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er day] 10월 21일 오늘은 ‘성수대교 붕괴참사 희생자 애도의 날’입니다.

20201021_성수대교 붕괴참사 합동위령제 현장사진

 

나눔과나눔은 성수대교 붕괴참사 26주기를 맞아 위령탑에 방문했습니다. 전 날에 구청에 연락해보니 위령제는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되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애도하러, 기억하러 오는 사람이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국화꽃 32송이를 사들고 찾아갔습니다. 차들이 달리고 있는 도로의 복판에 자그마한 주차장이 있었고, 마치 섬처럼 고립된 작은 공간에 위령탑이 있었습니다. 그 곳엔 유가족 분들이 분주하게 제물상을 차리고 계셨습니다. 오늘을 함께 기억하고 애도하러 왔다고 말씀 드린 후 위령제 준비를 도왔습니다.

 

20201021_성수대교 붕괴참사 합동위령제 현장사진

 

“이런걸 누가 기억해요…”

“저희가 기억하고 왔잖아요.”

26년동안 매년 빠지지 않고 합동 위령제를 지내오신 유가족 분들은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겠냐고 물어보셨습니다. 나눔과나눔이, 그리고 시민분들이 기억하고 있다고, 내년에도 함께 하겠다 약속드렸습니다.

 

20201021_성수대교 붕괴참사 합동위령제 현장사진

 

1994년부터 2020년 오늘까지. 유가족분들은 형, 딸, 아들, 아내, 남편을 기억하며 한결같이 위령제를 치러 오셨습니다. 유가족 대표분이 낭독하신 추도사에 적힌 바람은 세월호 어머님들의 바람과 똑 닮아 있었습니다.

 

20201021_성수대교 붕괴참사 합동위령제 현장사진

 

“이제 우리 유가족들의 단 한 가지 소망은 다시는 이 땅 대한민국에서 이와 같은 비극적인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랄뿐입니다.”

 

20201021_성수대교 붕괴참사 합동위령제 현장사진

 

앞으로 30주기가 몇 년 남지 않았습니다. 유족 대표분께서는 30주기 행사엔 발길이 끊겼던 유가족 분들, 특히 필리핀에 있는 아델 아이다 님의 가족분들이 함께 참여해주셨으면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픔을 잘 견디고 계시는지 걱정된다고 하시면서요.

 

20201021_성수대교 붕괴참사 합동위령제 현장사진

 

사회적 애도와 시민들의 위로가 필요한 성수대교 붕괴참사를 잊지 말아주세요. 함께 기억하고 애도해주세요.

 

성수대교 붕괴참사 희생자 사연

 

“사랑하는 아빠 보세요… 불효를 너무 많이 저질러 정말 후회스럽습니다. 아빠가 저를 때리셨을 때 저보다 1백배,1천배나 더 마음 아파하실 아빠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아직 덜익은 열매지만 비바람과 천둥.번개.서리를 이겨낸 아주 멋진 열매로 아빠앞에 서겠습니다… 부족한 저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를 혼낸거 너무 마음에 두지 마세요. 이런 기회가 없었다면 아빠가 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제가 얼만큼 발전되어야 하는지 모르고 지날 수도 있었잖아요….” 아버지에게 사랑이 담긴 편지를 남긴 채 떠난 화가지망생 이연수 님 (사고 당시 17세)

 

아이들을 좋아했고 시신 기증을 원했던, 국가에서 나온 보상금으로 어머님이 장학재단을 만든 이승영 님 (사고 당시 20세)

 

사고 당시 16번 버스를 운전했던, 팔순 노모를 모시며 사셨던 유성열 님 (사고 당시 46세)

 

친구들에게 강아지라고 불리길 좋아했던 이소윤 님 (사고 당시 15세)

 

생일을 이틀 앞두고 떠난 배지현 님 (사고 당시 16세)

 

곧 태어날 손자를 미처 보지 못하고 떠난 최정환 님 (사고 당시 55세)

 

서초동 비닐하우스촌 나무 그늘 아래에서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으니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 우리 열심히 살자”고 형제와 다짐했던 김중식 님 (사고 당시 31세)

 

미술관의 경비로 일하셨던, 철야를 마치고 귀가하다 떠난 성봉식 님 (사고 당시 21세)

 

월급 45만원 중 40만원을 필리핀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던 아델 아이다 님 (사고 당시 40세)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딸을 두고 떠난 지수영 님 (사고 당시 47세)

 

참치김치찌개를 좋아했던 조수연 님 (사고 당시 16세)

 

달리기를 잘하고 매사에 적극적이었던 황선정 님 (사고 당시 16세)

 

사과를 먹고 늦은 등교를 하다 떠난 장세미 님 (사고 당시 18세)

 

그리고 5년 뒤 장세미 님 곁으로 떠난 장세미 님의 아버지 장영남 님 (당시 54세)

 

그리고 미처 사연을 알 수 없었던 분들

 

강용남 (당시 52세)

김광수 (당시 29세)

김동익 (당시 45세)

김원석 (당시 40세)

김정진 (당시 66세) 

류진휘 (당시 42세)

문옥연 (당시 39세)

백정화 (당시 34세)

송근종 (당시 46세)

유상해 (당시 48세)

윤현자 (당시 49세)

이기풍 (당시 59세)

이덕영 (당시 50세)

이정수 (당시 40세)

이흥균 (당시 56세)

장영오 (당시 52세)

최정환 (당시 55세)

이지현 (당시 17세)

최양희 (당시 16세)

 

서른 세분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
(문구출처 : 마리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