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장례지원] 객사(客死), 아사(餓死)

[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11월 장례이야기 객사(客死), 아사(餓死) 가을과 겨울이 만나는 달 11월에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았습니다. 어린 딸과 헤어져 평생을 그리워만 하다 홀로 세상과 이별한 아빠, 사춘기 때 부모의 이혼과 재혼으로 가출한 오빠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 이복여동생, 평생을 한 방에서 함께 지내다 아들을 먼저 보내고 임대료 걱정이 앞선 노모(老母) 등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또 다른 아픈 사연들을 세상에 남겼습니다. 길에서 죽고, 굶어 죽는 무연고 사망자의 비참한 현실 앞에 겨울이 한 발짝 더 들어왔습니다.   (사진 : 생전에 가족처럼 고인을 돌보던 지인이 무연고 사망자 장례식에서 헌화하고 있습니다.) 가족 대신 가족이 되어준 지인 11월 초 장례를 치른 무연고 사망자 ㄱ님은 50대 초반의 여성으로 지난 10월 중순 거주하던 고시원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연고자인 오빠는 동생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구구절절한 이유를 시신위임서에 써내려갔습니다. “동생과…

자세히 읽기

[나눔장례지원] 고 이남선 님, 고이 잠드소서.

"착하고 똑똑한 오빤데, 결혼도 못 하고...어머니가 사기당해서 전 재산을 탕진하는 바람에 그걸 해결하려고 재판을 하다가 정신이 그만...." 80이 넘은 오빠를 보내는 여동생의 마음은 안타까움으로 가득했습니다. 빈소 앞에서 오빠의 영정사진을 보면서 한참을 소리 내 흐느껴 우셨습니다.   고인은 1940년생으로 주민등록은 되어 있지만, 사실 위로 4명의 아이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부모님은 출생신고를 늦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니 실제 나이는 80이 넘으신 거죠.  당시 집안은 부유했고, 다섯 번째로 태어난 귀한 아들은 대학까지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탕진하면서 이로 인해 아들이 10번이 넘는 재판을 하던 중 정신장애가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결혼도 하지 못하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정신장애인으로 살다 최근에는 치매까지 겹쳐서 요양병원에 7년을 생활하시다 돌아가신 겁니다. 유일한 형제인 여동생은 오빠의 장례가 항상 걱정이었다고 합니다. 내가 오빠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 오빠를 먼저 보내야…

자세히 읽기

[나눔장례지원] 갑작스런 이별, 깊은 절망에도 봄이 찾아오다

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4월 장례이야기 갑작스런 이별, 깊은 절망에도 봄이 찾아오다 4월에도 많은 장례가 있었습니다. 갑작스런 이별을 당해 절망하고 있었지만 그사이에도 시간은 흘러 봄과 함께 온 손님이 있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 부고를 인터넷으로 보고 이른 아침 멀리 용인과 평택에서 벽제까지 오신 자원봉사자들은 스스럼없이 위패를, 유골함을 들었습니다. 외롭게 떠나는 누군가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 귀한 시간을 쪼개어 오신 분의 마음을 아직 듣지는 못했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따뜻했습니다.   (사진 설명 : 먼 길을 마다않고 무연고 사망자 장례에 참석한 자원봉사자들과 의전업체 대표) 구청 앞에서 발길을 돌리다 “아버지를 무연고자로 보낼 뻔했습니다” 4월 초 나눔과나눔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장례식장에 3일째 안치되어 있고 아들인 자신은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도 갚아야 할 빚이 있는 상황이라 장례를 치를 돈을 구할 수가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들은…

