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장례지원] 보내는 이의 마음

[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5월 장례이야기
보내는 이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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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서울시립승화원 그리다 전용빈소)

서울시립승화원 공영장례 전용빈소 앞에 새로운 문구가 등장했습니다.

“이곳은 가족 해체와 빈곤 등으로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연고 없이 돌아가신 무연고 사망자, 저소득시민을 위한 소박한 빈소입니다. 즉, 가족과 지인이 없거나 재정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장례의식과 빈소도 없이 안치실에서 화장장으로 바로 가는 직장(直葬)방식이 아닌 고인의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지 않도록 공공(公共)이 배려하여 사회적 애도(社會的 哀悼)가 가능하도록 최소한의 장례의식 공간(空間)과 시간(時間)을 보장하고자 마련한 엄숙한 곳입니다.”

나눔과나눔이 사용하는 단어와 문장이 이제는 사회가 사용하는 공통의 언어가 되어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향한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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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힘든 삶을 살았던 무연고사망자의 장례에 참석한 유족과 봉사자들. 서울시립승화원)

“이제 그만 푹 자고 싶어요”

5월 초 무연고사망자 ㄱ님의 장례가 있었던 날 서울시립승화원 공영장례 전용빈소에는 세 명의 유가족이 참석했습니다. 상주 역할을 맡은 고인의 사위는 제단에 술을 올렸고, 그 모습을 고인의 이모와 조카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1959년생인 ㄱ님은 지난 4월 말 서울시의 한 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한 달 전 죽고 싶다는 말을 했던 장인어른과 연락이 안 되던 사위는 경찰에 신고를 했고, 출동한 경찰은 화장실에서 ㄱ님을 발견했습니다. 안방 테이블에는 “경제적으로 힘들다.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되었습니다.
장례를 치르던 이모는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조카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고인예식이 끝난 뒤 ㄱ님의 사위에 대해 못마땅한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어떻게 장인을 무연고로 보낼 수가 있어. 그래도 명색이 장례식인데, 옷이라도 차려입고 왔어야지.”
20년 동안 야간택시운전을 해오던 ㄱ님은 스트레스와 헝클어진 생활패턴 탓에 오랫동안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자기 딸이 모자라니 모자란 사람을 만났대요. 그러니 미덥지 않은 마음에 자기가 택시운전을 그만 둘 수 없다고 했어요. 그러다 최근에 3천만 원을 주식에 투자했다가 모두 잃었어요.” 이모는 조카의 힘들었던 삶을 전했습니다. 주식투자 실패 후 우울증이 심해졌고, 이모를 찾아와 자주 “푹 자고 싶어요. 아니 그냥 영원히 잠들었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모는 빚 걱정 말라며 조카를 위로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조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모는 조카를 찾아가 20만 원이 든 봉투를 건네며 “당장 찾을 수 있는 돈이 이것뿐이지만 일단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자.”고 했지만 조카는 이모를 돌려보냈습니다. 이미 자신에게서 희망을 찾을 수 없었던 조카는 끝내 안타까운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장례를 치르던 내내 장인의 빚 걱정을 하던 사위와 그런 조카의 사위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모 사이에 흐르는 냉기는 생전의 고인이 견딜 수 없었던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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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다섯 살에 헤어진 아버지의 무연고장례에서 유골을 뿌리고 있는 아들. 서울시립승화원 유택동산)

