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장례지원] 고 정기종님 고이잠드소서

“시신처리 위임서”라는 제목의 팩스 한장이 들어옵니다.
사망자와의 관계: 모

자주 마주하는 “시신처리 위임서”이지만 부모가 자식의 시신 처리를 위임하면서 포기할때는 어떤 마음일까를 생각해봅니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기도 하면서도, 정말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싶은 마음에 팩스를 받아 들고 안타까움에 긴 한숨을 내쉽니다.

부모의 한이 묻어 있어서 인지 이번에 받은 “시신처리 위임서”는 검게 나와서 손글씨를 제대로 읽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렵게 읽은 “무연고 시신처리 위임사유”에는 “40년 동안 한번도 연락이 없었고, 암수술 하고 경제적 힘든 상황입니다”라고 어머니가 한자 한자 손글씨로 작성하고 서명까지 하셨습니다.


고인은 1972년 생으로 진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2015.10.18 오후1시경에 4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짧은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언제 서울에 왔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이제 경우 40대 초반인데 이렇게 이른 나이에 삶을 마감한 고인의 삶과 마주하니 마음이 져며옵니다. 40대라면 이제 사회에서 활발하게 그 동안 배운 것을 펼치며 살아야 할 나이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가다니, 이러한 죽음은 자연사라고 의학은 말하겠지만 이러한 이른 죽음은 사회가 만든 타살로 봐야 할 겁니다. 평균수명의 채 반도 못살고 가는 이들의 죽음을 자연사라고 그냥 정의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고인을 그냥 외롭게 떠나보낼 수 없어, 고인이 안치되어 있는 고대구로병원 장례식장 주변에 있는 교회에 전화를 했습니다. 혹시 영결식에 오셔서 기도를 해줄 목사님이 계실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장례식장과 약속한 시간보다 1시간은 일찍와서 주변 교회를 다녀봤습니다. 이번에 알았습니다. 교회 앞에 교회 전화번호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문은 잠겨 있어서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주변에 교회도 많고 교회 건물도 크게 있는데 교회에 연락할 전화번호 하나, 그리고 조용하게 기도할 작은 공간조차 없다는 현실과 마주하면서 공동체는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주변 교회 목사님과 연락이 되어 영결식에서 고인을 위해 기도해 드릴 수 있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목사님과 자원활동가 덕분에 고인의 마지막 가는길 외롭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싶어 고인의 어머니께도 전화를 해봤습니다. 하지만 끝내 통화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고인은 2015.10.28 벽제 승화원에서 화장되어 무연고추모의 집에 안장되었습니다. 

故 정기종님 고이잠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