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이슈&탐사] 빈곤의 종착지 무연고 죽음 – 370명의 기록

최근 몇 년 사이 무연고사망자에 대해 많은 보도가 있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는 무연고사망자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대부분의 보도는 무연고사망자 증가와 같은 통계자료와 나눔과나눔이 만났던 무연고사망자의 단편적 삶의 조각을 기사화 하는 것이 현실이다.

2019년 12월 국민일보에서 취재한 무연고사망자 탐사보도는 기존 보도와 달리 무려 다섯 명의 기자가 40일 동안 나눔과나눔 사무실, 서울시립승화원, 그리고 무연고사망자분들이 거주하셨던 곳을 방문하면서 긴 호흡으로 무연고사망자의 삶을 추적했다. 그리고 2019년 12월 16일부터 26일까지 14면의 지면에 “빈곤의 종착지 무연고 죽음 –370명의 기록”을 6회에 걸쳐 연재했다.

국민일보는 2019년 1월부터 11월까지의 서울시 무연고사망자 370명의 죽음을 전수조사했다. 연이 사라진 그들의 생애사를 추적하기 위해 지인과 유가족 208명을 접촉했고, 나눔과나눔과 공동으로 통계작업도 진행했다.  각 기사마다 기자들이 현장에서 직접 만나 기록한 무연고사망자의 생애사를 통해 무연고사망자의 삶과 죽음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영상과 함께 볼 수 있어 더 좋았다.

첫 번째 이야기: 가난해서 죽었고, 가난해서 버렸다.

무연고 사망은 빈곤의 늪으로 떨어진 하류 인생의 종착 같았다. 무연고 사망은 독거사(獨居死)나 고독사(孤獨死) 형태가 많아 외로움도 깊지만, 사망자 삶의 궤적에는 그보다 지독한 가난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의 생애는 구조적 빈곤, 고착화된 빈곤의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가난은 망자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가 떨어져나온 가족들도 가난했다. 가난해서 서로 돌보지 못했고, 연락을 끊었다는 유족의 이야기는 시신 수거할 돈조차 없다는 고백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결국 모두 가난하다는 참혹한 사실이 무연이라는 비참한 죽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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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야기: 무연사의 마지막을 추적하다

무연고 사망자 사망진단서, 시체검안서 등 기록에는 영양 결핍, 열악한 위생으로 비롯된 여러 병명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자문에 응한 의학자들은 “충분히 치료가 가능해 고칠 수 있었던 병이 악화돼 죽은 사례가 많이 보인다”고 했다. 무연고 사망자의 병사(病死) 내역은 온몸에 기록된 약자의 흔적이었던 셈이다.

한창훈(가명·58)씨는 죽은 지 7개월여 만에 발견됐다. 김형식(가명·56)씨는 주택가 1층 주차장에서 죽은 지 4~5일 후 발견됐다. 겨울 차림으로 한여름에 발견된 시신, 사람들이 오가는 골목길에 방치돼 훼손된 시신은 가족과 사회가 외면한 죽음의 극단적 결과물이다. 이른바 ‘도시의 미라’가 된 무연고 사망자들에겐 어떤 비통한 사연이 있는지 생전 마지막 장면들을 추적해봤다.

※ 2019년 12월 17일 기사읽기(제목을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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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이야기: 빈곤에 떠밀린 무연 인생(上) 사고

무연(無緣) 사망자 인생에는 사회적인 사건의 파고에 휩쓸려 추락한 가장의 모습이 자주 나타났다. IMF 외환위기 등 자신이 개입할 수 없는 국가적 위기로 어려움을 겪다가 가족에게서 떨어져 나온 경우다. 낭떠러지 아래로 밀린 사람들은 다시 절벽을 오르지 못하고 혼자 숨을 거뒀다. 무연고 죽음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의 삶은 ‘누구나, 어느 날 갑자기 무연고자가 될 수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사고와 장애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다. ‘밑바닥 노동’을 하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이런 불행에 노출될 우려가 크다. 몸뚱이 하나로 버틴 이들에게는 다시 일어서기 쉽지 않은 일이다. 근로현장에서의 사고가 노동자들을 빈곤으로 이끌고, 죽는 순간까지 가난과 고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로는 무연고 사망자의 인생에 흔했다.

무연고 사망자의 자취를 더듬는 과정에서 국가유공자와 관련된 흔적도 발견됐다. 국가를 위해 공헌한 사람 혹은 그 유족도 외롭고 가난하게 삶을 마감하고 있다는 뜻이다.

※ 2019년 12월 18일 기사읽기(제목을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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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이야기: 빈곤에 떠밀린 무연 인생(下) 해체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한 아내, 가족과의 불화로 가출한 청년이 수십 년 거리를 배회하며 살다 혼자 생을 마감했다. 날 때부터 부모와의 연이 끊긴 고아가 평생 새 연(緣)을 만들지 못한 채 죽기도 했다. 자신의 잘못으로 가족에게서 버림받은 뒤 회한 속에 갇혀 살다 죽은 인생도 있었다. 가정이 해체돼 무연(無緣)으로 추락하는 경로는 이처럼 다양하다. 그러나 무연의 경로에는 공통적으로 빈곤의 냄새가 짙게 묻어났다.

※ 2019년 12월 23일 기사읽기(제목을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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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이야기: 무연고 사망은 오늘도 계속된다

무연고 사망자 차씨의 인생을 역추적하는 과정에서 마주한 건 차씨와 닮은꼴 인생들이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였던 그와 같은 처지의 이웃들은 그가 죽었던 곳에서 생전 모습 그대로를 반복하고 있었다. 무연고 사망으로 생긴 빈자리는 금방 또 다른 무연고자들로 채워졌다. 빈곤은 줄지 않는 늪과 같았다.

※ 2019년 12월 25일 기사읽기(제목을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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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이야기: 끝 무연고 장례 40일간의 기록

2019년 11월 6일부터 12월 15일까지 40일간 62명의 장례가 있었다. ‘탈북모자 아사 사건’(11월 28일) ‘성북 네 모녀 사건’(12월 10일) 당사자들도 이 기간 장례가 치러졌다. 이들처럼 세상에 알려져 사람들의 관심 속에 장례가 치러진 건 이례적이다. 나머지 56명의 망자들은 언제 태어났고, 어떻게 떠났는지 관심 받지 못한 채 화장됐다. 마치 애초에 없었던 사람들처럼 여겨졌다. 화장이 끝나고 건네받은 목재 유골함에는 고인의 마지막 온기가 담겼다.

날 때부터 생긴 연고나 수십 년(올해 화장된 무연고자 370명 평균 나이 62세) 살아가면서 생긴 인연을 끊은 건 가난이었고, 그 연을 다시 붙지 못하게 한 것도 가난이었다. 빈곤한 삶의 현장에서 개인은 고립됐다. 화장터는 그래서 모두가 똑같이 한 줌 재로 돌아가는 곳이지만 죽음에도 계급이 있음을 알려주는 공간이었다.

무연고 사망자 장례엔 얼굴(영정사진)이 없고 상주도 없다. 어쩌다 한 번씩 등장하는 지인의 복장은 허름하다. 가난은 모여살기 때문이다. 보통의 장례를 치르는 이들에겐 그저 이상한 장면이다. 이질적인 모습이 되레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모순은 장례가 있는 날이면 매일 반복됐다.

※ 2019년 12월 26일 기사읽기(제목을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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