유족이 오지 않는다고 뭐라 하지 마라

연고자가 있지만 시신위임서를 작성할 경우 무연고사망자로 확정이 되어 국가가 대신해서 장례절차를 밟게 됩니다. 사망자의 시신위임서에는 무연고사망자 당사자는 물론 위임한 연고자와의 생전 관계를 짐작케 하는 여러 가지 단서들을 찾을 수 있는데, ‘경제적 이유’, ‘오랜 단절’ 등의 단어가 주를 이룹니다. 그런데 5월 중순 장례를 치른 ㄴ님의 시신위임서를 작성한 연고자는 위임의 이유를 ‘개인적인 사정’이라고 적었습니다.
ㄴ님은 지난 4월 말 서울시의 한 요양병원에서 뇌출혈로 사망했고, 지자체로부터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들은 아들은 참석할 의사가 없었습니다. 다섯 살에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를 보지 못했고, 자신의 기억 속에서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다 연락이 된 고모는 “아버지가 딴 살림 차려서 잘 살고 있으니 연락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던 20년 전 아들은 아버지에게 연락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각자 자기 길을 가자며 만남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전해들은 후 오랜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아들은 장례에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친구는 그런 상황에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렸고, 당사자도 아닌 친구의 그런 모습을 본 아들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나눔과나눔에 장례참석 안내문의를 했습니다.
장례에 참석한 아들은 묵묵히 장례절차에 따랐고, 화장이 끝난 후 유택동산에 아버지의 유골을 뿌렸습니다.
“장례에 오지 않으려고 했지만 친구 말을 듣고 오게 됐어요. 평생 아버지를 남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어요. (무연고)장례에 안 오는 사람들한테 뭐라고 하지 마세요.”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아들은 투박한 말투였지만 조금의 흔들림이 느껴졌습니다. 무연고자가 되어 사망한 이에겐 남아 있는 연고자가 있었고 그들에겐 각자의 삶이 있었습니다. 비록 생전의 관계는 회복되지 못했지만 장례를 통해 비로소 진정한 이별을 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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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시체처리위임서)

두 오빠를 무연고사망자로 보낸 막내

무연고사망자 ㄷ님은 서울시의 한 고시원에서 거주하다 지난 4월 사망했었습니다. 같은 층에 살던 이는 며칠째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경찰에 신고를 했고,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서울시 공영장례 상담역할을 하고 있는 나눔과나눔은 지자체로부터 ㄷ님의 무연고장례의뢰 서류를 받은 후 연고자에게 장례안내 문자를 발송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연고자의 연락처가 이미 저장되어 있는 번호였습니다. 혹시나 하여 과거에 치렀던 장례 기록을 살펴보다 나눔과나눔은 같은 연고자가 있는 무연고사망자를 찾았고, 비슷한 기록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30년간 연락도 없이 지냈습니다.”
사망자와의 관계란에는 ‘막내’라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먼 지방에 사는 막내여동생은 지난 해 12월과 올해 4월 각각 두 명의 오빠의 사망소식을 들어야 했습니다. 두 번째 시신위임서에는 “30년 만에 만나서 1시간밖에 얼굴을 보지 않아서”라는 이유가 적혀 있었습니다. 지난 몇 개월 사이 막내여동생은 두 명의 오빠의 시신위임서를 작성해야 했습니다. 이 가족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두 오빠의 시신처리와 장례절차를 결정해야 했을 여동생의 처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30년 이상 단절된 인연을 정리하는 건 남겨진 자의 몫이었습니다. 가혹했던 몫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던 여동생은 끝내 장례식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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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무연고사망자 장례에 참석한 유족들. 서울시립승화원 유택동산)

무연고사망자의 연고자라 겪어야 했던 처사

무연고사망자 ㄹ님은 55년의 삶을 살았고, 조건부 기초생활수급자로 마지막 거주지는 고시원이었습니다. 고시원 벽에 기댄 채 발견되었을 당시 이미 사망한 지 일주일이 지난 후였습니다. 서류를 보낸 지자체로부터 장례참석자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장례 당일 서울시립승화원에서 ㄹ님을 실은 관이 화장로로 들어간 이후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급하게 모여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고인의 누나와 형의 부부들이었습니다. 뒤늦게 화장로에 도착한 가족들은 동생을 찾았고, 이미 화장로로 들어간 사실을 확인한 후 망연자실하며 울음이 터졌습니다. 동생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다며 가족들은 너무나 안타까워했고 승화원이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고인은 4남매 중 막내였고,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살았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어떤 이유에서인지 동생이 연락을 끊어서 10년 동안 만나지 못했어요.” 누나는 동생이 연락을 하지 않는 한 다른 방법이 없었다며 그동안의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동생의 사망소식을 듣고 형제들은 지자체 담당자로부터 시체검안비를 지불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장례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이유였기 때문에 가족들은 검안비를 지불했습니다. 의아한 점은 보통의 무연고사망자의 경우 연고자가 시신을 위임해 국가에서 화장절차를 대신 진행하기 때문에 연고자에게 비용을 이야기하지 않는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무연고사망자로 확정된 후 지자체로부터 장례가 언제 진행되는지 안내를 받지 못했습니다. ㄹ님의 누나는 인터넷에 무연고사망자 장례에 관해 찾아보다가 나눔과나눔 홈페이지를 발견했고, 장례일정을 매일매일 확인해 결국 동생의 장례일정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장례에 참석한 가족들은 동생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고, 유택동산에 유골을 뿌렸습니다.
공영장례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관계된 많은 이들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유가족과 지인들이 참석하지 못하고 외롭게 떠나는 무연고사망자들이 많습니다. 오랜 단절과 어려운 형편 때문에 가족을 무연고자로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을 사회가 대신할 수 있도록 노력이 더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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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전남편을 공영장례로 치러준 감사함을 전한 아내의 선물)

