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장례지원] 저무는 한 해, 떠난 이들을 추모하다

[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12월 장례이야기
저무는 한 해, 떠난 이들을 추모하다

프롤로그
겨울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 극에 달하는 계절.
한파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가여운 생명들을 철저히 농락하고,
마지막 보호막까지 가뿐히 뚫어버렸다.
불빛을 잃고 구르던 몸뚱이는 촛농처럼 굳어갔고,
에는 바람은 그마저도 얼려버렸다.
껍데기를 잃은 달팽이는 창도 없는 동굴 속에서 간신히 모닥불을 피우고
검은 연기는 그들을 질식시키고
피워보지 못한 피로한 청춘의 숨이 끊어져버렸다.


(사진설명 : 2018년 12월 27일 서울시 종로구 국일고시원 희생자 49재)

어디에도 둘 데 없는 파란색 도시락 가방

12월이 시작되고 잠시 포근한 기운이 감돌았던 날 무연고 사망자 ○○○ 님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마지막 주소지는 고시원이었고, 형제들이 있지만 단절된 30년의 시간은 마지막 인사조차 거부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시신을 실은 운구차가 서울시립승화원에 도착하고, 화장이 시작되기 전 운구업체 직원이 고인의 유품을 보여줬습니다. 도시락통이 들어 있는 파란색 가방. 화장할 때 유품을 같이 태우는 건 금지되어 있고, 고인의 유골도 산골(자연장, 유골을 뿌림)이 결정되었기에 가방은 쓰레기통에 버려졌습니다.

※ 산골(자연장)에 관련하여 : 기존의 경우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의 유골은 경기도 파주시 용미리 무연고 추모의 집에 10년간 안치했으나, 2018년 10월부터 보건복지부는 연고자가 있지만 시신인수를 거부한 무연고 사망자의 유골의 경우 서울시립승화원 유택동산에 산골(자연장) 지침을 내렸습니다.

쓰레기통 앞에서 서성이다 파란색 가방을 다시 꺼냈습니다. 예순에 가까운 생을 살다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신 고인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물건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죽어서야 비로소 주인의 손을 떠난 도시락가방은 생전의 고인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또 어떤 사연이 들어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화장 시작을 알리는 안내가 들리고 도시락가방을 어찌할까 결정하지 못하고 서성이다 차마 쓰레기통에 도로 넣지 못하고 장례행렬에 합류해야 했습니다. 고인의 유품은 그렇게 쓰레기통 위에 덩그러니 놓여 누군가의 처분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장례가 끝나고 머릿속엔 온통 파란색 도시락가방 생각뿐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생이 끝나고 남은 물건, 결국 그것마저 쓰레기통에 버려졌습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관계가 끊어지고 남은 건 아무것도 없는 비정한 무연사회의 차가운 현실을 보았습니다.


(사진설명 : 무연고 사망자의 유품)

닫히지 않은 관

해마다 무연고 사망자의 수는 눈에 띄게 늘고 있고, 1년에 180번 이상의 장례를 치르면서 다양하고도 안타까운 사연들을 만나게 됩니다. 장례를 치르지 못해 오열하는 사람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듣는 경우를 제외하고라도, 25개 구청에서 보낸 공문 속에서도, 장례 당일 운구차에 실려 있는 관을 맞닥뜨릴 때에도 충격적인 사연들을 접하게 됩니다.

2018년 2월 장례를 치렀던 A 님은 태어날 때부터 척추 장애가 있었고, 베이비박스에서 발견되어 평생 어린이병원에서 누워 살다 만 40세에 사망하신 분으로 관 뚜껑을 닫지 못한 채 화장로 안으로 들어가는 광경에 참혹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12월 무연고 사망자 이○○ 님의 장례에서도 그 충격적인 장면은 되풀이되었습니다. 2018년 9월 12일 사망 당시 이○○ 님의 나이는 만 55세였고, 형제들이 있었지만 시신인수를 거부해 무연고자가 되어 돌아가신 지 석 달이 다 되어서야 장례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례 당일 운구차 문을 열었을 때 기가 막힌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망자의 시신을 실은 관의 뚜껑이 다 닫히지 않은 채 관보를 씌운 충격적인 순간을 목격하고 장례에 참석한 사람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님은 발견 당시 몸이 많이 상해 있었는데, 사망 원인은 ‘건물에서 추락추정’이었습니다. 일반 장례의 경우와는 달리 무연고 사망자는 사망 이후 가족을 찾느라 장례식장에 안치되는 시간이 길어 부득이하게 냉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 님의 가족을 찾느라 80여 일의 시간이 흘렀고, 시신을 바로잡지 못한 상황에서 안치실에 있다가, 무연고자로 확정되고 입관이 진행되니 이미 얼어버린 시신은 뚜껑을 채 닫지도 못하고 화장장으로 가야 했습니다.

