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장례지원] 고 이남선 님, 고이 잠드소서.

“착하고 똑똑한 오빤데, 결혼도 못 하고…어머니가 사기당해서 전 재산을 탕진하는 바람에 그걸 해결하려고 재판을 하다가 정신이 그만….”

80이 넘은 오빠를 보내는 여동생의 마음은 안타까움으로 가득했습니다. 빈소 앞에서 오빠의 영정사진을 보면서 한참을 소리 내 흐느껴 우셨습니다.

 
고인은 1940년생으로 주민등록은 되어 있지만, 사실 위로 4명의 아이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부모님은 출생신고를 늦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니 실제 나이는 80이 넘으신 거죠.  당시 집안은 부유했고, 다섯 번째로 태어난 귀한 아들은 대학까지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탕진하면서 이로 인해 아들이 10번이 넘는 재판을 하던 중 정신장애가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결혼도 하지 못하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정신장애인으로 살다 최근에는 치매까지 겹쳐서 요양병원에 7년을 생활하시다 돌아가신 겁니다.

유일한 형제인 여동생은 오빠의 장례가 항상 걱정이었다고 합니다. 내가 오빠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 오빠를 먼저 보내야 내 마음이 편할텐데라고 하면서 말이죠. 이렇게 걱정하던 중 나눔과나눔에 장례지원을 신청하면서 한시름 놓을 수 있었습니다.  본인도 차상위계층에다가 장애까지 있고, 딸만 둘인데, 모두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다 보니 장례도 여의치 않았다고 합니다.
 

“불쌍한 우리 오빠, 좋은 곳으로 가요”

입관을 하면서도 여동생은 오빠의 80 평생 삶의 회한이 몰려왔나 봅니다.  소리내 울면서 오빠의 시신을 한참을 부여잡았습니다. 치매가 온 이후에도 다른 사람은 알아보지 못해도 여동생과 조카딸 한 명만 알아봤다고 합니다. 예뻐했던 조카딸도 하늘나라 갈 때 쓰라고 예단을 정성스럽게 올려드렸습니다.

거의 평생을 정신장애인으로 살았던 고인, 발인 전에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올려드리고 축문(한글로 쉽게 번역된 축문)으로 인사를 올렸습니다.

“2019년 양력 6월  2일 이남선 님 영전에 삼가 고합니다.

아무리 슬퍼도 헤어져야 하는 것이 이 세상의 이치인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버거웠던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영원히 가시는 길이 아쉬워 이렇게 술 한 잔과 식사를 올려드렸습니다. 잠시 후면 장지로 떠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으나 고이 길 떠나소서.”

이남선 님은 화장 후 위패와 사진은 직계가족이 없어 유택동산에서 불로 태워 소지하지고, 유골은 자연장으로 모셨습니다.

이남선 님 마지막 이세상 소풍 떠나는 날은 눈이부시게 화창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정신장애가 발생하기 전의 젊은 시절의 꿈 많았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신 것은 아닐까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고이 잠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