자세히 읽기

[나눔장례지원] 2019년에도 기억해야할 이름들

2019년에도 기억해야할 이름들 375명 2018년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분들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이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 [나눔과나눔이 함께 동행하고 기억하는 무연고사망자 362명] 선종호, 이한주, 홍철원, 강지애, 고재선 문세봉, KIM ELZA, 조양식, 김동흥, 부기현 김현준, 유석환, 서재만, 박기리, 김천혁 박성호, 김용선, 황중훈, 문보현, 최인준 박영숙, 김영자, 임병영, 고남준, 김경용 박상철, 이호성, 김화영, 안희철, 한제구 이혜빈, 이성열, 서명서, 김유경, 이안섭 강창근, 김승호, 유명생, 장종선, 이정권 천승현, 김준석, 불상, 김성희, 불상 김규진, 홍순기, 권혁성, 김봉훈, 모종문 홍명진, 김종근, 강수남, 김관영, 정이만 이안례, 신현식, 김란숙, 이기철, 윤길임 신권영, 송인숙, 이현호, 칸발레리, 오광택 정영술, 원완희,…

자세히 읽기

[서울시 ‘그리다’ 장례지원] 故 안선차 님, 고이 잠드소서

고립사, 그 후 무연사 안선차 님은 1935년 8월생으로 지난 9월 14일 83년의 생을 자택에서 마감하고 돌아가셨습니다. 흔히 말하는 '고독사'입니다. 고립 가운데 홀로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 고인은 그래도 빨리 발견되어 안치되고 서울시가 지원하는 「그리다」 서울추모서비스로 장례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이 상황을 보고 그래도 다행이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 상황을 다행(?)이라고, 뜻밖에 일이 잘 풀렸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행정서비스 입장에서는 고립사한 노인을 빨리 발견해서 장례까지 지원했으니 다행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고인은 그동안 홀로 삶을 살아오셨고, 버거운 임종의 순간도 홀로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발견되신 후에는 자녀가 시신을 위임해 무연고사망자가 되셨습니다. 고인을 보내며 고립사, 그 후 무연사까지 2018년 한국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마주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번 장례는 다행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마포구라는 같은 지역의 바로 옆 동네에 살던 분의 마지막을…

자세히 읽기

[서울시 ‘그리다’ 장례지원] 故 박태오 님, 고이 잠드소서

나를 받아주는 단 한 사람, 받아주는 그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서울시가 저소득시민 장례를 위해 지원하는 「그리다」서울추모서비스로 박태오 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동행했습니다. 장례 과정에서 삶에 있어서 많은 가족이 아니라 '나를 받아주는 단 한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고인의 조카며느리가 바로 그 한 사람이었습니다. 고인이 아파서 도움을 요청할 때 그래도 가족이라며 받아주고 장례까지 할 수 있게 애셨던 겁니다. 누가 되었든 나를 받아주는 단 한 사람, 받아주는 그 마음이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충분하지 않을까 이번 장례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박태오 님은 1964년 3월 출생으로 지난 9월 15일 54년의 생을 부천의 한 요양병원에서 마감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직계자녀는 없었고, 연고자인 어머니와 형은 요양원에 계신 상태이다 보니 실제 장례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마포구 서강동 주민센터에서 나눔과나눔으로 「그리다」서울추모서비스를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고인이 돌아가신…

자세히 읽기

[나눔장례지원] 세상 끝에서 다시 만난 이들

7월 장례이야기 세상 끝에서 다시 만난 이들 “잊었단 말인가 나를, 타오르던 눈동자를/잊었단 말인가 그때 일을, 아름다운 기억을/ 사랑을 하면서도 우린 만나지도 못하고/서로 헤어진 채로 우린 이렇게 살아왔건만 (중략) 보고파 지샌 밤이 나 얼마나 많았는데....../ 헤어져야 하는가 다시/아픔을 접어둔 채로/떠나가야 하는가 다시/나만 홀로 남겨두고.” 80년대 중반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왔던 노래. ‘재회’의 순간 그동안 만나지 못한 그리움을 모두 다 꺼내놓지도 못했는데 또다시 헤어져야 하는 아쉬운 마음을 담은 그 노래를 떠올렸던 7월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만들어준 하루, 그리움은 헤어진 시간만큼 눈물로 흘렀고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음에 가슴은 아프지만 영원한 이별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늘어난 장례문의 나눔과나눔의 활동이 각종 매체들을 통해 소개가 되면서 여러 가지 이유, 특히나 경제적인 이유로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분들이 장례지원을 의뢰하는 연락이 자주 오고 있습니다. 2018년 들어 기초생활수급자 장례지원문의가…

