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장례지원] 눈에 보이지 않는 벽, 고립

[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10월 장례이야기
눈에 보이지 않는 벽, 고립

 

20201000002(사진 : 장애인으로 살았던 삶을 마감한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에서 추도문을 읽고 있습니다.)

장애인 무연고 사망자

무연고 장례를 치르면서 만난 수많은 사망자들 중 유독 마음이 아픈 사연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아기를 만났을 때, 2~30대의 청년을 만났을 때, 고아로 자란 사연, 그리고 장애가 있는 사망자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2018년 이후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서울시 공영장례 의전업체를 선정하여 고인에 대한 제대로 된 마지막 예우를 갖춰 장례를 진행하지만, 예전의 경우 운구가 진행될 때 시신을 모신 관의 뚜껑이 떠 있는 광경을 가끔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공문에 기록된 바가 없어 장례를 치르기 전에 장애유무를 알 수 없었던 상황이라 운구 현장에서 참혹한 광경을 마주하고 많이 놀라기도 했습니다.
10월 초에는 두 분의 장애인을 무연고 장례로 모셨습니다. 한 분은 어려서부터 고아원에서 자라 혼자 사시다 거주지에서 돌아가신 채 발견되었고, 제적등본상 연고자 미상으로 무연고 사망자가 되었습니다.
또 다른 한 분은 지역의 복지관에서 돌보던 뇌병변장애인으로 요양병원에서 사망한 무연고 사망자 ㄱ님입니다. 시신을 위임한 형제는 위임사유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데려온 업둥이로 열두 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사망한 후 독립하겠다며 집을 나간 후 45년간 생사를 모르다가 사망소식을 들었다.”고 적었습니다.
장례에 부득이한 사정으로 참석을 못하게 된 복지사 한 분이 장문의 메시지로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어르신은 저희 단지에 혼자 이사 오시면서 뵙기 시작했어요. 사고로 뇌병변장애를 갖게 되신 이후 거동의 불편함도 크고 편마비로 말씀도 어눌해 사람 만나는 것도 싫어하셨던 어르신이 동네 이웃이 한두 분씩 생기면서 복지관에 나오셔서 식사도 하시고 모임도 하셨어요. 언젠가부터는 전동휠체어가 아니면 걷기가 불편해지셨지만 사람을 좋아하셨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4~5배 힘들어도 나들이며 모든 활동에도 다 참여하신 분이셨어요.”
청소년들이 안부 방문을 가면 ㄱ님은 ‘어르신 말고 형님’으로 불러달라며 분위기를 밝게 만들 만큼 친화력이 있었습니다. 수급비를 받으면 근처에 혼자 사는 동생들을 불러 밥을 사기도 해 동네에서 꽤 인기 있는 편이었습니다.
밝은 미소 뒤에는 아픈 면도 있었는데, ㄷ님은 이혼 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자녀를 그리워하며 살았습니다. 몸이 안 좋아져 혼자 지내기 힘들어진 이후 요양병원으로 옮기고 나서 복지관에서는 가족들과 만날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끝내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살면서 맺었던 인연들이 끊어지면서 급격히 쇠약해진 ㄷ님은 결국 요양병원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습니다.

 

202010000003(사진 : 30대에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에 참석한 지인이 무연고 장례에서 조사를 낭독하고 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가 된 청년들

