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탐방, 일본사회와의 두 번째 마주이야기] 일본 홈리스 거리에서 쪽방을 만나다

‘다다미 넉 장 반’ 보다 더 작은 ‘쪽방’

‘다다미’는 일본의 전통 방 크기를 말할 때 사용하는 기준이다. 한국으로 말하면 ‘평’이라고 할까. 일본에서 ‘다다미 넉 장 반’이라고 하면 ‘이보다 더 작고 싸게 구할 수 없는 방’이란 뜻으로 사용된다. 한국으로 치면 고시원이나 쪽방쯤의 이미지로 통한다. ‘다다미 넉 장 반’의 넓이를 굳이 평으로 환산하면 2.25평 정도. 한국의 고시원이 1.5평 내외인 점을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 넓이인지 대략 느낌이 온다.

오사카시 니시나리구(西成区)의 북부에 위치한 가마가사키(Kamagasaki, 釜ヶ崎)에는 일본의 쪽방이라고 할 수 있는 ‘다다미 넉 장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다다미 ‘두 장’ 혹은 ‘세 장’짜리 여관이 홈리스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가마가사키 거리를 걷다보면 입주자를 모집하는 저렴한 숙박업소를 자주 마주하게 된다. 이런 숙박업소는 하루씩, 주간으로 또는 월세로 숙박요금을 낼 수 있다.

한 숙박업소 벽에 붙어 있는 요금표에는 간이숙박여관 다다미 세 장짜리 방이 500엔(약 5천 원 정도), 새로 단장한 듯한 방은 전기요금을 별도로 내야 하는데 700엔에서 800엔이었다(약 7천 원에서 8천 원 정도). 여관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약 1만 원 정도로 하룻밤 누워 잠을 청할 수 있는 것 같다.

거리를 걷다 숙소 현관문에 붙은 홍보물 하나가 눈에 띄었다.
“생활보호 응원합니다. 연금도 대환영!!
생활 보호 신청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이사도 친절하게 돕습니다.”
이렇게 ‘생활보호대상자와 연금대상자’를 특정해서 입주자를 모집하는 곳도 있었다. 아마도 이곳에 이런 분들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 아닐까.

그런데 ‘고도의 질서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에서 어떻게 이러한 홈리스 지역이 만들어졌을까? 가마가사키에는 홈리스 지원단체가 몇 군데 있다. 그중에서 ‘NPO 법인 가마가사키 지원기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야마나카씨를 만나 홈리스 거리를 함께 걸으며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가마가사키의 지난 과거와 현재를 마주했다.

폐기 처분된 ‘일회용’ 노동자

1970년 일본에서 개최한 세계 박람회, 흔히 일본 만국 박람회(日本万国博覧会)라고 불리는 이 행사는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됐다. 이는 1964년 하계 올림픽과 함께 1960년대 일본의 빠른 경제 성장을 상징하는 행사였고, 일본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였음을 과시하는 행사였다. 이로 인해 오사카에는 건설 붐이 일었다. 당연히 많은 남성 노동자가 필요했고, 1960년대 오사카 가마가사키에는 일용직 건설 노동자들이 몰려들었다. 자연스럽게 폭력조직인 야쿠자들이 건설현장을 관리했고, 용역업체까지 운영했다. 그 때문에 여러 차례 폭동과 경찰과의 충돌 등으로 일본에서 가마가사키는 흔히 말해 ‘슬럼’으로 통하게 된다. 이렇게 도시 이미지가 추락한 후 오사카 정부는 실추된 지역 이미지를 살리고자 이곳을 ‘아이린지구(愛隣地区/あいりん地区)’라는 새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 아이린 노동공공취업상담소 전경
건설경기 호황기 때 이곳에서는 구인과 구직이 활발했고 일용 건설노동자들이 건설현장으로 가기 위해 줄을 서서 버스를 탔다.

그런데 일본의 버블 경제가 꺼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건설 산업이 불황에 빠지고, 건설현장의 기계화로 인한 업무감소로 일용 건설노동자의 실업이 증가했다. 결국 이들은 실업자가 되고 노숙생활을 시작한다. 경기 호황기에 정부는 젊은 남성들을 부추겼다. 고향을 떠나라고. 그래서 고향을 떠난 남성들은 혼자 살면서 일용 건설노동자가 됐다. 한 때 이곳의 인구 비율은 남성 90%, 여성 10% 일 때도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젊은 남성들이 이곳으로 몰려왔는지 실감할 수 있다. 그래도 경기 호황기에는 괜찮았다. 언제든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문제는 경기 불황기다. 실업자가 되자 이들은 슬럼가에 살고 있는 홈리스 신세가 되었고, 정부의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가마가사키에 있는 삼각공원
공원 한 켠에는  홈리스분들이 노숙하기 위해 만든 천막도 보인다. 명절에 돌아갈 고향이 없는 홈리스 분들을 위한  공연도 진행된다. 

