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장례지원] 마지막 삶의 흔적을 더듬다

[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8월 장례이야기

마지막 삶의 흔적을 더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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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고립사한 동생의 장례에 참석한 누나가 의전업체 집례자의 안내를 받고 제단에 꽃을 올리고 있습니다.)

“TV에서만 보던 그런 죽음”

8월 말 한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에 참석한 여성이 영정사진을 꺼냈습니다. “동생이 젊었을 때 찍은 사진밖에 없네요.” 위패만 놓여 있던 제단 위에 사진을 올리고 누나는 향을 피웠습니다.

무연고 사망자 ㄱ님은 8월 중순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누나는 연락이 끊어진 지 10년 만에 동생의 사망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장례 내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던 누나는 그간의 말 못했던 이야기들을 꺼냈습니다.

“누구한테 도움을 주면 줬지, 해 끼치는 애가 아니었어요. 똑똑하고 순한 동생, 남들이랑 싸움 한번 한 적 없었어요.”

ㄱ님은 생전에 결혼을 했지만 자녀 없이 살다 헤어졌고, 이혼 후 자신의 인생이 실패했다는 좌절감에 힘들어 했습니다. 그런 동생이 안쓰러웠던 누나는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닿지 않는 동생 생각에 답답하고 아픈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열흘 전 동생이 고립사 했다는 소식을 듣고 누나는 너무나 놀라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고시원에 전화를 했어요. 동생이 남긴 물건이라도 정리하는 게 누나로서 못다한 마음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고시원 총무라는 분이 저한테 오지 말라고 했어요. 막상 와서 보면 한숨밖에 안 나올 거라며.”

고시원 총무는 동생과 생전에 가깝게 지냈었기에 사망 후 남아있는 가족들이 찾아와 가슴 아픈 현장을 보는 것이 걱정스러울 것 같아 자신이 청소를 다 한 후 남긴 물건을 챙겨가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동생이 너무 비참하게 죽었어요. 이런 건 TV 뉴스에서만 봤는데, 내 동생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장례가 끝나고 서울시립승화원을 내려가는 누나의 손에는 영정사진과 동생의 위패가 들려져 있었고, 오열 소리는 아득하게 멀어져 갔습니다.

 

202008006(사진 : 무연고 장례에서 형의 유골을 뿌리고 있는 동생. 서울시립승화원 유택동산)

저도 수급자라 형의 장례를 치를 수 없었습니다

60대 초반에 무연고 사망자가 된 ㄷ님은 지난 7월 초 거주하던 주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사인은 불명이고, 연고자가 있지만 시신을 위임하여 무연고자가 되었습니다. 8월 말 공영장례로 진행된 장례식에는 동생이 참석했습니다.

운구를 시작으로 장례 절차가 진행되었고, 공영장례 전용빈소에서 고인예식이 이어졌습니다. 동생은 조용히 집례자의 안내에 따랐습니다. 형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동생은 “서로 말수가 없는 편이어서 드릴 말씀이 없다.”며 길게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자주 보였습니다. 수골을 기다리며 빈소 밖으로 나간 동생은 담배를 피운 후 다시 안으로 들어와 조용히 형의 빈소를 지켰습니다.

화장이 끝나고 산골이 진행되었고, 동생은 묵묵히 형의 유골을 뿌렸습니다. 장례가 끝나도록 동생은 끝내 입을 열지 않았고, 간단한 인사를 끝으로 승화원을 내려갔습니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형과 15년 이상 연락 없이 살아 왔습니다. 저 또한 기초생활수급자로 우울증과 수면장애로 마지못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친척도 다른 아는 사람도 없어 도저히 형을 인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공문과 함께 받은 시신위임서에는 형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상황이 적혀 있었습니다. 장례 내내 한숨을 쉬며 조용히 빈소를 지키던 동생의 마음이 위임서의 내용과 온전히 같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본인의 삶도 살아내기에 힘겨운 동생에게 갑자기 닥친 장례는 참 버거웠을 것 같습니다. 그나마 공영장례로 형과 마지막 시간을 함께한 것이 동생으로서는 형에게 할 수 있었던 최선이 아니었을까요.

