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장례지원] 남은 이들을 위한 위로

[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10월 장례이야기
남은 이들을 위한 위로


(사진 : 2019년 무연고 사망자 합동 위령제)

무연고 사망자 합동 위령제 열려

2019년 10월 16일 오전 11시 경기도 파주시 용미리에 위치한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 집’에서 ‘무연고 사망자 합동 위령제’가 열렸습니다. UN이 정한 ‘세계 빈곤퇴치의 날’인 10월 17일 맞아 하루 전에 열린 행사는 지난 2017년 처음 진행되었고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이했습니다. 3,000명이 넘는 무연고 사망자가 잠들어 있는 ‘무연고 추모의 집’은 평상시에는 업무담당자 외에는 출입이 통제되는 곳으로 일 년 중 딱 한 번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합동위령제’가 열리는 날에만 시민과 무연고 사망자 연고자 등에게 개방되기 시작했습니다. (관련글 http://goodnanum.or.kr/?p=5592)


(사진 : 무연고 사망자 합동 위령제에 참석한 지인이 무연고 추모의 집 안에 봉안된 유골함 앞에서 추모하고 있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추모의 집에 봉안된 무연고 사망자의 가족과 지인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5월에 무연고 장례를 치른 ㄱ님의 지인은 추모의 집에 봉안된 유골함을 찾아 두 손으로 어루만지며 “원장님, 잘 계셨어요?”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고인은 생전에 영어학원을 운영하며 해외에 보낸 가족들을 위해 뒷바라지를 하며 살다 IMF 외환위기로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가족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졌습니다. 한국에 홀로 살다 지난 4월 대중목욕탕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고, 연고자의 시신인수 거부로 안타깝게 무연고자가 되었습니다.
당시(5월) 장례에 참석해 오열했던 지인은 이후 지속적으로 서울시 공영장례 상담지원 기관인 나눔과나눔으로 위령제에 참석할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을 했고, 수개월을 기다려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지인은 싸늘하게 식어있는 고인의 유골함 위에 고인과의 추억을 남겨두고 또다시 기나긴 이별의 시간으로 돌아갔습니다.

지난 9월 장례를 치른 김○○의 남편분은 사실혼 관계로 서류상의 가족이 아니었기에 아내를 무연고 사망자로 보낸 아픔을 이날 행사에서 또다시 상기시켜 주위를 아프게 했습니다. 남편은 행사가 시작되기 한참 전에 추모의 집에 도착했고, 아내 곁에서 “왜 제 아내가 무연고 사망자냐?”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특히 이날 남편은 자신을 증명하겠다며 많은 서류들을 가져와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소송을 통해서라도 꼭 아내의 유골을 인수하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위령제에 참여자들은 국화꽃을 들고 열 평 남짓한 비좁은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 집 안에 들어가 묵념을 했고, 헌화와 고인예식 후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소속 스님들의 극락왕생 발원 염불을 통해 제단에 술잔을 올리고 외롭게 세상을 떠난 무연고 사망자들을 추모했습니다.


(사진 : 무연고 추모의 집에 봉안된 유골함 앞에서 추모중인 참석자)

급격히 늘어난 무연고 사망자
10월 한 달간 54명의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치렀습니다. 나눔과나눔이 2015년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지원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숫자였습니다. 특히 9월 25일부터 10월 13일까지는 19일 연속으로 총 21회에 걸쳐 40명의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치렀습니다. 10월 한 달 중 26일이 장례가 있었고, 하루에도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장례를 치른 경우도 세 차례나 있었습니다. 장례가 없었던 날은 단 5일이었고, 이유는 의전업체와 장례식장과의 일정조정 문제로 장례일을 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가 늘어난 이유로는 기초생활수급자 중 무연고 사망자의 증가를 들 수 있습니다. 10월 무연고 사망자 54명 중 31명(57%)이 기초생활수급자였습니다. 2018년 5월 처음 시행된 서울시 공영장례는 일반 무연고 사망자 외 기초생활수급자 무연고 사망자의 구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019년 서울시가 기초생활수급자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도 서울시 공영장례의 영역에 포함시키게 되었고, 초창기에는 지자체에서 이를 담당하는 부서를 정하지 못하여 장례 대상자의 숫자가 적었지만 3월 초 활동을 시작한 서울시 공영장례 상담지원 기관인 나눔과나눔에 장례지원에 대한 상담이 늘어나면서 하반기에는 기초생활수급자를 공영장례로 의뢰하는 수가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사진 : 아내를 무연고 사망자로 보낸 사실혼 관계의 남편이 빈소에서 오열하고 있습니다.)

39년을 함께 살았지만……
10월 초 무연고 사망자 ㄴ님의 장례에 사실혼 관계의 남편이 참석했습니다. 고운 보자기에 싸 온 영정사진을 들고 온 남편분은 고관절이 안 좋아 거동이 불편해 보였습니다. 서울시립승화원 2층 무연고 사망자 전용 빈소에서 진행된 고인예식 내내 남편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빈소 밖 의자에서 힘든 몸을 잠시 쉬시도록 권했지만 남편은 “죄인이 죽어도 여기서 죽어야지요.”라며 빈소 안에서 연신 자세를 바꿔 앉았습니다.
부부는 39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전부인과의 사이에 5남매가 있었던 남편은 아내와 사별하고 지인의 소개로 ㄴ님을 만났습니다. 가진 것도 별로 없었지만 진실한 마음이 서로를 보듬어 살게 했습니다. 오래 살다보니 아픈 데가 많아졌고, 서로 아파하는 모습을 보이며 살다 아내를 먼저 보내게 되었습니다. 마지막까지 간호를 했던 남편은 자녀들이 반대하는 터라 혼인신고를 하지 못한 게 한이 되었습니다. 법적으로 가족이 아니었기에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지도 못했고, 장례도 치를 수 없었습니다. 아내를 무연고자로 떠나보내는 남편은 죄인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진 : 친구의 무연고 장례에서 유골함을 받고 있는 지인)

