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남 칼럼] 기억하는 한 살아있다

2019얼마 전 한 죽음학 강좌에서 한 교수님께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교통사고가 발생한 현장에 도착한 119 구급대원들이 사고를 당한 이들을 서둘러 구급차로 이송합니다. 이동하는 구급차 내에서도 사고를 당한 이들을 살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송되는 도중 숨을 거두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환자가 이송되는 도중 구급대원에게 자신이 살아날 수 있을지를 물어보았습니다. 하지만 환자의 상처가 너무나 위중하여, 의학적으로 판단했을 때 소생이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고, 구급대원은 안타깝지만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전하며 고개를 떨구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환자는 무언가를 체념하듯 한 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마지막으로 던졌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저를 기억할까요?”

일본의 저명한 생사학자인 알폰스 데켄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로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말했습니다. 통증에 대한 두려움, 외롭게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좋지 못한 무서운 경험, 가족과 사회에 짐이 된다는 두려움,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삶에 대한 두려움이 클수록 죽음을 두려워함, 미완성의 삶을 살아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죽음 후의 심판과 죄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죽어가는 이들의 두려움 중 하나는 자신이 잊혀진다는 두려움입니다. 즉 자신의 자아가 소멸 되며, 죽음 이후 사람들에게 자신이 잊혀질 수 있다는 생각들이 결국 우리의 삶의 마지막 두려움이 됩니다. 그래서 죽어가는 이들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기억되기를 희망합니다. 이는 비단 일반인들뿐 아니라 역사 속의 지도자들과 위인들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그래서 세월이 흘러도 사람들이 자신을 오래도록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거대한 건축물이나 동상, 저서, 예술 작품들을 남기곤 하였습니다.

조선왕조 500여년의 긴 시간 동안 우리나라의 통치이념으로 자리 잡았던 유교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느 날 공자의 제자인 계로가 스승님께 다음과 같이 여쭙습니다. “스승님, 죽고 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자 스승인 공자는 “내가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는 유교의 사상이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교는 죽음 이후의 삶보다 현재의 삶을 중요시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종교와 사상들처럼 천국과 지옥과 같은 사후세계에 대한 언급이 따로 없습니다. 다만 사람이 죽으면 혼과 백과 기가 되어 모두 다 흩어져 버린다고 하였지요. 그런데 죽고 나면 아무것도 없다고 하니 그래도 좀 두렵고 허무하고 쓸쓸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후손들이 자신을 기억해주는 만큼 자신은 후손들과 함께 살 것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후손들이 자신을 기억해주는 것이 중요해졌고, 이에 따라 제사의 절차들이 점차 발달하고 세분화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호스피스에서 임종을 앞둔 이들을 위로할 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잊혀진다는 두려움으로 심리적 고통을 겪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환자들을 위로할 때는 비록 당신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남아있는 우리가 오래도록 기억속에서, 신앙안에서 당신을 잊지 않겠다고 확신을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도 곁에서 함께 할 것이며, 설령 돌아가신다 할지라도 오래도록 당신을 기억할 것이라고 그들에게 전합니다. 그러면 환자들은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아프리카의 우화 중에 사사와 자마니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프리카 한 부족에게는 사사(sasa)와 자마니(zamani)라는 시간이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한 사람이라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사의 시간에 머무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아무도 그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 때 비로소 영원한 침묵의 시간 자마니로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마니의 시간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죽음을 맞이한다고 합니다. 이는 곧 기억하는 한 죽지 않는 것이며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은 순국 선열, 비극적인 사고로 차마 다 피워내지 못하고 삶을 거두어야 했던 세월호 아이들, 대구 지하철 사고 및 국가적 재난으로 유명을 달리한 이들을 우리는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억하는 한 그들은 그래도 살아있으며, 그들을 기억해야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해가 갈수록 고독사, 무연고 사망자의 안타까운 죽음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단순히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 아픈 이들 뿐 아니라 혼자 사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홀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애석하게 고독사, 무연사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은 살아서도 기억되지 못했습니다.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가족들, 사랑하는 사람들과 연이 끊긴 채 홀로 길거리에서, 쪽방촌에서, 생의 언저리에서 그렇게 잊혀져 갔습니다. 그렇게 잊혀진 이들은 그리고 다시 죽어서조차 반송되었습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인하여 연고자들은 시신을 포기하기도 하고, 또 비극적인 가정사로 인하여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다고 하였으며, 또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시신조차 거절이 되었습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살아있었어도 죽었으며, 죽어서조차 다시금 죽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흐릿해진 모두의 기억 속에서, 나눔과 나눔은 마지막 순간만이라도 망자를 기억하기 위해 그들과 함께 합니다. 어떻게든 연락을 취해 망자의 마지막을 배웅하려는 이들과 망자에 대한 작은 기억이라도 있는 분들을 모시고, 술 한잔 올려놓고 그들의 이야기를 나누며 기억해보자 합니다. Re’member 라는 슬로건처럼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무수히 스러져가는 고독한 죽음들을 다시 기억해내어 그들 역시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이었음을 되새기고자 합니다. 누군가는 이미 죽어간, 그리고 가족조차 거부한 시체를 처리하는 그런 일에 왜 공을 들이냐 반문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비록 죽었어도 마지막까지 살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무연고 사망자의 영결식을 치루고 난 다음, 위패에서 꺼내어 이름 석 자가 적혀진 종이를 불로 태울 때는 마음이 참 서글픕니다. 정말 이 세상에서 잊혀진 것 같아서, 처음부터 이 세상에 없던 사람인 것 같아서, 어 그렇게 지워져버리는 것만 같아서, 어떤 기억도 남아있지 않을 것 같아서 마음 한 켠이 저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을 기억하고 잊지 않겠다는 다짐들이 있는 한, 당신은 죽었어도 죽지 않았다는 위로를 건네줍니다.

기억하는 한 살아있습니다.

 

이글은 (사)나눔과나눔 이사로 활동 중이신 ‘행복한 죽음 웰다잉 연구소’ 강원남 소장이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