이○○ 님처럼 무연고자의 경우 변사자가 많아 사망 후 발견 당시에 이미 몸의 상당 부분이 훼손된 경우가 많고, 초기 수습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안치되는 바람에 입관할 때 어려움을 겪습니다. 만약 이○○ 님 사망 당시 연고자가 나타나 무연고자가 되지 않았다면(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설명 : 채 닫히지 않은 관 위로 한 종교단체에서 준비해온 탑다라니경을 올렸습니다.)

애증의 깊이만큼 떨어진 부자의 거리

“늦은 시각 죄송합니다. ●●● 씨 장례일정 나오면 말씀해주세요.”

12월 초순 즈음 밤 11시가 넘은 시각에 한 통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이튿날 운구업체에 장례예약확인을 했고, 곧바로 문자를 발송한 번호로 무연고 사망자 ●●● 님의 장례일정을 안내했습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아직 참석할지 결정하지 않았다.”라고 대답했습니다.

●●● 님의 장례일 운구가 시작되었을 때까지 아무 연락이 없었습니다. 고민하다 결국 장례 참석을 포기하셨나 싶었습니다. 시신이 화로에 들어간 동안 시립승화원 2층 빈소에 올라와 초빈례를 드렸고, 종교의식이 끝난 후 수골(화장 후 뼈를 수습함) 과정을 보기 위해 관망실로 내려갔습니다.

수골이 진행되기 전 등 뒤에서 남성분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혹시 여기가 ●●● 님인가요?”큰 키에 모자를 푹 눌러쓴 남성은 ●●● 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려 하니 아들은 “괜찮아요. 번거롭게 해드리기 싫어서 그래요. 그냥 뒤에 있을게요.”라며 멀찌감치 떨어진 곳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수골이 시작되고 관망실 바로 앞으로 다가온 아들에게 안에 들어와서 보길 안내했더니, “괜찮다”는 말과 함께 뒤돌아서서 조그마한 소리로 “살아 있을 때 잘 하든가……”라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내심 자신의 마음을 내보이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게 아들의 곁으로 갔습니다. 아들의 두 눈엔 눈물이 맺혀 있었습니다. 아들은 수골실로 들어가 분골과정을 지켜보았고, 빈소에서 영결식이 진행되는 동안 몇 발 떨어진 곳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습니다.

아들은 사실 운구차가 왔을 때부터 줄곧 아버지 주변에 있었고, 사람들이 자신 때문에 불편해할까 봐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스스로 다가왔고, 사람들 앞에서는 ‘증오’ 섞인 음성과 눈빛으로 자신을 포장하려 했지만 뒤돌아 흘린 ‘눈물’로 자신의 마음을 조금은 내보였습니다. 유골함을 운구차에 싣는 것을 확인한 후 아들은 겸연쩍은 눈인사를 보냈고, 이내 돌아서서 하염없이 걸어갔습니다. 고민 끝에 어렵게 장례에 참석한 그 마음을 헤아려보며, 부디 아들이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고 새로운 삶의 의욕을 가지고 살아가길 바랐습니다.


(사진설명 : 무연고 사망자 장례 중 기도를 드리고 있는 의전팀장과 대리상주. 빈소 출입문 작은 창 밖으로 보이는 아들의 뒷모습)

홈리스 사망자를 추모하며

“무연고 사망자 이○○ 님은 지난 2018년 6월 말 용산구의 한 쪽방촌 식당 앞에서 돌아가신 채 발견되었고, 가족을 찾고 무연고자로 확정되어 12월 장례를 치르기까지 약 5~6개월이 걸렸습니다. 이○○ 님의 마지막 주소는 고시원이었습니다.”