친구를 보내는 마음
무연고 사망자 ㄷ님은 지난 9월 말 거주하던 고시원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연고자가 있었지만 시신인수를 포기하여 무연고자가 되었습니다. 한 달이 지나 10월 말이 되어서야 무연고 장례를 치르게 되었고, 고인을 화장로로 모신 후 무연고 사망자 전용빈소에서 고인예식이 진행되었습니다. 빈소밖에 서있던 한 남성분이 추모를 해도 되는지 문의해 왔습니다. 무연고 장례를 치르다보면 이전에도 간혹 서울시립승화원에 가족과 지인들의 장례를 위해 왔다가 빈소 앞 안내문을 보고 추모를 하는 분들이 계셔서 이 분 역시 그러한 마음이신가 보아 안내를 드렸습니다. 남성분은 술을 한 잔 올리고, 고인에 대한 예를 갖춘 후 빈소를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남성분은 화장이 끝나고 수골실까지 동행을 하셨습니다. 그제서야 남성분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사실 남성분은 ㄷ님의 중학교 시절 친구였습니다. 50년을 막역하게 지냈고, 고시원에서 ㄷ님이 사망한 당시 발견한 사람도 친구였습니다. ㄷ님은 은행원으로 근무하다 결혼을 했고, 이혼한 지 오래되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홀로 암투병을 하면서 살았는데, 친구분은 호스피스병원에 ㄷ님을 보내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친구의 제안을 거부했던 ㄷ님은 고시원에서 홀로 삶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분은 ㄷ님의 장례를 위해 여러 가지를 알아보던 중 나눔과나눔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터넷 검색창에 ‘무연고’라고 입력 후 나눔과나눔 홈페이지에 들어오게 되었고, 장례 사연들을 읽게 되었고, 무연고 사망자가 된 친구를 위해 관련된 정보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친구분은 무연고 사망자의 사망 이후 장례가 주로 한 달 가량의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이후 수시로 나눔과나눔 홈페이지를 확인한 결과 친구의 장례일정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장례 과정을 함께한 친구분은 참석하지 못한 다른 친구들과 사진을 나누고 싶다며 장례 때 찍은 사진들을 부탁했습니다.


(사진 : 서울시 공영장례에 참석한 쪽방촌 지인들.)

장례 동거인·친구가 무연고 사망자 장례 치를 수 있게 되어
지난 11월 4일 아침부터 무연고자 관련 인터넷 뉴스가 검색이 되었습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에서 무연고 사망자의 연고자 기준, 장례처리, 행정절차 등을 명확히 하는 등 무연고 사망자 사후관리 체계를 정비할 계획임을 발표한 것입니다.(관련기사 https://www.yna.co.kr/view/AKR20191101111200017?section=search)
이는 나눔과나눔이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지원하면서 현장의 사례들을 통해 개선해야 할 사항으로 “가족 대신 장례, 사후 자기결정권”에 관한 정책제안을 한 결과로 ‘무연고 사망자의 존엄한 삶의 마무리’가 가능해진 참으로 빛나는 성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가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기존의 장사법 상의 연고자 제한으로 수많은 무연고 사망자가 양산되는 현실을 제도적으로 개선해야할 필요를 느낀 나눔과나눔은 그동안 법무법인 화우공익재단과 함께 ‘가족 대신 장례’의 사례를 일본연수를 통해 확인했고, 지난 9월 19일 ‘사후자기결정권 국제심포지엄’ 개최를 비롯해 JTBC, KBS, 연합뉴스 등 다양한 언론매체를 통해 현장의 실태와 당사자의 목소리를 알리는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이번 보건복지부의 방침으로 결실을 맺게 된 데에 나눔과나눔을 비롯한 관련 지지자들은 환영의 뜻을 밝혔습니다. (관련기사 http://goodnanum.or.kr/?p=5644)
정부의 발표대로 이 계획이 관철될 경우 그동안 사실혼 관계의 부부, 지인, 종교단체 등 장례를 약속하고도 법적인 연고자가 아니어서 장례를 치를 수 없었던 이들의 안타까운 사례들이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1인 가구의 증가 등 시대적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던 무연고 사망자의 증가가 한풀 꺾이고, 모든 이의 ‘존엄한 삶의 마무리’가 가능해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는 데에 사회적으로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은 나눔과나눔 활동을 지지하는 부용구 활동가가 작성한 글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이름들

10월 무연고 기초생활수급자
이영애, 신금자, 복진화, 김석기, 권태동, 임성엽, 김무곤, 박춘복, 조일양, 김용구, 유병혁, 정정환, 유영수, 신경철, 최석철, 임준철, 이충조, 김천수, 차동식, 김영진, 이숙종, 정봉월, 이봉자, 김행곤, 한창희, 원형남, 방경천, 함상곤, 이강규, 김승택, 황대수

10월 무연고 사망자
김춘식, 안복기, 선영택, 박이훈, 김정길, 진성수, 이승용, 박성민, 김석호, 유재희, 김용성, 김전, 김석근, 홍종규, 노형래, 최광덕, 이우선, 백경석, 최현덕, 이옥규, 이수열, 남경우, 이영봉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쉰네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
(문구출처 : 마리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