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장례지원] 무연고자를 만드는 서러운 세상

[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7월 장례이야기

무연고자를 만드는 서러운 세상

 

코로나로 장마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요즘입니다.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장례는 7월 한 달간 총 24회 진행되었고, 모두 마흔여섯 분의 마지막을 함께했습니다. 이중 참석자가 있었던 장례는 14회였고, 묻혀 없어질 뻔한 이야기는 다행히 마지막 순간을 함께한 이들의 입을 통해 다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202008003(사진 : 코로나로 어려워진 형편에 형님의 장례를 치르지 못한 동생이 무연고장례에서 술잔을 올리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형제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서러운 세상

7월 중순 서울시의 한 지자체로부터 한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의뢰 공문이 도착했습니다. 60대 초반의 남성의 이름이 적혀 있고, 주소지는 서울이 아닌 지방이었습니다. 사망지는 서울의 한 주택이었고, 정확한 사망원인과 사망일자는 알 수 없었습니다. 직업란에는 ‘일용직’이라고 적혀 있었고, 미혼에 자녀는 없었습니다.

무연고 장례식 당일에 참석한 남동생은 무거운 표정이었습니다. “제가 형의 시신을 포기하고 왔습니다.”

자신이 4남매 중 막내라고 밝힌 동생은 11세에 어머니를 잃었고, 시각장애인인 아버지와 함께 어렵게 살았다고 전했습니다. 형제들이 일찍부터 경제활동을 해야 했고, 막내인 자신도 성인이 된 후 트럭운전을 하며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세월이 지나 아버지와 큰형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고 동생은 자신의 힘으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러던 올해 코로나 대유행으로 물류업계가 큰 타격을 입게 되었고, 동생은 일이 점점 줄어들다 못해 아예 들어오지 않는 상황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7월 초 둘째 형의 사망소식을 들었습니다.

너무나 어려운 상황에서 전해들은 형의 사망소식은 동생을 극심한 고통으로 몰아넣었습니다. 현재 자신의 능력으로는 형의 장례를 치를 수 없었기에 동생은 끝내 형님의 시신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코로나는 사람도리도 못하게 하네요.”

형의 무연고 장례에 참석한 동생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가족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 자신의 처지가 원망스러워 동생은 이런 세상이 ‘서럽다’며 괴로운 마음을 토로했습니다.

 

202008001(사진 : 어머니를 간호하느라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했던 무연고사망자의 장례에 참석한 지인이 서울시립승화원 유택동산에서 유골을 뿌리고 있습니다.)

편찮으신 어머니를 간호하다 무연고 사망자가 된 딸

7월 초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진행된 무연고 사망자 장례에 한 여성분이 참석했습니다. 11시 화장예약에 앞서 승화원 2층 공영장례 전용빈소를 기웃거리던 여성의 손에는 영정사진이 들려 있었습니다.

이날 장례를 치른 ㄱ님은 40대 초반의 여성으로 지난 6월 초 거주하던 주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연고자로 어머니가 계셨지만 시신을 위임할 상황이 아니라 한 달의 시간이 지나서야 무연고자로 장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지자체의 장례의뢰 공문을 통해 고인은 생전에 한 마트에서 캐셔로 일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고, 동료분과 연락이 닿았지만 고인의 사망사실에 큰 충격을 받아 참석하지 못할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장례 당일 참석한 여성분은 고인의 또 다른 지인으로 함께 일본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친분이 있었습니다. 둘 사이에는 아픈 어머니를 돌보며 살아가는 공통점이 있어 서로 의지하는 면이 많았습니다. 지난 5월말까지 연락을 주고받다가 각자 어머니를 간호하느라 잠시 연락이 뜸했었고, 6월 초 오랜만에 연락을 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후 걱정스러운 마음에 생전 고인의 집을 찾은 지인분은 집안의 불이 켜져 있어 더 이상한 기분이 드는 차에 마침 집밖으로 나온 집주인을 통해 고인의 사망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전에 갑자기 쓰러진 어머니를 병원으로 모시고 간호하던 고인은 지병으로 뇌질환을 앓고 있었지만 의지할 다른 가족은 없었기에 고인은 어머니 간병에 병원비를 홀로 감당하며 힘든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지인분은 연락이 뜸했던 시점에서 아마도 고인이 갑자기 의식을 잃어 병원으로 가지 못하고 고립사 한 것 같다며, 누군가 곁에 있었다면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돌아가시지는 않았을 거라며 안타까워했습니다. 병원에 입원중인 고인의 어머니는 치매와 뇌졸중으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상황이어서 지인분은 고인의 사망사실조차 알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지인분은 구청으로부터 고인의 장례에 대한 연락이 없어 마냥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 인터넷 검색을 통해 나눔과나눔을 알게 되었고, 하루하루 장례일정을 확인해 고인의 장례부고를 읽게 되었고, 장례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무연고자라서 사진도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일본여행 갔을 때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만들어 왔어요.”

지인분은 가져오신 사진을 빈소 제단에 올렸고, 장례를 함께 치르며 고인과의 마지막 이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202008004(사진: 홈리스 무연고사망자 장례에 참석한 지인들이 고인에게 쓴 편지)

어느 홈리스의 죽음

7월 중순 한 지자체로부터 무연고 사망자 공문을 받아 살펴보던 중 특이한 사항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사망진단서에 사망원인이 ‘정신변화’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단어의 뜻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사인으로 기록된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병원에 연락해 관련된 사항을 문의하게 되었고, 몇 번의 통화 끝에 사망진단 이유를 전문용어로 표기한 것을 한글로 자동번역한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인은 노숙생활이 길어 필요한 검사를 견딜 만큼 체력이 남아 있지 않았고, 병원에 실려온 이후 혼수상태가 나아지지 않아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나눔과나눔은 지차체에 연락해 고인이 생전에 노숙생활을 한 정황을 문의하게 되었고, 연대활동을 하고 있는 노숙인단체들에 연락해 고인에 대해 알고 있는 분들이 계신지 알아보았습니다. 두서너 단체를 통해 고인에 대해 알고 있는 분과 연락이 닿았고, 노숙인단체 활동가에게 장례부고를 알리게 되었습니다.