아들에게 시신위임서를 작성하게 한 엄마의 미안한 마음

지난 4월 말 한 70대 남성이 서울시의 한 고시원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연고자가 있었지만 시신인수를 포기하여 무연고사망자가 되었습니다. 무연고사망자 장례의뢰 서류에는 아버지의 시신을 포기하는 아들의 문자가 사진으로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이혼하시고 35년 넘게 연락 없이 살아오다가 돌아가셨다고 처음으로 연락받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마음이 착잡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낳아주신 아버님이신데 자식 된 도리로 모셔야 하겠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습니다. 요번은 코로나19 때문에 만사 부득이하게 몹쓸 자식이 되었습니다. 송구스럽지만 나라에서 잘 치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5월 말 장례를 치른 후 나눔과나눔 활동가에게 한 여성분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무연고사망자 ㅁ님의 전처라고 밝히며 막 승화원 접수실 앞에 도착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미 장례가 끝난 지 2시간이 넘은 후였기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아내는 지방에서 서울로 기차를 타고 오려 했지만 승강장을 잘못 찾아 그만 정반대 방향의 도시에 도착했고, 다시 기차를 갈아타고 오느라 장례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스물여덟 살에 3살짜리 자식을 두고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죽었다는 소식 듣고 위임서를 작성한 아들한테 미안해서 몰래 오려고 했는데, 이렇게 늦게 도착했네요.”
아내는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자책을 가슴에 가득 안고 서울로 올라왔지만 장례가 끝난 후에야 나눔과나눔의 안내를 받고 남편의 유골이 뿌려진 유택동산 앞에 설 수 있었습니다.
나흘 후 모르는 번호로 연락을 받았습니다. 서울시립승화원 접수실에 택배물건이 왔는데, 받는 사람이 나눔과나눔으로 입력되어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ㅁ님의 무연고장례가 있었던 날 아내분은 장례 당일 전화로 감사를 전하며 커피를 꼭 사겠다고 했지만 시간이 이미 늦어 나눔과나눔 활동가와 만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분은 며칠 뒤 커피와 국수를 택배로 보냈고, 수령주소는 서울시립승화원 접수실로 수령자는 나눔과나눔 앞으로 보낸 것이었습니다.
예상치도 못했던 쇼핑백을 받아들고 나눔과나눔 활동가는 한동안 먹먹해진 마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35년 전 이혼한 남편의 사망소식, 아들에게 시신위임서를 작성하게 만든 미안함, 그리고 남편의 장례를 대신 치러준 감사의 인사로 커피와 국수에 담아 보낸 쇼핑백. 무연고사망자 장례를 치르며 참 많은 일들을 겪습니다.

이 글은 나눔과나눔 활동을 지지하는 부용구 활동가가 작성한 글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

5월 무연고 기초생활수급자
김정곤, 장계자, 이갑표, 장진, 김동진, 박우송, 김명호, 박세찬, 이한조, 김형국, 김인곤, 김석태, 박찬용, 유병진, 박정환, 임성팔, 김광빈, 김청자, 장영화, 박은상, 이병주, 임광섭, 허광술

5월 무연고 사망자
MISS Nitchakamon Konggarean, 이영실, 장기영, 박은호, 신광식, 이도식, 김신시, 손지왕, 신완진, 구영서, 고동환, 채금석, MISS PUNJAMA WONGCHAROEN, 이권호, 박춘광, 박연환, 김영민, 정한철, 김정석, 성기웅, 이광수, 이혁, 이근석, 이광구, 김경춘, 김진영

5월 나눔과나눔 장례지원
김아람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쉰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
(문구출처 : 마리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