그래서 모든 이들이 장례 없이 세상과 이별하는 일들이 없어지기를 희망합니다. 죽어서라도 서로를 만날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글은 나눔과나눔 부용구 전략사업팀장이 작성한 글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이름들

11월 무연고사망자
정광일, 정운홍, 김필수, 설용국, 변일, 김새해, 왕인덕, 리윤길, 김명숙, 김무호, 정○○, 송경숙, 이종식, 김종헌, 장상길, 김진수, 우준하, 남정오, 배명환, 이춘호, 서태군, 오남성, 이종철, 김덕용, 장길수, 박우덕, 이재식, 정홍화, 박인태, 안수명, 서정학, 장형주, 양온식, 신영수, 김순환, 김백규, 이성옥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서른일곱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