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인권운동가 김복동 할머니 장례

인권운동가 김복동 할머니께서 1.28 오후 10:41 운명하셨습니다. 할머니 빈소는 연대세브란스병원장례식장 특1호실입니다. 장례식은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시민장’으로 하게 되며, 조문은 1월 29일 오전 11시부터 가능합니다. 상세한 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시민장 안내

빈소_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실
발인_2월1일 오전 6시30분
장지_천안망향의동산 (하관식 오후17시)
노제출발_2월1일 오전8시30분(서울광장)
노제(영결식)_2월1일 오전10시30분(일본대사관)

후원계좌 국민은행 069101-04-236302 (예금주: 윤미향)

************ 평화 ․ 인권운동가 김복동 님 약전(약전)

1926년, 경상남도 양산에서 출생
1940년 만 14세에 일본군‘위안부’로 연행.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일본군의 침략경로를 따라 끌려다니며 성노예가 됨.
1945년, 싱가폴에서 일본군 제16사령부 소속 제10육군병원에서 간호사로 위장당하여 일본군인들 간호노동, 버려짐. 미군포로수용소에 수감
1947년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간 지 8년 째 되던 22세에 귀향
1992년 3월, 일본군‘위안부’ 피해 공개, 활동 시작
1992년 8월, 제1차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증언
1993년 6월, 오스트리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 참석, 증언
2000년 일본군성노예전범여성국제법정에 원고로 참여, 실상을 문서로 증언.
2011년 3월, 일본 동북부대지진 피해자 돕기 모금 제안, 1호로 기부
2012년 3월 8일, 정대협과 함께 전시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나비기금 설립
2012년 7월 3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의회로부터 용감한 여성상 수상
2012년 ~ 16년, 유엔인권이사회, 미국, 영국, 독일, 노르웨이, 일본 등 매년 수차례 해외 캠페인을 다니며, 전쟁 없는 세상,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이 생기지 않는 세상을 위해 활동.
2013년 7월 30일, 해외 첫 평화비 미국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참석, 활동
2014년 3월 7일, 베트남 한국군성폭력 피해자에게 사죄와 지원 메세지 영상으로 알림.
2015년 5월, 국경없는기자회, AFP가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 100인의 영웅”에 선정.
2015년 6월 25일, 전쟁/무력분쟁지역 아이들 장학금으로 5천만 원 나비기금에 기부.
2015년 12월 10일,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2015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장 수상.
2017년 7월 6일, 재일 조선 고등학교 학생 2명에게 김복동장학금 전달
2017년 8월, 사후 남은 모든 재산 기부약정
2017년 9월 26일, 서울특별시 명예의 전당에 선정
2017년 11월 23일, 한국 포항지진 피해자돕기 1천만원 후원
2017년 11월 25일, 정의기억재단으로부터 여성인권상 수상
2017년 11월 27일, 여성인권상금 5천만 원을 무력분쟁지역 성폭력 피해자 지원 및 활동을 위해 ‘김복동평화상’ 제정, 정의기억재단에 기부(1회 수상자 : 우간다 내전 성폭력 생존자, 인권운동가 아칸 실비아 선정)
2017년 12월 10일, 국제여성인권단체인 <Women’s Initiatives for Gender Justice>, ‘성평등 유산의벽‘에 김복동 할머니와 정대협 선정.
2018년 6월 9일, 일본 도쿄 사단법인 희망씨앗기금 주최 집회 참석, 발언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에게 김복동장학금 수여
2018년 12월 10일, <김복동의 희망> 명예회장 취임
2018년 11월 22일, 재일조선학교 지원을 위해 5000만원 <김복동의 희망>에 기부
2019년 1월 2일, 바른의인상 수상, 상금 500만원 재일조선학교를 위해 <김복동의 희망>에 후원

김복동 님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성노예로 전쟁터에 끌려간 한국 십대 소녀들 중 한 명이었다. 만으로 14세 소녀의 나이에 전쟁터로 끌려가 8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녀는 살아남았고, 대부분 생존하지 못했거나 익명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피해자들의 상징이 되었다. 김복동 님은 거리와 미디어에서 일본의 진정한 사죄와 제대로 된 배상을 요구해온 인권´평화 활동가이다.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 뿐 아니라 무력분쟁 중에 만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평화 나비가 되어 평화운동을 이끌어 왔다.
김복동 님은 매주 수요일마다 거리로 나가 학생들을 만나고, 시민들을 만나 모두가 함께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자고 호소해 왔다. 일본에서 오는 활동가들을 향해서도 힘내라고 격려하며,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향해서 전쟁이 없고, 다시는 성폭력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세상을 위해 노력해 줄 것을 호소해 왔다. 이러한 평화를 향한 김복동 님의 끝없는 노력은 그동안 국내외에서 했던 외침 속에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나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이지만, 그래서 지금도 매주 수요일이면 일본대사관 앞에 서서 우리에게 명예와 인권을 회복시키라고 싸우기를 계속하고 있지만, 지금 세계 각지에서 우리처럼 전시 성폭력 피해를 입고 있는 여성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여성들을 돕고 싶습니다.”
– 2012년 3월 8일(세계여성의 날), 나비기금 설립 기자회견에서 김복동 할머니의 선언

“나도 일본군에 의해 ‘위안부’ 피해를 입었지만,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에게 한국 국민으로서 사죄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열심히 나비기금을 모아서 지원하겠습니다…. 앞으로 커가는 후손들과 어린애들은 절대로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되니, 각국 나라에서 전쟁이 없는 나라가 되도록 힘을 써주면 좋겠습니다.”
– 2014년 3월 8일, 베트남 전쟁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에게 사죄와 연대메세지

“우리 나라도 서로가 화합하여, 서로가 한발씩 물러나서 남북통일이 되어서 전쟁없는 나라 다시는 우리들과 같은 이런 비극이 안생기도록 전쟁없는 나라가 되어서 여러분들의 후손들은 마음놓고 살아가는 것이 나의 소원입니다.”
– 2016년 10월 5일, 수요시위에서

이렇게 김복동 님의 활동은 국제사회에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 전시 성폭력 피해의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으로 국제여론을 이끌어냈다. 콩고와 우간다 등 세계 무력분쟁지역의 성폭력 생존자들은 김복동 님을 향해 “당신은 우리의 영웅, 우리의 마마, 우리의 희망”이라며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다. 일본군‘위안부’ 생존자들의 운동이 전 세계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을 하나로 결속시키고, 더 강한 목소리로, 더 넓게 확산시켜가고 있는 것이다. 국경을 넘어서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의 초국적인 연대는 이 세상을 평화로 만들고, 전시 성폭력 피해의 재발을 막는 데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