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장례지원] 고 박성근님 고이잠드소서

광주에서 태어나서 전북에 주소를 두고 계셨는데 왜 영등포 문래동 길 노상에서 돌아가셨을까?

“무연고사망자 시체처리의뢰” 팩스를 받고 고인의 삶에 질문을 합니다. A4용지 두어장에 적혀 있는 고인의 삶의 단편으로는 이러한 질문에 답변을 할 수 없습니다. 단지 고인의 삶의 참 험난한 괘적이었구나 하는 추측을 할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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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이 사망한 위치를 보니 영등포 쪽방촌과 멀지 않은 것 같아서 영등포 홈리스 드람인센터인 “햇살보금자리”에 혹시 고인을 알고 계신 분이 있는지 확인 부탁을 드렸습니다. 어쩌면 고인과 술한잔 함께 나눴을, 잠시지만 마지막 삶을 함께 했을 분들과 마지막 인사라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드릴 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에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고인의 이름이 등록은 되어 있지만 고인과 특별하게 인연을 나눈분은 없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습니다. 너무 욕시을 냈는지 아쉬움도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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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준비를 위해 우선 고인이 계신 장례식장에서 빈소가 있는지 확인하고 장례식 준비를 부탁드렸습니다. 이번에는 다행입니다. 빈소도 있고 장례식장이 한가했습니다. 그리고 새민족교회 목사님께 영결식 기도를 부탁드리고, 장례식장에서 가까운 햇살보금자리 사회복지사 선생님께 영결식 참여를 부탁드렸습니다. 언제나 처럼 무연고사망자 장례식은 급하게 진행되다보니 장례식에 참여할 자원봉사자를 모집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함께 해주시는 목사님과 자원봉사자 분들이 있어서 항상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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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1950.2.16생으로 2015. 9.10. 새벽 4시경에 문래동 길가에서 66년의 삶을 마감하셨습니다. 한국전쟁이 있던 해에 태어나서 참 한국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겪었을 고인을 생각하니 참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2015년 동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데 한끼 식사와 편하게 누울 한평의 숙소도 제대로 허락되지 않았을 대한민국 서울의 현실에 마음을 더울 쓰라리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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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과 동시에 가족을 찾는 동안 한 달을 차가운 냉동고에 계셔야 했습니다. 결국 가족이 나타나지 않았는지 무연고사망자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나눔과나눔이 올려드리는 국화꽃 한송이와 술한잔 받으시고 화장장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고이잠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