어쩌면 정부는 건설에 쓸 ‘일회용 기계’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곳에 온 것은 ‘일회용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1960년대 30~40대였던 일용 남성 건설노동자들. 이제 그들이 70~80대의 고령의 홈리스로 방치되고 폐기처분된 것이다. 그리고 이곳 가마가사키는 홈리스 거리로 ‘장기실업’, ‘노숙’, ‘독거’, ‘초고령’, ‘고립사’라는 삶의 무게가 심각한 곳이 되었다.

초등학교 벽에 설치된 ‘스프링클러’

안내하던 야마나카씨가 걸음을 멈추고 퀴즈를 냈다. “여기는 초등학교입니다. 보시면 담벼락에 파이프 관이 보이시지요? 이 관의 용도는 무엇일까요?” 초등학교 담벼락에 설치된 ‘파이프 관’이라면 아이들의 놀이를 위한 무엇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이 홈리스 거리라는 점을 주목했어야 했다. 이것은 놀랍게도 초등학교 주변에 홈리스분들이 노숙하지 못하도록 막는 장치였다. 정답은 ‘스프링클러’. 등하교 시간이면 파이프 관에서 물이 나오고 그러면 노숙하던 사람들이 흐르는 물 때문에 이동한다는 것이다.

이 설명을 들으니 몇 년 전 서울시 의회 근처에서 일할 때 경험이 떠올랐다. 그 당시 서울시 의회를 청소하시는 분들이 아침마다 지하보도를 물로 청소했다. 처음엔 깔끔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저녁이면 박스를 치고 잠자리를 만드셨던 분들을 쫓아내려는 방법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서울시 의원들이 지하보도에서 잠자는 홈리스를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 조치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일본 초등학교 담벼락에 설치된 스프링클러와 서울시 의회 앞 물청소는 누군가를 쫓아내기 위한 목적에서 너무나 닮았다.

일본 오사카와 한국 서울의 닮은 꼴을 마주하며  ‘쫓겨나지 않을 권리’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서는 2016년 ‘홈리스 추모제’에서 들었던 홈리스 당사자분의 발언이 떠올라,  그 당시 발언문 일부를 요약 발췌한다.

“우리에게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느냐고 묻지 마십시오. 그 질문은 네가 잘 못 살아서 거리 잠을 자게 된 것이 아니냐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그 질문에는 개인의 불행에 대한 사회의 책임이 빠져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서 요구하는 것은 최소한의 잠자리와 일자리와 치료 받을 권리입니다. 그것은 모든 국민에게 동등하게 주어져야 하는 당연한 권리입니다.

지금 우리는 ‘쫓겨나지 않을 권리’를 요구하러 이 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쫓겨나지 않을 권리’라는 것은 쫓아내는 놈이 있고 쫓겨나는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누가 서울역에서, 쪽방에서 우리를 쫓아내는 겁니까? 언제까지 쫓겨나기만 할 겁니까? 밀려서, 또 밀려서 이제는 더 갈 곳도 없는데 가만히 밀려주니까 가마니로 보입니까? 밀껍데기로 보입니까?

지금 도시 시민들이 지하철 탈 때 엘리베이터 탈 수 있는 것은 장애인들이 피나게 투쟁해서 얻은 결과물입니다. 덕분에 시민들도 편하게 지하철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시민들이 알아야 합니다. 가만히 있지 말아야 합니다. 홈리스가 피나게 투쟁하면 나중에 모든 시민들이 살던 방에서 일터에서 병원에서 쫓겨나지 않게 됩니다.

더 이상은 얼어 죽을 수 없습니다. 죽어서도 무연고 시체처리 될 수 없습니다. 먼저 가신 홈리스 고인들을 기억하고 이 땅에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이 자리에서 역할을 하겠습니다.”

올해도 12월 동짓날 하루 전날인 21일에 서울역에서 ‘홈리스 추모제’가 열린다. 열악한 홈리스의 인권 실태를 고발하고 사회적인 대책을 요구하며,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한 홈리스 무연고사망자분들을 위한 제단도 마련할 예정이다. 올해 홈리스 추모제를 기회로 일본탐방을 통해 알게 된 바를 더 알릴 예정이다.

이 글은 박진옥 사무국장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