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옥 칼럼]혈연의 종언(終焉), 관계의 탄생, 세 번째 이야기- 한계와 과제

2020년 보건복지부 지침에 ‘가족 대신 장례’가 마련되면서 혈연과 제도를 넘어 동행의 관계로 가는 첫걸음이 시작되었다. 2020년 9월에만 서울시 공영장례에서 두 분의 장례주관자와 함께 장례를 진행했고, 10월 구청을 통해 두 분의 연고자 지정 상담도 진행하고 있다. 또한, 10월 초, 연고자가 아닌 동성애 커플의 파트너가 장례를 할 수 있다고 상담한 내용을 페이스북 등의 소셜미디어에 올리자 페이스북만 2만 5천 명이 넘는 사람에게 ‘도달’되는 등 그 첫걸음에 대한 사회적 기대는 매우 높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와 달리 ‘가족 대신 장례’는 단지 첫걸음일 뿐이다. 아직도 현실적 한계와 넘어야 할 과제가 곳곳에 있다.
 
202011월 칼럼 (4)
[사진설명: 나눔과나눔 페이스북 게시물]

아직도 여전한 혈연 중심의 법과 제도

얼마 전 한 공증인 사무실에 방문했다. 기존에 장례를 약속했던 어르신들과 유언장을 새롭게 작성하는 공증 상담을 위해서였다. 가족 대신 장례를 신청할 때 ‘지속적 돌봄 관계, 사회적 연대 관계’로 장례주관자 지정 신청을 할 수도 있겠지만, ‘법률관계’로 유언장과 공증을 하면 아무래도 자치구청에 어르신과의 관계를 증명하는데 더 유용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얼마 전 서울시공익법센터 변호사님들과 상담을 하면서 유언장에 ‘유언집행자’를 지정하고 ‘유언집행자’가 장례주관자가 되도록 명시하는 것도 가족 대신 장례를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조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담해주신 공증인 사무소에서는 보건복지부의 ‘가족 대신 장례’ 지침을 보신 후 유언장에 유언집행자로 시신을 화장하고 장례를 집행하는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다른 법률관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보건복지부와 법제처의 유권해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즉, 공증은 ‘대항력’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유언집행자로 장례주관자를 지정한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공증까지 마쳤다고 해도, 의료법 또는 다른 법률과 충돌하게 되면 강제집행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게 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공증 원칙상 이러한 공증은 하지 못한다고 한다.
 
202011월 칼럼 (3)

장례와 관련해서 혈연 중심의 법으로는 의료법에서 사망진단서 발급 조항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의료법 제17조 제1항에서는 사망진단서 발급이 “환자가 사망하거나 의식이 없는 경우에는 직계존속·비속, 배우자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에게만 가능하고, “환자가 사망하거나 의식이 없는 경우로서 환자의 직계존속·비속, 배우자 및 배우자의 직계존속이 모두 없는 경우에는 형제자매”에게도 가능하다고 규정되어 있다. 즉, 사망진단서 발급은 자녀와 부모, 그리고 배우자와 배우자의 부모가 가능하며, 이들이 모두 없는 경우에만 형제자매도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사법’)’에 따라 연고자(장례주관자) 지정을 받았다고 해도 의료법과는 여전히 충돌될 수밖에 없게 된다. ‘가족 대신 장례’가 장사법에 근거해 가능해졌어도 새롭게 법률을 개정한 것이 아니라, 보건복지부 장사업무안내 지침만을 변경하다 보니 발생한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혈연 중심의 법·제도의 한계뿐 아니라 행정절차에서도 여러 가지 한계가 있다.
 

행정절차의 첫 번째 한계-고인은 무연고자가 되어야만 한다.

2020년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가족 대신 장례’의 신청서 양식을 보면 “무연고사망자 연고자(장례주관자) 지정 신청서”로 되어있다. 다시 말해 고인의 연고자(배우자, 자녀 및 부모, 형제자매 등)를 찾아본 후에 연고자가 없거나, 또는 알 수 없는 경우, 그리고 연고자가 시신을 위임해서 무연고자가 되어야만 ‘가족 대신 장례’를 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보건복지부는 ‘가족 대신 장례’의 기본 방향을 “사망자 의사를 존중하고 사망 후 장례절차·방법 등에 대한 생전 자기결정권을 보장한다”라고 언급했다. 현재 서울시의 무연고사망자 장례는 사망 후 평균 30일 정도가 소요된다. 다시 말해 ‘가족 대신 장례’를 하기 위해서는 평균 30일을 기다린 후에야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과연 이러한 기다림이 생전 고인이 원했던 바인지, 그리고 생전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방향인지도 의문이다.
지난 9월 29일 장례를 한 장○숙 님의 친구분은 장례주관자 지정 신청을 하고 40년 지기로 고인의 마지막 유언에 따라 고인의 시신을 인천 앞바다에서 해양장으로 떠나 보냈다. 고인이 평소 “나 죽으면 강가에 뿌려달라”고 했던 소원을 꼭 지켜주고 싶었던 친구분께서는 구청 담당 주무관에게 매일같이 전화했다. 고인은 9월 10일에 돌아가셨고, 연고자를 파악한 후인 9월 25일 장례주관자 지정 신청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9월 29일 가족 대신 장례를 할 수 있었다. 고인 사망 후 19일이 소요되었다. 그 19일의 기다림의 심정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가족 대신 장례’의 첫걸음은 이러한 기다림을 전제로 한다. 고인의 생전 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해 생전에 가족 대신 장례를 사전에 신청할 수는 없는 것인지 법·제도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개인정보 보호법」이 큰 걸림돌이다. 생전에 가족들에게 연락해서 사전에 위임을 받고 싶어도 상대방이 연락하는 것을 거부하면 별다른 방법이 없다. 이제는 1인 가구가 대표적 가구 형태가 되었다. 그리고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법·제도도 함께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이다. 법률전문가들에게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법·제도에 반영할 수 있을지 함께 논의하는 공론의 장이 조속히 마련되어야 한다.
 