10월에는 젊은 나이에 사망해 무연고자가 된 두 분의 장례가 있었습니다. 한 분은 25세, 또 다른 한 분은 33세에 세상과 이별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 ㄴ님은 1994년생으로 지난 9월 초 거주하던 곳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사인은 ‘불상’으로 연고자가 없어 발견된 지 한 달이 지나고서야 무연고 장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제적등본상에 ㄴ님은 열 살이 되기 전 부모의 이혼을 겪었고, 아버지가 사망한 후 호주가 되었습니다. 같이 지내던 어머니는 지병으로 힘들게 삶을 이어나가던 중 ㄴ님이 갓 스물이 되던 해에 돌아가셨습니다.
홀로 세상에 남겨진 ㄴ님은 의무가 아니었지만 입대를 결정했고, 제대하고 난 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며 살았지만 결국 거주하던 반지하방에서 고립된 삶을 살다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3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ㄷ님의 장례가 10월말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나눔과나눔 활동가는 아침 일찍부터 지인으로부터 ‘이미 승화원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지방에 거주하는 지인은 혹여 장례 시간을 놓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몸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사실 지인분은 지자체로부터 서울시 공영장례 상담업무를 하고 있는 나눔과나눔의 연락처를 안내받고 장례일정이 확정되기까지 마음을 졸여왔던 차였습니다.
ㄷ님과는 20여 년 전 주유소에서 일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14살 때부터 주유소에서 일하던 ㄷ님이 가엾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지만 지인은 자세한 집안 사정을 묻지는 않았습니다.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점점 더 각별해진 두 사람은 주유소를 그만둔 후에도 오랜 시간 형제처럼 지내왔습니다. 장례가 시작되기 전부터 고인과의 사연을 털어놓던 지인은 빈소에서 진행된 장례의식 중 조사를 낭독하다 끝내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어린 나이에 생계를 책임지며 일하던 모습이 생각나 울컥한 마음에 지인은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9월말에 이 녀석이 입원해 있던 병원에 면회를 갔는데, 못 보고 왔어요. 코로나 때문에.”
독성쇼크증후군으로 병원에 입원할 때도 병원비를 대신 내준 지인은 그날 ㄷ님을 보지 못한 게 한이 되었습니다. 이튿날 사망했다는 사실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ㄷ님의 유가족으로 어머니와 누나가 있었지만 오랜 시간 가정형편이 좋지 못해 따로 살았고 장례도 치를 수 없어 끝내 무연고 사망자가 되었습니다. ㄷ님 사망 후 어머니를 찾아간 지인은 “지자체에 장례 후 봉안결정을 해주면 5년 안에 유골함을 찾아가겠다고 사정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몸이 건장해 여러 가지 운동도 하고 씩씩하게 살았던 ㄷ님의 생전 모습이 생각난다는 지인은 가지고 있던 사진 중에서 영정사진을 만들어 왔습니다. 비록 생전에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어린 나이에 자신의 꿈을 접고 생계를 위해 일을 했지만, 사는 동안 각별한 정을 나누며 마지막 순간까지 배웅해준 지인이 있어 마음이 따뜻했던 장례였습니다.

 

2020100000044(사진 : 노숙인이었던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에 참석한 홈리스인권단체 활동가가 눈물을 흘리며 산골하고 있습니다.)

“노숙인은 사람 취급도 안 해”

10월 말 장례를 치른 무연고 사망자 ㄹ님의 장례식에는 한 홈리스 인권단체 활동가들과 지인들이 참석했습니다. ㄹ님과의 인연은 2016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서울시의 한 기차역 대합실에서 활동가는 홈리스 권리 등에 관한 내용의 전단지를 나눠 주고 있었고, 어느 한 사람이 관심을 보였습니다. 얼굴 가까이 전단지를 가져간 채 내용을 들여다보고 있는 ㄹ님에게 활동가는 말을 걸었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60대가 넘은 남성은 원체 수줍어하는 성격이라 말을 꺼내기를 어려워했고, 활동가와 만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힘들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ㄹ님은 출생신고도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고, 지방에 형제들이 있지만 단절되어 산 시간이 오래되었다고 했습니다. 서울에 올라와서도 거처를 정하지 못하고 노숙을 하며 역대합실에서 전전하던 중 활동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노숙인을 사람 취급도 안 해.”
서울역의 노숙인종합지원센터에 갔을 때 ㄹ님은 자신을 대하는 직원들의 불친절한 태도에 마음의 상처를 입고 홈리스단체 활동가와 동행하지 않으면 그곳에 발을 들여놓는 것조차도 싫어했습니다.
활동가들의 도움으로 ㄹ님은 동주민센터에 가서 지문등록을 하고 주민등록증을 만들 수 있었고,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얻어 주거지원을 받아 고시원에서 살았습니다. 코로나로 힘든 상황에서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되어 고맙다는 이야기도 하며 최근에는 휴대폰이 생겨 사용 방법을 알려달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달여 전 경찰로부터 ㄹ님이 한강에 투신해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활동가는 믿어지지 않아 실족사가 아닌지 문의를 했지만 CCTV를 통해 ㄹ님의 마지막 모습을 확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방에 사는 형제들은 ㄹ님의 시신인수를 포기했고 결국 무연고 사망자가 되었습니다.
“사망하기 몇 일전 역 대합실에서 뵈었을 때 왠지 멍한 표정으로 의식이 흐릿해 보이셨어요.” 활동가는 그때 더 적극적으로 행동을 하지 못한 자신을 탓했습니다. 서울시립승화원 공영장례 전용빈소 제단에는 활동가가 준비한 영정사진이 올랐습니다.
“뵐 때마다 항상 남방차림이라 여쭤봤더니 한강에서 빨래를 하셨대요.”
남방을 입은 60대 남성의 모습은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장례절차가 진행되고 시간이 지나 사진은 유택동산으로 옮겨졌고, 그 앞에서 활동가는 흐르는 눈물을 참아가며 ㄹ님의 유골을 뿌렸습니다.