 

20200800010(사진 : 서류상의 연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20년 넘게 모신 어머니를 무연고자로 보낸 아들부부. 서울시립승화원)

20년을 넘게 모신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지 못한 아들

8월 말 장례를 치른 한 무연고 사망자는 생전 마지막 10년을 경기도의 한 요양원에서 지냈고, 지난 8월 중순 8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서류상으로는 연고자가 없어 무연고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영장례에는 아들 부부가 참석했습니다. 그들은 고운 미소가 담긴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준비했습니다.

“20여 년 동안 모자의 정을 나누고 살았습니다. 집에서 10년을 함께 지냈고, 몸이 편찮아지셔서 요양원으로 모셨습니다.”

아들은 상주로 어머니께 절을 올렸고, 조사 낭독도 직접 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 장례 때 주로 자원봉사자를 통해 듣던 조사 내용이 이날은 아들의 목소리로 들어서인지 감정이 남달랐습니다. 문장을 읽어 내려가던 아들은 이내 울먹이며 주체할 수 없는 감정 때문에 멈추기를 반복했고,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훔쳤습니다.

고인예식이 끝나고 빈소에 앉은 아들에게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서류상으로 어머니께서는 전 남편분과 혼인 상태였어요. 그래서 그쪽 가족과 어렵게 연락을 해서 제가 직접 서류를 정리하려고 했었어요.”

퇴직하기 전 공무원이었던 아들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관련 정보를 알아보았고, 어머니를 무연고로 보내지 않으려고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습니다. 하지만 믿었던 지자체로부터 ‘법적인 가족이 아니니 시신을 인수 받을 수 없고, 장례도 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듣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공무원이었기에 할 수 있는 절차와 갖춰야 할 서류들을 준비해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려 했지만 결국 어머니는 무연고자가 되었습니다.

장례를 같이 했던 나눔과나눔 활동가는 아들에게 최근 보건복지부의 지침으로 연고자가 아니더라도 ‘가족 대신 장례’를 치를 수 있다는 사실을 전했습니다. 아들은 정해진 행정절차대로 진행해야 하는 함을 알기에 후배 공무원에서 더 요구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습니다.

무연고자가 해마다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 나눔과나눔을 비롯해 관련한 전문가들이 ‘가족 대신 장례’를 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했고, 국가에서도 이러한 의견을 받아들여 사실상 가족관계를 증명하는 서류를 지참해서 심사를 마치면 연고자 지정이나 장례주관자 지정을 받아서 장례를 할 수 있게끔 지침까지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제도의 집행을 결정하는 담당자가 아직도 행정편의적으로 예전의 관례를 고집하고 있는 상황이 아직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 번 관의 뚜껑을 닫으면 열지 않는 것이 고인에 대한 예의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조금 더 유가족과 장례를 치르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좋은 제도를 실행하지 않는 일부 담당자의 결정이 사랑하는 이와의 마지막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비극적인 상황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2020080002(사진 : 나눔과나눔은 2015년부터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지원해 왔습니다. 사진은 서울시립승화원 유택동산에서 산골 전 국화꽃을 올린 모습입니다.)

민간단체에서 공영장례 상담업무를 맡기까지

서울시의 25개 자치구로부터 무연고 사망자 장례의전 의뢰 공문을 받고 나눔과나눔은 의전업체의 장례 예약에 맞춰 장례 준비를 합니다. 지자체에 연고자, 지인의 유무를 문의한 후 그들과 소통하여 장례에 참석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부고를 작성하여 홈페이지에 일정을 올리고 어렵게 얻은 생전 모습으로 영정사진 등을 만들기도 합니다.

