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er day]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합니다

 

당시 23세셨던 삼풍백화점 스타킹코너 직원 홍O선 님, 당시 51세 셨던 백O현 님과 러시아 유학을 준비하던 딸 김O은 님, 당시 30세 셨던 윤O 님과 윤O 님의 세 딸, ‘삼풍백화점 귀금속 전시회 아르바이트 주부 면접’에 아들 이O진 님을 데리고 가셨던 김O순 님, 당시 21세 셨던 삼풍백화점 매장 판매직원 손O주 님을 기억합니다.

 

리멤버데이 삼풍백화점

 

지난 6월 29일에 나눔과나눔은 양재 시민의 숲에 있는 삼풍백화점 위령탑을 찾아갔습니다. 위령탑 앞에 국화꽃 다발을 올려 놓으며 시민 분들이 보내주신 애도의 글을 모아 함께 읽었습니다. 사망자 502명이라는 숫자는 참사의 아픔을 직접 드러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눔과나눔은 희생자분들의 사연을 찾아 개개인의 삶을 기억하고 애도했습니다.

참사가 일어났던 곳에서 6km 정도 떨어진 외진 곳에 있는 위령탑이지만 여전히 많은 유가족들이 그 곳을 찾고 있습니다. 당시에 실종됐던 친구가 요즘 꿈에 나온다며 한 동안 위령탑을 바라보던 시민분과 걸어오는 내내 눈물을 쏟으시던 유가족분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는 지나간 과거의 아픔이 아닌 여전히 실재하는 슬픔이었습니다.

참사로 인해 희생된 분들이 잊혀지지 않도록, 그래서 우리 사회가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나눔과나눔은 이후로도 6월 29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추모의 글로 함께 해주신 시민분들, 여전히 잊지 않았노라 말씀해주신 많은 분들의 마음을 담아 현장을 지키겠습니다.

 

리멤버데이 삼풍백화점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에 관한 다큐멘터리 ‘시대유감, 삼풍’ 보러가기 링크 클릭

 

나눔과나눔이 기억하는 삼풍백화점 희생자

 

홍O선 님

당시 23세 셨던 홍O선 님은 삼풍백화점 스타킹코너에서 근무하다 돌아가셨습니다. 세일기간 예약손님 접수를 위해 장부처리를 하느라 “빨리 나오라”는 동료 직원의 외침을 듣지 못해 현장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1남2녀중 막내딸이었던 홍O선님을 찾기위해 홍O선님의 아버지는 임박했던 5급 사무관 시험까지 포기해가며 붕괴현장을 지키셨습니다. 홍O선 님의 일기장 마지막 페이지엔 ‘왠지 모르게 원수같은 오빠가 보고 싶다’ 라는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지방출장을 떠나기 전 날, 밤늦게 귀가한다고 핀잔을 주며 심하게 말다툼을 벌인 오빠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홍O선 님의 장례엔 2년 남짓 만난 남자친구와 가족들이 함께 했습니다.

백O현 님

당시 51세 셨던 백O현 님은 러시아 유학을 준비하던 딸 김O은 님과 함께 돌아가셨습니다.

김주은 님

당시 21세 셨던 김O은 님은 러시아 유학을 준비중이셨습니다. 연세대 노문과 3학년으로 러시아 모스크바 대학에서 8개월 연수를 받게 되어 있었지만 “안녕하세요. 저는 30일 러시아로 유학을 떠납니다”라는 삐삐 메시지만을 남겨놓은채 돌아가셨습니다.

윤O 님과 윤O 님의 세 딸

당시 30세 셨던 윤O 님은 세 딸과 함께 돌아가셨습니다. 윤O 님의 남편분은 보상금 7억과 사재 6억을 모아 13억을 큰 딸이 다니던 서울 시각장애인학교(서울맹아학교)에 장학기금으로 기탁하고 장학재단을 설립하셨습니다.

김O순 님과 아들 이O진 님

당시 37세 셨던 김O순 님은 ‘삼풍백화점 귀금속 전시회 아르바이트 주부 면접’에 아들 이O진 님을 데리고 가셨다가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김O순 님의 남편분은 아내와 아들에게 해주지 못했던 일을 조금이나마 속죄하기 위해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충북 장호원에 전셋방을 얻어 음성 꽃동네에서 나병환자와 행려환자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셨습니다.

손O주 님

당시 21세 셨던 손O주 님은 삼풍백화점 매장 판매직원이셨습니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돈을 벌기 위해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결혼 날짜를 잡아 놓고 혼수를 준비하며 한창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중이었지만,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잔해에 매몰되어 돌아가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