 

2020100000005(사진 : 10년 넘게 실종되었던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 발견 당시 성명불상이었으나 서류 등의 정황으로 추정된 이름으로 위패를 들었습니다.)

고립사, 그리고 노인자살

서울시 공영장례를 통해 10월에 장례를 치른 무연고 사망자는 모두 55명이고, 이중 70대의 비율이 29.1%로 가장 높았습니다. 그리고 고립사는 22명, 외인사(자살 포함)는 5명이었습니다.
10월 중순 장례를 치른 무연고 사망자 ㅁ님(71세)은 9월 중순 무료도시락 배달업체에서 도시락 수거확인을 하던 중 창문 틈으로 누워 있는 모습이 발견되었습니다. 배달업체 직원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동주민센터 사회복지사가 직접 방문했으나 인기척이 없었고 경찰과 119에 신고해 사망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혼 후 혼자 살던 ㅁ님에겐 직계가족 생존자가 아무도 없었고 거주하던 곳에서 고립되어 살다 사망해 무연고 사망자가 되었습니다.
10월 말 장례를 치른 ㅂ님은 발견 당시 백골 시신으로, 거주하시던 주택을 경매로 입찰받은 낙찰자가 명의변경을 하기 위해 실종신고를 함으로써 발견되었습니다. 실종된 기간은 5년이 훨씬 넘었고, 실종기간이 종료되어 낙찰자가 주택에 방문했을 때 고인은 다락방에서 겨울옷을 입은 채 백골화한 상황이었습니다. 적어도 1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시신은 계약관계서류 등을 통해 이름이 추정되었고 2020년 10월 말에서야 무연고 사망자가 되어 장례를 치렀습니다.
10월에는 외인사(자살)로 분류되는 다섯 분의 무연고 장례를 치렀습니다. 사망자는 모두 55세 이상이었고, 이중 81세, 90세에 안타까운 선택을 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서울시 10월 무연고 사망자 중 65세 이상 노인 비율은 60%였고, 마지막 삶의 주소가 쪽방, 고시원, 여인숙, 시설, 요양병원 등 홈리스 상태였던 경우는 25명으로 약 45.5%였습니다. 시신위임서를 작성한 연고자 중 형제는 56%를 차지했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무연고 사망자가 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사망연령대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가 늘어나는 원인에 노인빈곤, 노인자살이 무관하지 않음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나눔과나눔 활동을 지지하는 부용구 활동가가 작성한 글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

 

10월 무연고 기초생활수급자
김영배, 장남숙, 이주하, 이용복, 함경림, 김병률, 김유남, 이상규, 허철수, 오승철, 신명자, 박성희, 강석중, 송호윤, 최섭, 김옥선, 염형섭, 이태호, 장춘자, 고진, 김배식, 전명성, 정규영, 김해국, 김성욱, 신상철, 오재영, 이남선, 김정숙, 김호식, 한창완, 오창식, 이영환, 백점엽, 이병하

 

10월 무연고 사망자
김은희, 이성근, 안상용, 박병권, 서정업, 박진홍, 전태준, 김학재, 전용준, 이계남, 오국종, 강홍석, 오재주, 서주영, 김용열, 진권태, 라경재, 강영희, 정미라, 고선희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쉰다섯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
(문구출처 : 마리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