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눔장례지원] 故 김애리님, 고이 잠드소서

없이 사는 사람은 죽는 것도 걱정인 세상이네요.

(사진설명 : 여동생분께서 돌아가신 언니에게 비단으로 된 ‘예단’ 을 올려드리는 모습입니다.)

2019년 3월 14일 출근 준비를 서두르는 아침에 다급한 전화 한통이 걸려 왔습니다. 전화기 너머 떨리고 다소 격앙된 목소리가 들려왔고 새벽에 언니가 돌아가셨다고 운을 떼셨습니다.  2017년 자궁암 진단을 받고 입퇴원을 반복하며 치료를 받아왔다고 하셨고 부모님은 연세가 두 분 모두 팔십이 넘으셨고 어머니는 알츠하이머와 뇌경색 치료를 받고 계시다고 하셨습니다. 오래된 병간호로 인해 갚아야 할 빚이 늘어나서 장례는 치를 엄두도 못내고 계시는 상황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눔과나눔에서 장례지원을 해드리기로 결정이 난 후 여동생분께 전화를 드리니 복받쳐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음이 터지셨습니다.  “미안해요. 도움을 주신다고 하셔서 너무 고마운 마음에 눈물이 나네요.” 그 순간 뭐라 위로를 해 드려야 할지 말문이 막혔습니다. 빨리 고인분과 여동생분을 만나서 빈소를 차리고 위로를 해드리고 싶다는 마음에 발걸음이 바빠졌습니다.

“1월에는 걸어 다녔었는데 사람이 이렇게 칼로 자르듯이 갑자기 죽을 수가 있는 건가요? 언니를 보낼 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장례식장에서 만난 여동생분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시는 상황이었습니다. 함께 식장으로 오신 어머니께서는 자식을 앞서 보내는 부모의 심정이 그러하듯 황망한 마음에 넋을 잃으신 채 “아이고.. 아이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언니는 자존심이 강하고 똑 부러진 사람이었어요. 의사가 되고 싶어 했는데…”

자궁암이 발병하자 대학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하며 치료를 받아왔다고 하셨습니다. 병세가 악화돼서 걷는 것조차도 힘들어졌을 때는 기저귀를 갈려고 잠시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도 너무나 고통스러워했다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통증이 나날이 심해져서 다급하게 찾은 모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폐에 물을 빼는 호스를 연결해주고 다른 암환자를 받아야 하니 속히 퇴원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몸이 너무 아파서 그런데 오늘 저녁만이라도 입원실에서 신세를 지면 안 되겠냐고 애원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빨리 침대를 비워달라는 냉정한 답변뿐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언니가 그렇게 아픈데도 의사가 침대를 비워달라고 하니 퇴원하겠다고 얘길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는 내내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그렇게 옮긴 요양병원에서 이틀 동안 진통제를 맞으며 버티시다가 돌아가실 때는 진통제를 맞고 스르르 숨이 넘어가셨다고 하셨습니다.

요양병원과 연계된 장례식장으로 언니의 시신을 모시고 상담을 받아보니 이런저런 명목으로 늘어나는 금액에 ‘돈 없는 사람은 죽으라는 거구나.’ ‘없이 사는 사람은 죽는 것도 걱정이구나.’싶은 마음에 또다시 절망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장례를 치르기 전에는 구청에 가족의 시신을 위임하는 사람들을 보며 가족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었는데 내가 그 상황에 닥치니 그 심정이 이해가 가더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언니가 이 사진 밉게 나왔다고 싫어했는데 사진이 이거밖에 없더라고요.”

영정사진을 만드실 때도 언니의 유골함을 고르실 때도 ” 더 예쁜 걸로 해주고 싶었는데.. 미안해. ” 하고 아쉬워하셨습니다. 언니의 유골을 서울시립납골당에 모시고 하루가 지난 17일 감사의 마음을 담은 문자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김애리 님께서는 가족분들의 배웅을 받으시며 3월 16일 화장되어 서울시립승화원에 영면하셨습니다. 고이 잠드소서.

신화병원 장례식장, 적십자 장의차량 정용안 기사님의 도움으로 김애리 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하였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이 글은 나눔과나눔 임정 장례 상담팀장이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