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장례지원] 매일 무연고 장례를 치릅니다

[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12월 장례이야기
매일 무연고 장례를 치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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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이름이 확인되지 않아 무연고 사망자가 된 아기의 위패)

무연고 사망자가 된 아기들

2020년 12월에는 이름이 없거나 확인되지 않은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가 몇 차례 있었습니다. 그중 두 번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의 장례였습니다.
12월 말 장례를 치른 한 무연고 사망자는 지자체로부터 받은 무연고 사망자 장례의뢰 공문에 성명불상으로 지난 11월 초 서울시의 한 노상에 방치되어 사망한 영아시신이었습니다. 아기는 베이비박스가 있는 한 종교단체의 골목길 플라스틱 통 위에 보자기에 싸인 채 놓여 있었습니다. 새벽에 발견되었을 당시 온수에 담가 마사지를 해보았지만 아무런 반응 없이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검안서에 기록된 바로 아기의 몸에는 탯줄이 연결된 태반이 부착되어 있었고 분만 당시 의료 처치가 없었습니다. 사인은 ‘저온 환경에 방치 및 유기로 인한 신생아 저체온증’으로 추정되었습니다. 20대 초반에 아이를 낳은 엄마는 스스로 키울 수 없는 상황에 도움의 손길을 찾던 중 베이비박스를 알게 되었지만 박스 안에 넣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해 참변이 일어났고, 결국 영아유기 방치 혐의로 수감되었습니다.
태어나 얼마 살아보지 못한 영아의 관 앞에서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회적 도움을 받지 못해 생긴 비극적인 부고를 보고 지방의 한 의류업체에서는 손수 배냇저고리를 제작해 나눔과나눔(서울시 공영장례 상담업무 진행)으로 보냈고, 운구가 시작되기 전 아기의 관 위에 놓여졌습니다. “아가야 우리가 사랑해, 안녕.” 배냇저고리에 수놓인 글귀를 마지막으로 아기는 세상과 이별했습니다.
또 한 번의 아기 장례는 12월 중순에 있었습니다. 2017년 태어나 어린이병원에서 지내다 지난 2020년 12월 초 무뇌수두증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사망한 무연고 사망자였습니다. 같은 날 장례를 치른 또 다른 무연고 사망자 역시 어린이병원에서 함께 지내다 지난 2020년 11월 말에 폐렴으로 사망한 40대 후반의 여성이었습니다. 장애를 안고 태어나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 채 베이비박스에 놓였다가 발견된 이후 평생을 병원 안에서만 지내다 5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무연고 사망자가 된 고인의 관은 아기의 관처럼 작았습니다. 입관을 진행했던 의전업체 직원의 증언에 따르면 여성의 몸이 둥그렇게 굽어 있었고, 같이 장례를 치른 아기보다 오히려 몸이 작았다고 합니다. 사지마비성 뇌성마비로 성장을 멈춘 채 오랜 시간을 아기처럼 숨만 쉬며 지내다 끝내 무연고자가 되어 세상과 이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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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중학교 동창들이 참석한 한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

서른 명이 넘는 친구들이 장례를 치르지 못한 이유

12월 중순 한 무연고 사망자 장례식에 이례적으로 많은 분들이 참석했습니다. 고인의 중학교 동창들이라고 밝힌 이들은 친구의 영정사진을 준비해 제단 위에 올렸습니다. 40대 후반의 무연고 사망자 ㄱ님은 2020년 9월 말 거주하던 고시원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고, 사망 당시 이미 시간이 꽤 흐른 뒤였습니다.
친구의 사망 소식을 듣고 황망한 마음에 친구들은 장례를 치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찰로부터 ㄱ님에게 이복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동생은 해외에 거주하는 관계로 장례의사가 없고 시신인수를 거부하여 ㄱ님은 결국 무연고자가 되었습니다. 친구들은 장례를 치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았습니다. 납골당도 30년 동안 안치할 수 있는 곳으로 마련했지만 연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장례를 치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친구들은 경찰로부터 “이런 경우 유가족은 당신들이 고인의 재산을 노리고 장례를 치르려 한다는 의심을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의 선의가 자칫 나쁘게 비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진척시키지 못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현실은 ‘가족 대신 장례’가 시행되는 데 장애물들이 많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생전에 ㄱ님은 일식 요리사였습니다. 영정사진에는 당시에 찍었던 고인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똘똘하면서 착하고 좋은 친구였어요.” 운구가 진행된 후 공영장례 전용빈소에 들어온 친구들은 미리 준비해온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과 술을 제단에 올렸습니다. 고인예식이 끝나고 친구들은 생전의 고인을 생각하며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화장이 끝난 후 유골을 수습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친구들은 이른 나이에 떠난 친구를 생각하며 안타까움의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서울시립승화원 유택동산에서 산골 절차가 끝나고 친구 중 한 명이 뒤늦게 장갑을 꺼냈습니다. 고시원에서 홀로 살다 고립사한 친구가 추운 날씨에 세상과 이별하는 게 미안해 준비한 장갑. 규정상 함께 태우지는 못했지만 보고 싶은 친구를 그리며 마지막으로 준비한 선물이어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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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지 못한 자녀가 남긴 메시지)

