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밝골 칼럼]우리는 무엇으로 연결되어 있는가

한데 모여 살아가는 우리들은 무엇으로 연결되어 있을까, 어쩌다 각자의 이해득실에 따라 모였을 뿐일까, 그럼에도 공동체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끈이 있지 않을까…

전 세계가 코로나의 팬데믹에 휩싸여 있는 때에 이러한 질문을 더 골똘히 하게 된다. 마스크 너머의 불안한 눈빛, 안타깝게도 너무나 친숙한 말이 되어 버린 사회적 거리두기, 대공황 이후 최악이 될 것이라는 경기침체 전망까지 우리가 어떻게든 이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아니, 깨달음이라는 표현보다 쏟아지는 정보와 노심초사 속에 멀미가 날 지경이다.

전염병은 전쟁과 더불어 우리가 불가분으로 얽혀있음을 체감하도록 내모는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다. 게다가 전염병은 적과 친구를 구분하지 않고 사방에서 조여오기에 더욱 두려운 측면이 있다. 마치 캄캄한 어둠 속을 헤매는 카메라 앵글을 따라갈 때의 그 막연함과 공포처럼. 무서운 전염성 탓에 부지불식간 피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될 수 있는 현실 앞에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그야말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공포(fears of all against all).

[사진출처: 무너진 의료체계 CNN 방송 캡처 화면]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한국 사회는 적극적인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되레 평소에는 더 살가운 연대의식을 확인하고 있는 것 같다. 나만의 희망사항일까. 영국의 레가툼연구소에서 ‘2019 세계번영지수’를 발표하면서 한국 사회를 ‘저신뢰 사회’로 진단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경제력과 상관없이 구성원 사이 믿음과 협력, 네트워트 등을 종합 평가한 ‘사회적 자본 부문’에서 167개 국가 중 145위에 그쳤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팬데믹 초기의 혼란 속에 이러한 진단이 들어맞았다고 자조하거나 회초리를 들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공동체에서 혼란은 오래가지 않았다. 외신들이 부러움 섞인 시선으로 “이상한 나라”로 부르는가 하면, 사람들은 긴장된 속에서도 냉정과 평온함을 잃지 않고 있다. 한 리서치 기관이 최근 진행한 인식 조사에서는 ‘코로나19 위기 상황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가 신뢰할 만하다고 느꼈는지’에 대해 응답자의 61%가 ‘그렇다’고 답했다고 한다. 또한 이른바 선진국이라 자부하던 나라에서 의료체계가 붕괴될 조짐을 보이고 정치 지도자들이 정략적인 이유로 국민들에게 정보를 감추거나 왜곡하는 혼란과 불신의 소용돌이 속에서, 단연 한국 사회가 주목받고 있다. 한국 사회는 코로나 사태 속에서 스스로 조용한 혁명을 이뤄내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우리는 물리적으로는 예전보다 멀어진 삶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것은 빗장을 지르고 서로 외면하거나 우왕좌왕 뿔뿔이 흩어지는 양상과는 다르다. 오히려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보이지 않는 연대의식이 빛나는 순간이다. 사회 곳곳에서 횡행하던 반칙과 일부 사회 지도층의 후안무치한 행태와는 대비되는 모습에 희망을 발견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한국 사회의 역동성 속의 질서에 주목하고 해석하려는 시도가 줄을 이을지 모른다. 온갖 위기를 겪고 극복해온 역사에서부터 사회 이슈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 공정사회에 대한 열망,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소통과 합의, 정(情)이라 불리는 공감 능력, 전문가 집단의 의견에 귀 기울인 정부의 판단 등등.

[사진출처: 코로나 속 주목받는 선거 KBS 뉴스]

 

분명한 것은 이러한 현상의 바탕에 공동체 구성원들을 연결하는 건강한 신뢰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외국의 어느 학자가 한국 사회를 ‘저신뢰 국가’로 명명한 데 대해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고 일정 부분 패배주의에 젖어 있는 사이, 우리는 그와는 다른 길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물론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신뢰를 갉아먹는 이들이 존재한다. 특히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그럴듯해 보이지만 속내는 거짓인 사이비(似而非)의 폐해를 뼈저리게 겪었다.

개인이나 공동체의 믿음에 기대어, 또는 적극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들은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로 이끌기도 하고 사회에 큰 혼란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어느 사회에서는 ‘진짜를 흉내 내는 가짜’는 교묘하고 끈질긴 것이어서 호시탐탐 신뢰의 다리를 끊고 불신의 골을 파놓으려 한다. 사회계약의 기본 덕목인 상호성, 내가 공공의 가치를 위해 희생하고 절제하는 만큼 상대방도 그에 따라 줄 것이라는 믿음을 부단히 파고드는 셈이다. 우리 사회가 이번에 확인한 신뢰의 힘을 지속가능하게 하려면 그러한 불신의 폐단을 경계하고 부단히 자기정화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이는 시공을 초월해 모든 공동체의 변함없는 과제다.

그리고 한 가지, 국가라는 공동체가 국민들 사이의 신뢰를 북돋우면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공공성을 지켜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을 덧붙이고 싶다. 이는 ‘사회 안전망’의 구축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텐데,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 코로나의 광풍에 쉽게 휩쓸리지 않은 데는 공공 의료체계가 한몫을 했다. 모든 것이, 건강과 삶마저 무분별하게 돈으로 매겨지는 비인간적인 ‘환가(換價)의 시대’에 공공성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보루 가운데 하나이다. 죽음과 장례 역시 마찬가지다. 삶의 가장 극적인 순간이라 할 죽음을 대하는 사회의 공평함과 진지함, 장례의 공공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 개인이 세상과 인연을 끊는 순간, 남은 이들은 서로가 이어져 있는 세상을 마주한다.

이글은 나눔과나눔 이사로 활동하고 계신 법률사무소 생명의 함보현 변호사가 작성했습니다.
“달밝골은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에 있는 마을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