“12월 중순 장례를 치른 권○○ 님은 영등포구의 한 쪽방에서 사시다 거주지에 돌아가신 채 발견되었고, 자녀가 있었지만 시신인수를 거부하여 무연고자가 되었습니다.”

“12월 말 노숙인 시설에서 지내시다 돌아가신 한○○ 님은 연고자가 아무도 없어 무연고장례를 치렀습니다.”

12월 한 달 고시원, 쪽방, 시설, 거리 등 제대로 된 주거지가 아닌 곳에서 사시다 돌아가신 아홉 명(12월 무연고 사망자 28명 중 32%)의 홈리스분들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리고 올 한 해 서울시 25개 구청의 공문을 통해 치러진 무연고 사망자(382명) 중 나눔과나눔이 파악한(마지막 주소지 기준) 홈리스분들은 모두 180명으로 전체의 약 47%를 차지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의 절반에 가까운 분들이 제대로 된 주거지가 아닌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다 돌아가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짓날을 즈음하여 홈리스 추모제(2018.12.17.~2018.12.21.)가 열렸습니다. 홈리스 추모제는 주목받지 못한 삶을 살다 그 죽음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나야 하는 홈리스들을 위로하고, 살아 있는 이들의 과제를 확인하기 위한 행사로, 매년 그해 돌아가신 홈리스와 홈리스 무연고 사망자들의 넋을 위로했습니다. ‘서울역’이라는 상징적인 장소에 ‘홈리스 기억의 계단’이 설치되었고,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리멤버(Re’member) 캠페인’이 진행되었습니다.

홈리스 무연고 사망자의 이름이 적힌 액자를 들여다보던 홈리스분들은 아는 이름을 발견하곤 그 사람이 맞는지 물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일주일의 추모 기간 동안 마음 아픈 상황은 여러 번 일어났고, 한 홈리스분은 “액자 속 이름이 내 미래야. 근데 나 잘 살고 싶어. 도와줘.”라며 눈물지었습니다. 아픈 이름들 앞에서 발을 떼지 못하던 그 홈리스분은 따뜻하게 한 번만 안아달라고 하셨고, 짧은 포옹이 끝난 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곤 발을 옮겼습니다.

홈리스에 대한 여러 편견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홈리스에 대해 제대로 아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홈리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지,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사진설명 : 2018년 홈리스 추모제 주간행사로 마련된 ‘홈리스 기억의 계단’ 앞에 서 있는 한 시민)

에필로그
2018년 서울시에서 발생한 382명의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치렀습니다(25개 구청의 공문을 통해 의뢰받은 숫자입니다). 작년 대비 16명이 증가했고, 지난여름 온열사망자의 급증으로 8월 한 달간 무려 40명의 장례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나눔과나눔은 2018년 362명의 무연고 장례와 13명의 기초생활수급자 장례를 치렀습니다.
2018년을 정리해보면 무엇보다도 공영장례의 첫발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2018년 3월 15일 서울시의회는 공영장례조례를 통과시켰고, 서울시는 무연고 사망자 장례의전업체를 선정하는 한편 서울시립승화원에 무연고 사망자 전용빈소를 마련하여 5월 10일 처음으로 장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이는 민간 차원에서 행해왔던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광역단체 최초로 지원한 첫 사례로, 나눔과나눔이 이전 몇 년간 끊임없이 제기했던 공영장례의 필요성에 공공이 응답한 결과라는 점에서 이상적인 사례로 기록될 것입니다.


(사진설명 : 서울시립승화원 무연고 사망자 전용빈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무연고 사망자 장례식. 한 종교단체에서 종교의식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나눔과나눔 부용구 전략사업팀장이 작성한 글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

12월 기초생활수급자
김현숙

12월 무연고사망자
서병두, 유일복, 양의철, 이정수, 이용복, 이정훈, 박재성, 김병호, 임수인, 최성지, 이현진, 유영옥, 어용환, 김영순, 추승호, 권성대, 이병국, 이덕재, 박진규, 강태희, 장한수, 한용수, 김남섭, 장봉삼, 최희석, 유복석, 이종덕, 김영수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스물아홉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