장례 당일 참석한 활동가는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고인은 30대 초반의 남성으로 서울역에서 노숙생활을 하다가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덟 살에 부모가 모두 돌아가셨고, 법정후견인이었던 할머니도 16세에 돌아가시면서 고인은 고아가 되어 힘든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기댈 곳 없는 세상에서 갖은 고생을 하던 고인은 결국 서울역에서 노숙생활을 하게 되었고, 텐트촌에 거주하면서 홈리스단체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장례에 참석한 또 다른 지인분은 고인에게 아내가 있었고, 가끔 텐트촌을 방문해 서로 안부를 묻고 시간을 함께 보내다 가기도 했다고 전했습니다. 고인을 만나면 항상 “술 마시지 말라”며 남편의 건강을 걱정했고, 함께 있을 때면 잘 부르는 노래를 부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좋아보였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지인에게는 아내와 남편이라고 소개를 했지만 법적으로 부부인지는 확인할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망하기 몇 달 전부터 고인은 건강이 나빠져 힘들어 했고, 결국 무연고 사망자로 장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장례에 참석한 지인분들은 혹시 아내가 남편의 사망소식이 전해졌는지 물었습니다.

장례가 진행되는 동안 그 질문이 머릿속에서 재생이 되었습니다. 과연 홀연히 나타나 술 마시지 말라며 잔소리를 하던 아내에게 남편의 사망소식이 전해졌을까요? 무연고 사망자 중 집이 아닌 곳에서 살다 돌아가신 분들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사망소식은 연고자에게만 전해지고 같이 마지막 시간을 함께했던 지인들은 생사조차 모른 채 살아갈 확률이 높습니다. 공영장례는 과연 누구와 함께 해야할지 고민이 많아지는 장례였습니다.

 

202008002(사진 : 고아라는 인연으로 만난 친구를 무연고로 보내야 했던 친구)

서로 고아로 만난 인연, 친구의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무연고 사망자 ㄴ님은 1962년생으로 지난 6월 말 서울시의 한 요양병원에서 심폐부전으로 사망했습니다. 연고자를 알 수 상황이라 무연고자로 확정되었고, 7월 중순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장례를 치렀습니다.

장례에 참석한 남성분은 장례 시작 전에 공영장례 전용빈소에 마련된 제단에 향을 피우고 술 한 잔을 올렸습니다. “10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어요. 서로 고아라는 공통점이 있었죠. 저는 서울, 친구는 부산에 있는 고아원에서 자랐어요.”

ㄴ님이 사망하기 두 달 전 친구분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자신은 결혼해서 살고 있지만 혼자 지내는 친구가 안쓰러워 따뜻한 밥 한 끼 먹여주고 싶은 마음에 친구분은 ㄴ님을 초대했고, 식사 후 술 한 잔을 기울이며 “너 죽으면 내가 장례 치러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며 ㄴ님과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나고 제단 위의 위패 속 ㄴ님의 이름을 마주한 친구분은 망연자실했습니다. 자신이 했던 말 때문에 친구가 죽은 건 아닌지, 장례를 해주겠다고 말해놓고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책과 미안함으로 친구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습니다.

친구의 사망소식을 듣고 지자체 담당자에게 장례에 관해서 문의했을 때 친구분은 연고자가 아니기 때문에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절망하고 말았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친구의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종교자원활동자 한 분이 “공영장례로 친구분의 장례를 치르는 겁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모두 한 마음으로 친구분의 명복을 빌어주잖아요.”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나눔과나눔은 현재 보건복지부에서 연고자가 아니더라도 “가족 대신 장례”를 원하면 치를 수 있는 지침을 마련했다는 이야기를 전했고, 친구분은 지자체 담당자로부터 “연고자가 아니라 장례를 치를 수 없다.”라는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방법을 찾았을 거라며 애통해 했습니다.

1인 가족이 늘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법적인 연고자가 없는 이들이 무연고자가 되어 외롭게 세상과 이별하는 아픈 현실을 바꾸기 위해 ‘가족 대신 장례’, ‘내 뜻대로의 장례’가 정착될 수 있도록 많은 관계자들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업무담당자들이 이런 지침에 대해 모르거나 설명을 해주지 않는 등 장례가 절실한 이들을 위한 행정집행을 피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무연고 장례를 통해 접하고 있습니다. 좋은 제도가 제대로 운영이 될 수 있도록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관한 정보들에 관심을 갖고 공론화시켜야 할 것입니다.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절망’이 될 수 있기에 더욱 그것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 글은 나눔과나눔 활동을 지지하는 부용구 활동가가 작성한 글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

 

7월 무연고 기초생활수급자

김인규, 정성훈, 권영국, 임영자, 김병집, 박형구, 송경호, 엄민자, 송두복, 김수지, 박재섭, 김태용, 서주옥, 현진수, 오정길, 윤용호, 이은복, 이덕자, 서현섭, 유재천, 백수일, 하헌근, 이일규, 이현복, 이재희, 이수길, 김태길, 이완기, 박종관, 신현우, 남창임

 

7월 무연고 사망자

나해기, 노병윤, 김민태, 김경호, 이주현, 장은철, 김창성, 허 용, 박준상, 홍민석, 남기철, 이창호, 김병호, 유광현, 신상희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마흔여섯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

(문구출처 : 마리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