가족의 장례를 치르지 못한 미안함

서울시 공영장례가 시작된 지 서너 해가 넘어가고 있습니다. “장례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사회가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여 함께 애도를 할 수 있도록 시간과 공간을 제공한다.”는 취지에 부합해 나눔과나눔은 무연고 사망자 문제에 공감하는 자원봉사자들과 고인과 생전에 함께 지냈던 지인들은 물론 경제적 이유 등으로 장례를 치르지 못해 가족의 시신을 위임한 유가족들이 장례에 참석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장례식에 참석한 유가족들을 대하는 건 항상 어렵습니다. 고인에 대한 궁금증에 이것저것 조심스레 물어보지만 굳게 채워진 유가족의 입을 여는 건 쉽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쌓였던 감정들을 장례식에서 만난 낯선 이에게 일일이 꺼내놓지 못하는 그들의 사연은 정성껏 치러지는 장례절차가 끝난 뒤에야 겨우 한마디 듣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무연고자라 함부로 할까 싶어 걱정했는데…….”
12월 말 무연고 사망자 ㄴ님의 장례에 젊은 남성 두 명이 참석했습니다. 장례 준비 단계에서 지자체 담당자로부터 참석자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빈소로 들어오는 갑작스런 방문에 놀랐지만 곧바로 고인의 자녀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지난 11월 말 서울시의 한 요양병원에서 사망한 ㄴ님의 장례에 참석한 두 아들은 과묵한 표정으로 안내에 따랐습니다. 마지막으로 고인을 만났을 때가 둘째 아들은 20년 전, 큰아들은 8년 전이라고 합니다. 계산을 해보니 갓 스물이 넘은 듯한 둘째 아들은 갓난아기였을 때 아버지와 헤어졌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살면서 아버지의 존재는 잊고 살았을 법합니다. 고인에 대한 질문에 단답형으로만 대답하던 두 아들은 아버지를 추모하는 리멤버 카드에 “아빠, 서울에 자주 올라가야 했는데 미안해.”, “아빠, 미안해.”라고 적었습니다. 단절된 삶이 글귀에서 보이는 듯했습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아버지의 장례식이 어색한지 쭈뼛거리는 둘째 아들에게 나눔과나눔 활동가가 조사를 부탁하고, 술도 올려달라고 요청하니 서투른 몸짓으로 따라주었습니다. 두 아들에게 이날의 장례가 어떤 의미로 남을지 궁금했습니다.
사흘 후 ㄷ님의 무연고 장례식에 참석한 딸은 남자 친구와 함께였습니다. 지자체로부터 장례의뢰 공문을 받고 연락을 했을 때 울먹이던 앳된 목소리의 딸은 한 손에 하얀 국화 꽃다발을 들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건 3개월 전이었습니다. 지난 12월 초 거주하던 곳에서 사망한 ㄷ님의 소식을 듣고 딸은 아버지가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줄 정말 몰랐다고 했습니다. 떨어져 산 지는 오래되었지만 가끔 연락을 주고받을 때 아버지는 딸에게 아프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세상에 나와 고군분투하는 딸에게 전혀 내색조차 하지 않았던 아버지. 딸은 어려운 처지에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지 못했습니다. 무연고자로 확정되어 화장일을 기다리던 중 장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딸은 어렵게 남자 친구에게 동행을 부탁했습니다. 장례가 진행되고 한 발 떨어진 자리에서 조용히 이를 지켜보던 남자 친구는 “다른 애들도 부르지 그랬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를 듣고 딸은 “무슨 자랑이라고 …….”라고 대답하고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축 처진 딸의 어깨가 유난히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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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딸이 무연고 사망자가 된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내 마음 편하자고 자연장 했어요”

