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옥 칼럼] 혈연의 종언(終焉), 관계의 탄생, 두 번째 이야기 -장례신청자의 두 가지 선택: 연고자 또는 장례주관자

2020년 보건복지부의 장사 업무안내 지침이 혈연과 제도를 넘어 동행의 관계로 가는 길을 열기 시작했다. 지난번 ‘혈연의 종언(終焉), 관계의 탄생,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①사실혼 관계, ②실제 친생자 관계 등의 사실상 가족관계, ③조카 또는 며느리 등의 친족 관계, ④공증문서나 유언장 등의 법률관계, ⑤사실상 동거 또는 지속적 돌봄 등의 관계, 그리고 ⑥친구·이웃 등 종교 및 사회적 연대활동 관계의 사람도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이번에는 두 번째로 ‘가족 대신 장례’를 위한 장례신청자의 두 가지 선택권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과연 누가, 언제 신청을 하고, 가족이 아닌 사람이 장례를 하고자 할 때 어떠한 선택권이 주어지며 이에 따른 권리와 의무는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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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연고자(장례주관자) 지정을 신청할 수 있을까?

가족 대신 장례를 하기 위해서는 구청에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과연 누가 이러한 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연고자(장례주관자) 지정 신청자’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읽힐 수 있다. 우선은 장례 할 가족이 없어 죽음과 장례마저도 걱정인 ‘장례당사자’ 본인의 처지에서는 스스로 신청자가 되고 연고자(장례주관자)를 지정할 수 있다고 읽을 것이다. 반면, 위독한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와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배우자의 장례가 걱정이니 ‘장례를 주관할 사람’의 처지에서 본인이 신청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과연 2020년 보건복지부 장사 업무안내에서 말하는 ‘연고자(장례주관자) 지정 신청자’는 누구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장례를 주관할 사람’만을 뜻한다. 즉, ‘장례당사자’는 신청자가 될 수 없다. 정리하면 연고자(장례주관자) 지정 신청자란, 개인적 친분이나 사회적 연대에 따라 ‘사망자’의 장례주관을 희망하는 개인이나 단체를 말한다. 장례주관을 희망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①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사법’)에서 정한 연고자로서의 장례에 관한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되는 ‘연고자 지정’을 신청하거나 ②장례의식 진행·장사방법 및 장사시설 결정 등의 장례절차만을 주관하는 ‘장례주관자 지정’을 신청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신청은 언제 가능할까? 상식적으로 장례당사자의 생전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해 마련된 제도라면 생전에 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장례당사자 사망 후에야 구청에 ‘연고자(장례주관자) 지정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장사법 제2조 제16호 아목」의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라는 조문이 ‘가족 대신 장례’의 근거가 되는 법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신을 관리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장례당사자가 사망한 이후 시점이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나눔과나눔에 상담 전화를 한 분이 있다. 실제 법률관계는 아니지만, 삼촌이라고 부르며 가깝게 지내던 분의 장례를 직접 치르고 싶다는 상담 내용이었다. 삼촌은 현재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데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의사가 장례를 준비할 것을 권고한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라고 했다. 또한, 삼촌의 제적등본까지 모두 발급받아 확인한 결과, 호적 관계상으로 본인 외에는 어떠한 가족도 없는 분이셨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 생존해 계시기 때문에 ‘Y 구청’ 무연고 담당자는 신청서 받기를 거부했다. “사후에 신청서를 받게 되어있다”라는 것이 이유였다. 삼촌의 장례가 걱정인 지인은 삼촌이 돌아가시자마자 장례를 하고 싶어서 동주민센터와 구청으로 달려가 부탁을 했다. 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 신청서를 접수할 수는 없었다. 장례당사자의 생전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해 연고자(장례주관자) 지정을 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의 근본 취지를 고려할 때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와 지인을 위해 신청서를 하루 이틀 미리 접수하고 환자가 돌아가시자마자 장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그렇게 위법·부당하고 구청 담당자로서 할 수 없는 일이었는지 ‘Y 구청’ 담당자에게 묻고 싶다. 정말 매정한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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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된 연고자(장례주관자)의 권리의 의무