돌이켜 보면 처음부터 상황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최근에야 서울시 공영장례 상담업무를 담당하며 고인에 관한 정보를 제공 받지만, 2015년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처음으로 지원했을 때만 해도 민간단체로서 장례를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공문협조를 받기도 어려웠고, 고인에 관해 알 수 있는 정보도 거의 없다시피 해서 마침 당일 장례에 참석한 참석자가 있을 경우에만 생전의 고인에 대해 겨우 알 수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무연고 사망자 장례 지원의 역사가 쌓여 나눔과나눔은 장례에 관한 고민을 전화상담 등으로 해결해 드리는 물론 ‘공영장례, ‘가족 대신 장례’, ‘내 뜻대로의 장례’ 등 정책들을 제안해 왔습니다. 그리고 2020년 나눔과나눔 활동가들은 고인의 생전 마지막 현장까지 찾아가는 등 활동의 영역을 점점 넓혀가고 있습니다.

 

202008001(사진 : 연고자와 지인이 참석하지 않은 무연고 사망자 장례식에서 자원봉사자가 조사를 읽고 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의 마지막 삶을 추적하다

8월 초 장례를 치른 무연고 사망자 ㄴ님은 서울시의 한 숙박시설에서 거주하다 7월 중순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나눔과나눔은 지자체를 통해 장례에 참석할 연고자가 없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습니다. 아무도 참석하지 않는 장례가 될 것 같아 안타까워하던 나눔과나눔 활동가는 공문과 함께 받은 수사기록에서 사망 당시 상황을 설명한 여관주인이 생전에 고인과 좋은 관계였다는 내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혹시라도 연락이 된다면 장례에 참석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고 활동가는 퇴근 후 여관으로 찾아갔고, 여관 주인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수사기록에서 확인한 대로 주인은 호의적이었고, 고인이 지내던 방도 선뜻 보여 주었습니다. “사람은 너무 좋은데 도박, 게임에 빠져 계셔서 돈을 버는 족족 다 날리셨어요.” 주인은 ㄴ과의 생전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종종 오만 원씩을 빌렸다가 일주일 내에 꼬박꼬박 갚는 걸 보니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신뢰가 생겨서 그 이후에도 몇 번 빌려주고 받고 했어요.”

ㄴ님은 가끔 주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서울 근교에 사는 여동생이 전화를 안 받아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기도 하고, 때가 되면 제사를 지내러 간다며 고향에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공문에 따르면 연고자가 없었는데, 주인이 말한 여동생은 법적인 관계는 아니었던 것으로 짐작이 되었습니다.

“방이 좀 더워서 힘들었나 봐요. 침대는 두고 바닥에서 주무시다 돌아가신 것 같더라고요. 여기 지내는 동안 여관방 벗어나서 어엿한 집 들어갈 거라고 일도 열심히 했어요. 제가 다른 일 알아다 봐준다고 했는데 그 와중에 돌아가셨어요. 안 됐어요.”

올해 장례를 치르면서 공문으로만 만났던 무연고 사망자들이 벌써 4백 명이 넘었지만, 살아계실 때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건 아주 드문 경험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4백 개 이상의 이야기는 함께 지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활동가는 공영장례 안내를 했지만 주인은 “그저 좋은 데로 가서 잘 사셨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인사를 나눴습니다.

 

이 글은 나눔과나눔 활동을 지지하는 부용구 활동가가 작성한 글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

 

8월 무연고 기초생활수급자

고재규, 김종순, 김성호, 전동필, 백영진, 김강철, 박창표, 신성호, 박재복, 한성권, 엄세춘, 최수연, 양응목, 이무성, 주치원, 전정례, 차정도, 안두헌, 이은옥, 장국태, 김용규, 신종은, 최정호, 김장기, 박순일, 김승택, 이선주, 김영배

 

8월 무연고 사망자

유병구, 박길용, 강운성, 윤태욱, 박만옥, 진규식, 박용남, 심정훈, 오재선, 김학철, 불상아기, 김종오, 고상훈, 소상정, 김영애, 이창길, 서찬범, 김철수, 배영승, 김소예, 허영자, 이종현, 김용천, 유승문, 불상

 

8월 저소득시민 사망자

박인수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쉰네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

(문구출처 : 마리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