12월 말 나눔과나눔 활동가는 무연고 사망자 ㄹ님의 장례에 참석을 희망하는 유가족과 몇 차례 통화를 했습니다. 화장 후 자연장을 원한다는 내용으로 자세한 절차를 안내했습니다. 통화를 할 때마다 유가족이 오열하는 바람에 안내가 쉽지 않았는데, 경제적으로 힘들어 병원비, 안치비, 장례비 등을 부담하지 못해 시신 인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며 마음이 너무 아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장례에 참석한 딸은 30년 전 가정폭력에 시달렸고, 그 때문에 아버지와 헤어져 살았던 사연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심한 구타를 당했던 어머니는 딸이 아버지의 장례식에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심하게 화를 냈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을 괴롭혔던 남편을 자연장까지 하겠다는 딸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딸은 사실 아버지의 얼굴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기에 혼자라도 장례식에 참석해서 아버지를 보내고 싶었다고 합니다. 때마침 고인의 여동생이 빈소에 도착했고, 두 사람은 보자마자 서로를 부르며 오열했습니다.
고모는 조카가 장례식에 참석하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도 못되게 군 데다 애비 노릇도 제대로 못한 아빠라 죽었다는 소식 듣고 안 오겠지 싶었어요.”
고모는 조카가 영정용 사진도 보내고 자연장도 하려고 했다는 말을 듣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빈소에서 만난 조카는 고모를 보고는 주저앉아 오열했고, 그런 그를 고모는 애처롭게 다독였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조카의 나이를 듣고 고모는 단절되었던 30년 전 고인의 나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가족들은 서로 헤어지고 연락 없이 지내다 ㄹ님이 행려환자로 한 시설에 수용되어 있다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지만 다시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내 마음 편하자고 자연장 하는 거예요. 아버지는 사람 도리 못 하고 살았지만 나는 아빠한테 이만큼 했다고 이야기하려고요. 사는 동안 너무 미웠는데 관 들어오는 거 보니까 마음이 정리가 되네요.”
딸은 장례절차를 진행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장례를 통해 누군가를 용서하게 되었다는 딸의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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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가족 대신 장례 캠페인에 참여한 나눔과나눔 임정 활동가)

2020년 나눔과나눔이 마지막을 함께한 665명

2020년 한 해 동안 나눔과나눔은 서울시 공영장례로 660명의 장례를 함께 치렀습니다(2019년 423명). 그중 658명은 무연고 사망자, 2명은 저소득시민이었습니다. 이중 기초생활수급자는 396명이었습니다. 2018년 5월 서울시 공영장례가 시작되고 처음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 올해부터는 모든 분의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는 사실은 의미 있는 점입니다. 그동안 장제급여를 받고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렀지만 무연고 사망자 통계에서 누락되었던 기초생활수급자 사망자를 공영장례 대상으로 확대함으로써 사각지대가 없어진 것입니다.
나눔과나눔은 이 외에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네 분의 장례와 나눔과나눔에 의뢰한 한 분의 장례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장례를 치른 모든 이름들은 나눔과나눔 홈페이지(goodnanum.or.kr)에서 ‘2021년에도 기억해야할 665명의 이름들’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20년 한 해 서울시 공영장례는 코로나19 대유행을 경험하며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자원봉사자의 활동이 제한되었고,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한 유가족과 지인들의 불참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공영장례를 통해 ‘가족 대신 장례’와 ‘자연장’의 사례들이 가능해졌고, 이는 SNS 홍보를 통해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를 높이는 데 일조했습니다. 인권과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희생된 이들에 대한 사회적 애도의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슈가 되었던 2020년입니다. 공영장례라는 제도가 확고하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무연고 사망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이뤄지는 2021년을 기대해봅니다.

 

<이 글은 나눔과나눔 활동을 지지하는 부용구 활동가가 썼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

 

12월 무연고 사망자
전명길, 남영순, 성명미상, 박건숙, 심상훈, 신종남, 정례순, 김영선, 서완석, 오한탁, 승일주, 이상준, 이은선, 최종복, 조문길, 김용범, 장정걸, 전은규, 전영자, 이형진, 이지봉, 김응구, 강상복, 주명균, 임향심, 정하선, 김앵란, 무명아기, 고행일, 길용호, 김서명, 장기봉, 정병화, 서창국, 박옥순, 윤인재, 김재웅, 김인택, 조복례, 이인환, 이효상, 성명불상, 김송곤, 오남진, 봉경윤, 김천옥, 허정범, 이영지, 엄시백, 최돈웅, 이승우, 오명환, 최운수, 이병구, 유삼술, 최영수, 남영식, JIN LONGHUA, 이현구, 옥남일, 김갑재, 정복화, 이문규, 반재석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예순네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
(문구출처 : 마리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