자세히 읽기

[나눔장례지원] 故 김정순 님, 고이 잠드소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렇게 엄마를 잘 보내드릴 수 있어서. 시립승화원 안내데스크에 “형편이 어려워서 그런데, 장례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라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때 무연고사망자 운구를 담당하는 분이 앞에 계셨고, 또 그 옆에는 나눔과나눔 활동가가 있었습니다. 고 김정순 님 장례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고 김정순 님은 1945년생으로 2011년부터 요양원에서 생활하셨다고 합니다. 오른쪽 다리 골절로 거동도 많이 불편해서 휠체어를 타셔야 했습니다. 요양원에 계셨지만 지병으로 자주 병원에 입원하시다 보니 따님은 항상 병원비가 걱정이었다고 합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의료급여가 나와도 본인부담금 등이 있기 때문에 어려운 형편에 병원비 마련이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장례를 위해서도 마지막 병원비가 문제였습니다. 병원비가 지급되지 않으면 시신을 다른 곳으로 운구할 수도, 화장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됩니다. 다행히 긴급의료비 지원이 빨리 결정되면서 장례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장례지원은 관련된 모든 지원이 신속하게 결정되지 않으면 참 어렵습니다.…

자세히 읽기

[나눔장례지원] 故 박재수 님, 고이잠드소서

자신이 너무 철이 없었다며, 가족한테 너무 못해서 볼 면목이 없다...... 시던 故 박재수 님 꼭 암을 이겨내서, 딸에게 찾아가시겠다 던 故 박재수 님 (삼일교회 사랑나눔부 노숙인 구제사역팀이 해주신 이야기입니다.) 돌아가시고 5일을 기다렸습니다. 20여 년 전에 헤어진 가족이 찾아오기까지, 그리고 저승으로 가지 못한 기다림의 시간이 참 길었습니다. 삼일교회 지인분들은 경찰과 서울에 있는 동주민센터에 가족을 찾아달라고 요청해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남양주에 있는 동주민센터에 부탁하고 부탁해서 겨우 가족에게 연락이 닿았습니다. 다행입니다. 5일의 기다림에 끝에 이 세상과의 이별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지인분들의 수고와 노력이 아니었다면 고인은 분명 무연고사망자가 됐을 겁니다. 아내와 딸이 20여 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장례식장까지 오는 길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세 살배기 딸이 20대가 되었고 아내는 고인의 마지막 얼굴을 보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아 차마 입관식에는 참여할…

자세히 읽기

[나눔장례지원] 故 김문수 님, 고이잠드소서

우리는 사랑을 나눴고 김문수 삼촌은 우리에게 가능성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그렇게 하늘로 가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곁에 와 주셔서 (삼일교회 사랑나눔부 노숙인 구제사역팀이 해주신 이야기입니다) 1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만남. 그 만남 가운데 소중한 인연들과 함께했던 많은 추억. 김문수 님과의 이별의 시간은 그래서 더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정말 다행입니다. 외롭게 혼자 보내지 않기 위해 단절되었던 가족을 찾고, 어떻게든 최소한의 장례라도 하기 위해 장례식장과, 나눔과나눔에 연락하며 동분서주했던 지인들 덕분에 장례를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50대 초반의 김문수 님은,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 때 혼자 독립해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공장에서, 중국음식점에서, 원양어선 등에서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셨던 것 같습니다. 김문수 님의 오른쪽 손가락 두 개는 공장에서 일할 때 먼저 하늘로 보내야 했습니다. 그래도 8개의 손가락으로 만드는 짜장면과 중국요리 맛은 일품이었다고 합니다. 교회행사가 있을 때는 실력을 발휘해 몇…

자세히 읽기
  • 1
  • 2