202011월 칼럼 (1)
[사진설명: 장례주관자가 된 40년 지기 친구가 화장 예배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행정절차의 두 번째 한계-고인은 주중에 사망해야만 한다.

‘가족 대신 장례’는 개인적 친분이나 사회적 연대에 따라 장례주관을 희망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고인 사망한 후에 신청하는 제도이다. 중요한 사항은 ‘사망한 후’이다. 다시 말해 생전에는 신청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금요일 저녁에 사망했을 경우, 또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사망한 경우는 어떻게 신청할 수 있을까? 대답은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한다.”이다. 지난 8월 초에 대구에서 탈시설 장애인 최○창 님이 토요일 새벽에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돌아가셨다. 함께 활동하던 단체에서는 이 분의 장례를 하고자 했다. 하지만 연고자(장례주관자)가 되기 위해서는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했다. 결국, 월요일이 돼서야 구청에 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었다.
장례는 사망하고 바로 장례식장에 안치한 후 빈소를 마련하고 통상 삼일장으로 치러진다. 금요일 저녁에 돌아가셨다면, 보통은 일요일에 화장을 진행한다. 그런데 ‘가족 대신 장례’를 희망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주말에 사망한 고인의 장례를 위해서 장례가 끝나야 할 시점이 되서야을 연고자(장례주관자) 지정 신청서를 접수할 수 있다. 연고자(장례주관) 지정 신청으로 ‘가족 대신 장례’를 원하는 분은 반드시 주중에 돌아가셔야만 한다. 그래야 하루라도 빨리 이 세상과 이별을 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죽은 날을 주중으로 정할 수 있을까?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행정절차의 세 번째 한계- 장례주관자는 공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자치구청에서 연고자(장례주관자) 지정 통보를 했다. 그러면 이제는 연고자(장례주관자)가 생전 고인의 의사에 따라 장례절차를 진행할 수 있을까? 앞에서 언급했던 기존 혈연 중심의 법·제도로 인해서 불가능하다. 우선 장례주관자가 병원에서 가서 사망진단서를 발급받고자 한다면 병원에서는 직계가족도 아니고, 형제자매도 아니라는 이유로 발급을 거부할 게 자명하다. 사망진단서 없이는 장례절차 시작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장례식장은 어떨까? 마찬가지로 연고자가 아닌 사람에게 시신을 내어 줄 수 없다고 할 거다. 마지막 단계인 화장장은 또한 어떨까? 모든 화장장이 가족관계 증명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화장장에서 연고자 관계를 확인해야만 화장을 진행할 수 있다. 실상이 이렇다 보니, 연고자(장례주관자) 지정과 동시에 병원, 장례식장, 화장장으로 자치구청에서 공문을 시행해야만, 이 공문을 근거로 장례절차를 진행할 수 있게 된다. 법률이 아닌 보건복지부 지침으로 마련한 제도의 한계로 산 넘어 산인 형국이다.

2020년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가족 대신 장례’의 첫걸음은 분명 의미가 있다. 하지만 아직 한계와 과제 또한 명확해 보인다. 그 누구도 혼자서는 온전할 수 없다. 그래서 관계가 더 중요하게 된다. 하지만 그 관계가 더는 혈연과 법적 관계가 사회관계의 전부가 아닌 시대에 살게 되었다. 코로나 19의 상황에서 사회는 한바탕 전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사회적 공백, 관계의 공백도 경험하고 있기도 하다. 이제는 혈연과 제도를 넘어 동행의 관계로 가기 위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더욱 절실하게 되었다. 진정한 혈연의 종언(終焉)을 선언하는 그래서 공동체 안에서 누구나 존엄하게 살다가 존엄하게 삶을 마감할 수 있는 그래서 단 한 사람도 살아가는 데 있어서나, 죽음에서도 소외되고 차별받지 않는 그런 세상을 오늘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