가족 대신 장례를 원하는 신청자는 ‘연고자’ 또는 ‘장례주관자’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연고자’와 ‘장례주관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차피 가족 대신 장례를 치르는 사람 아닌가? 맞다. ‘연고자’나 ‘장례주관자’나 가족 대신 장례를 치르는 사람으로서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사망자에게 그리고 신청자에게 선택권이 부여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우선 신청자가 연고자가 되면, 장사법에서 정의한 연고자의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되고 따라서 연고자의 지위를 인정받게 된다. 한편 장례주관자는 장례절차의 사후사무만을 주관하는 자가 된다. 이 차이로 인해 사망자의 법적 지위가 달라진다. 전자는 장사법에 따라 연고자가 있는 사망자가 되지만, 후자는 무연고사망자가 된다. 즉, 장례주관자가 지정된 경우 행정 집행의 관점에서 사망자는 무연고사망자와 같은 위치가 되고, 따라서 장례주관자가 경제적 이유 등으로 무연고 공영장례를 요청할 때는 무연고사망자와 같은 방식의 무상장례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장례주관자로 지정된 사람의 역할은 무엇일까? 결국, 무연고사망자와 같은 방식의 장례라면 무연고사망자와의 차이점이 없지 않을까? 하지만 무연고사망자와 장례주관자가 지정된 사망자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장례주관자는 사망자의 생전의사에 따라 법적 연고자는 아니지만 상주가 될 수 있다. 그리고 화장 이후 유골을 봉안당에 모실지, 수목장 등의 자연장을 할지, 또는 뿌리는 방식의 산골을 선택할지의 방법을 사망자의 생전 의사결정에 따라 진행할 수 있다. 현재 무연고사망자의 경우 연고자가 없는 경우에만 봉안하고 있다. 연고자가 거부하거나 기피한 경우에는 뿌리는 방식으로(산골) 하게 되어있어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정리하면 재정적 여유와 상관없이 누구든지 원한다면 본인의 장례를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부탁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공공으로부터 장례비용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가족 대신 장례’ 신청자의 공통점은 이들이 준비된 비용으로 장례를 치르면 사망자의 생전의사에 따라 삼일장 등의 장례 기간 결정, 수의 및 관 등의 고인 용품의 선택, 빈소설치, 부고 발송, 일자별 장례절차, 장례의식 및 종교예식, 영구차량, 장사시설 결정, 자연장 등의 봉안 방법 등의 선택권이 주어진다. 다만, 장례절차 종료 후 30일 이내에 해당 지자체에 화장 및 안치 증빙서류 등을 준비해서 신고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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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관계 탄생의 역사적 순간, 하지만 한계는 명확

혈연과 제도를 넘어 동행의 관계로 가기 위한 ‘가족 대신 장례’ 그 첫걸음이 시작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전히 한계는 명확해 보인다. 사망자의 생전 자기결정권이 제대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사후 신청이 아닌 생전 신청으로 법과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 그래야 장례당사자도 신청자도 모두 죽음을 잘 준비해서 장례를 잘 치를 수 있게 된다. 그야말로 웰다잉(Well-dying)이 가능해진다. 얼마 전 법률상은 아니지만, 모자 관계인 아들이 첫 번째 칼럼을 보고 어머니의 장례를 준비하고 싶다며 나눔과나눔에 상담 전화를 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연고자로 지정받을 수는 없고 사후에야 신청할 수 있다는 답변을 듣자 왜 아들인데 어머니 장례를 생전에 명확하게 준비할 수 없냐며 안타까워하셨다.

이제는 법률상 친 생모가 아니기에 ‘생전에 장례를 치를 수 있다’ 확답받을 수 없는, 마찬가지로 법률상 가족이 아니기에 임종 직전인 삼촌의 장례를 거부당한 서러운 사람이 없는 세상, 진정한 혈연의 종언(終焉)을 선언하는 그런 세상이 되기를 오늘도 간절하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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