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눔장례지원] 故 금경도님, 고이 잠드소서

부인은 베트남인이고 딸은 4살입니다. 한국어가 안되고 장례를 치를 수 있는 형편도 안됩니다. 현재 암 말기이며 1달 선고를 받은 상태입니다.

3월의 어느 날 나눔과나눔으로 자신을 후배라고 밝히시면서 선배의 장례를 의뢰하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형수님은 베트남인이고 딸은 4살이라고 하셨습니다. 베트남에서 결혼을 하시고 십 년 넘게 사시다가 대장암이 발병한 사실을 알게 되어 치료차 한국으로 들어왔다고 하셨습니다. 진찰을 받아보니 이미 대장암 말기라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3월에 장례 신청을 미리 하시고 한동안 연락이 없어서 조금은 괜찮아지셨나 보다 생각을 하면서도 항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6월 9일 일요일 새벽 나눔과나눔으로 금경도 님께서 사망하셨다는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어느 병원에 계시는지 묻는 제 질문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슬픔에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습니다. 협약된 신화병원 장례식장으로 연락을 드려 빈소가 있는지 여쭤보고 최초 운구를 부탁드리고 서둘러 장례식장으로 향했습니다.

금경도 님의 병원 치료비용은 학교 선, 후배분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전액 지불을 하시고 한국에 거처가 마땅치 않은 가족들을 위해 금경도 님과 오누이처럼 친하게 지내온 선배가 도움을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한국에서 치료 중에 기초생활수급권자로 등록도 하고 암 치료를 꾸준히 받으셨지만 안타깝게도 암세포는 한 가정의 가장을 빼앗아 가고 말았습니다. 빈소를 차리고 선배분은 금경도 님의 휴대폰 속 연락처에 등록된 전화번호로 부고 문자를 보내시니라 여념이 없으셨습니다. 연락처 중에 금경도 님과 같은 성씨의 번호가 있어서 어렵게 전화를 걸어 혹시 금경도 님하고 어떤 관계인지 여쭤보니 십 년이란 시간이 넘게 연락을 못하고 지낸 먼 친척분이라면서 무슨 일인지 물으셨고 전화로 가족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금경도님의 입관 예식을 마치고 조문이 시작되면서 이제는 정말 돌아가신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순간이 왔습니다. 전화통화로 사망 소식을 알게 되신 친척분께서 빈소로 조문을 오셨고 갑작스레 알게 된 가족의 사망 소식에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셨습니다.

금경도 님의 4살 된 딸아이 만이 어제부터 보이지 않는 아빠의 존재를 천진난만하게 물어볼 뿐.. 망연자실한 엄마는 “아빠 여행 가셨어.”라고 서툰 한국어로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금경도 님의 휴대폰 메인화면과 갤러리에는 예쁘디 예쁜 따님과 아내분의 사진으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이렇게도 예쁜 가족을 두고 어떻게 먼길을 떠나셨을까 발길이 얼마나 안 떨어지셨을까 하는 마음에 더욱더 안타까웠습니다.

인천가족공원에 도착해서 화장장 접수를 마치고 마지막 화장로 운구를 위해 지인분들께서 수고해 주셨습니다. 모두 착잡하신 마음에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가족, 지인의 죽음을 맞닥뜨릴 때 느끼는 깊은 절망감과 슬픔의 감정을 고작 몇 개의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금경도 님을 화장로에 모시고 금경도 님과 어릴 적부터 한 동네에서 지내 오셨다는 목사님께서 금경도 님과 가족분들을 위해 예배를 지내주셨습니다. 그 모습을 물끄머리 바라보는 금경도 님의 4살 된 딸아이의 모습이 애잔하게 다가왔습니다. 아이는 아빠의 장례식을 어렴풋이 기억하게 될 테지요. 그때 사람들이 모두 검은 옷을 입고 많이 울고 있었고 아빠의 모습은 그 뒤로 볼 수 없었다고 말입니다.

장례를 마치고 그날 저녁 고인의 후배분께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나눔과나눔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 주셨습니다. 저희 나눔과나눔도 금경도 님과 인연이 닿아 장례 지원을 해드릴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금경도 님을 기억하는 가족과 친구 지인분들 모두 건강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이 잠드소서.

신화병원 장례식장과 적십자 장의차량 정용안 기사님의 도움으로 장례를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늘 도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나눔과나눔 임정 장례지도사가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