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장례지원] 고 염알렉산더님 고이 잠드소서

재외교포(고려인) 삼세 카자흐스탄 국적의 고인은 50의 나이에 조국인 한국에 어떤 꿈을 꾸면서 왔을까? 

한편 그의 조부모는 어떤 꿈을 꾸며 카자흐스탄까지 이주해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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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한분이 노숙인 관련 단체인 ‘한마음공동체’에 노숙자 한분의 장례를 부탁했습니다. 그 노숙인은 재외교포(고려인) 삼세 카자흐스탄 국적의 이주노동자였습니다. 이름은 염알렉산더. 지난 4월 22일 밤 8시 경 서울역 2번 출구 앞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어 보름 이상을 안치실에서 장례도 못치르고 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었습니다. 이주노동자는 별다른 장례지원이 없습니다. 그러하다보니 안치료, 고인용품, 화장비용까지 너무 많은 비용이 소요될 수 밖에 없고, 또한 대사관에서 공증받아야 하는 업무처리 등 여러 가지 복잡한 사항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장례지원은 ‘한마음공동체’, ‘나눔과나눔’ 그리고 ‘홈리스행동’이 함께 장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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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고인의 따님이 카자흐스탄에서 5월7일 아버지의 유골을 가져가기 위해 입국 했습니다. 하지만 따님과의 주요한 의사소통은 카자흐스탄어 였습니다. 그래서 카자흐스탄어를 할 수 있는 분을 소수문 해서 통역하며 장례지원을 하다보니 일반적인 장례지원보다 몇배는 더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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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염알렉산더님은 1962년 생으로 54년의 삶을 서울역 2번 출구앞에서 외롭고 버겁게 마감하셨습니다.그리고 제대로된 장례식도 못치른 채 20여일을 차가운 안치실에 계셔야 했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따님이 오고, 시민단체의 장례지원을 받고나서야 저승으로 떠나실 수 있었습니다. 고인이 가지고 계신던 서류를 보다보니 50의 나이에 한국으로 오셨습니다. 고인은 어쩌면 카자흐스탄에서 안정된 중년의 50대 나이를 보내야할 그 때 카자흐스탄을 떠나왔을까? 아마도 그의 조부모가 조선땅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할 때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고인은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던 선생님이셨다고 하며 따님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말해주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학교선생님이 안정된 직장이지만 카자흐스탄에서는 아니였나 봅니다. 역사 선생님이셨던 고인은 한국에 2010년 중순에 재외동포 자격으로 한국에 들어와 일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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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하셨는지 어디에서 사셨는지 그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돌아가시기 2주전 서울역에 있는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 방문하셨다고 합니다. 고인은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상태여서 원활한 상담은 이뤄지지 못하고 2~3차례 방문상담에서는 갈곳은 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등에 대한 간단한 상담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시기 3일전 쯤 추가적 지원을 위해 ‘지구촌사랑나눔’을 소개 받으셨던 것 같고, 혼자갈 수 없다고 하니 차량지원이 필요하다는 메모와 ‘지구촌사랑나눔’약도를 출력해서 드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끝내 그곳은 가지 못하시고 4월22일 밤 서울역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 날도 거의 식사를 하지 못한채 배고픔을 막걸리로 달레고 있었던지 고인의 옆에서 막거리 2병이 놓여 있었습니다. 지구촌 사랑나눔에 가서 원활한 언어 소통으로 진료나 다른 지원을 받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 봅니다. 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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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유해를 모시기 위해 온 따님은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했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슬품과 낮선 한국이라는 곳도 그녀에게는 참으로 버거운 곳이었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 오면 바로 아버지를 모시고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체류기간을 너무 짧게 잡아서 비행기 표도 연장을 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고인을 모시고 인천공항까지 함께 배웅했습니다. 비행기 표를 발권하고 출국수속장으로 떠나는 따님에게 마지막으로 알려주었던 한국말은 “아버지 유해”였습니다. 누군가 뭐냐고 물어보면 “아버지 유해”라고 말하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몇 단에 밖에 모르는 재외교포 4세인 딸에게 “아버지 유해”라는 말을 알려주어하는 상황이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4 - 복사본

고인이 발급받았던 한국체류 비자는 다음달인 6월1일이 만기일입니다. 꿈을 갖고 한국에 오셨을텐데 비자 만기일 한달여 남긴 시점에서 한줌의 유해로 딸의 품에 안겨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가시는 고인의 뒷모습을 한참을 바라보며 마지막 눈을 감으며 마저하지 못한 한마디는 무엇이었을까? 마지막으로 바랬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여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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